봄
-퍽.퍽.퍽.-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팔에 가려져 반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일 때가 많았다. 그 좁은 시야에서 순수하지만 악의에 가득 찬 장난기 어린 녀석들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공포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세상이 검게 물들지 않게 하려면 순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내던지는 주먹과 발을 최대한 아프지 않게 막아야만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나서야 나는 몸에 있는 먼지를 털어내고, 교실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뒤쫓아 따라갔다. 책상에 앉아서도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해 양쪽 팔은 벌벌거렸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팔과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진동은 사람들이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느끼기에 너무 약한 떨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알게 된 사실은 사람들은 자잘한 진동 따위를 외면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도 같은 반 선생님들까지도 말이다. 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항상 배트맨 같은 영웅이 나타나 날 도와줬으면 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띵동댕동. 띵동댕동.-
50분의 수업시간이 끝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 10분을 맞이했다. 다들 쉬는 시간을 더 좋아했지만, 난 쉬는 시간 10분을 가장 무서워했다. 차라리, 지루하고 재미없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훨씬 더 즐거웠다. 점심시간이 되면 녀석들은 축구를 하러 간다며 나를 놓아두었다. 그러나, 매 수업이 끝난 10분은 언제나 갈굼이나 폭력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짧지만 긴 지옥이었다. 언제부터 내게 이런 시련이 시작되었을까?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자. 조용. 여기 처음 전학 온 친구니까 잘해주고.”
“안녕. 난 현주환이야. 잘 지내보자.”
“백의민 옆자리 비어있지. 저기 가서 앉으면 되겠네.”
작은 체구에 단단하고 양쪽으로 쭉 찢어진 눈매를 가진 녀석은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웃는 얼굴에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처음에는 나도 그 녀석과 굉장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야.”
“어?”
“이 반에서 누가 제일 싸움 잘하냐?”
“진영이가 싸움 제일 잘해. 저기 뒤에 앉아있는 쟤.”
“아. 그래?”
“어. 쟤 화나면 엄청 무서워.”
“아니. 그냥. 너는 싸움 좀 잘해?”
“아니. 난 싸움 못해. 그래도, 축구는 좋아해.”
“그래?”
주환이는 전학 온 첫날 아이들의 말꼬리를 잡으며 시비를 걸다 결국 반에서 가장 힘이 쎈 진영이와 싸움을 벌였다. 갑자기 유입된 외래종이 토종들의 서식지를 박살 내는 것처럼 주환이는 오자마자 서열을 정리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싸움은 해봤자 아이들의 싸움이었다. 둘 다 큰 부상 없이 일어나 이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더니 다음 날 10년 지기 절친이라도 된 듯 우정을 과시하며 학교에 등교했다. 그리고, 축구할 때 빼고 나한테 말 한번 걸지 않던 진영이가 갑자기 나한테 와서는 대뜸 시비를 걸었다.
“야. 네가 어제 나 팔았다면서?”
“어?”
“네가 나보고 제일 싸움 잘하는 나쁜 놈이라고 했다면서?”
“아니. 난 그렇게 말한 적...”
-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환이의 주먹이 눈앞에 번쩍였다. 예고도 없이 날아든 주먹에 대비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코를 찡하게 울리는 느낌이 들더니 따뜻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주환이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비아냥거렸다.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거야?”
“아..피...피...”
내가 코피를 보고 당황해하며 눈물이 고인 모습을 보자, 아이들은 나를 키를 쓴 오줌싸개를 보듯 깔깔거리며 비웃기 시작했다. 새롭게 서열을 정리한 주환이에게 모두 잘 보이고 싶기라도 한 것 같았다. 맹수 같았던 주환이 나를 먹이로 지정한 듯 하자, 주위에 있는 송사리 같은 녀석들이 나를 더 물어뜯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날 물어뜯는 송사리들에게 저항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주환과 진영이는 내 어깨를 누르며 입을 닫게 했다.
“야.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이 거짓말쟁이 새끼야.”
“진짜 굉장히 비겁하네.”
아마, 이 녀석들은 자신들의 성을 쌓는데 가장 필요한 먹잇감을 나로 정한 것 같았다. 물론, 녀석들의 속마음을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나 또한 본능적으로 그들의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한 번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한 번만 참고 견디면 길을 걷다 똥을 밟은 것처럼 이내 시간이라는 빗물에 더러운 똥이 씻겨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평상시 친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마저 힘에 굴복했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교실을 장악한 듯 활보하는 녀석들 덕분에 내가 발 디딜 영역은 점점 더 작아졌다. 다행히 이들의 괴롭힘은 어느 정도 기복이 있어 평상시보다 적게 괴롭힐 때도 있었지만 그렇게 위안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야. 쟤랑 엮이지 마. 존나 재수 없음. 그냥.”
“그러니까. 진짜 존나 패고 싶네.”
시간이 지날수록 주환과 진영이는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듯 점점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입지를 확장해 나갔다. 반에서 싸움 좀 한다는 평판을 가지고 있던 주환은 학교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주먹이 되어있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넘어갈 무렵 두 녀석은 지역구 학교들을 통합한다며 설치고 다녔다. 둘의 명성이 점점 더 화려해질수록 그들의 뒷구녕이나 핥고 살아가는 녀석들의 괴롭힘이 점점 더 많아졌다.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사자들은 먹이를 배불리 먹고 나면 남은 썩은 고기들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그보다 약한 하이에나들이나 대머리 독수리이었다. 놈들은 썩은 사체에서 풍기는 약자의 냄새를 가장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