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동전.

너무나도 개인적인 일로 쓰는 글.

by 이그저


외할아버지는 꼼꼼했지만 꾸준하진 못했다.

평생을, 당신의 하루하루가 아름다웠기를 바라면서 여러가지 흔적을 만드는 데에 공을 들이셨다.

그를 떠나보내기 위해 보낸 시간이 오늘로 일주일이 되었다.

그는 당신의 흔적을, 그가 남긴 또 다른 흔적인 우리들에게 나누고 떠나셨다.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나눈 것인지는, 이제 더 이상 물을 수가 없다.

다만 나에게 맡겨진 그의 흔적은 커피를 좋아하는 애연가였음을 보여주는 수백개의 성냥갑과, 아직도 이유를 추정 중인 연도별로 봉투에 담겨진 동전들이다.

나는 막내 이모의 몫으로 돌아간 외할아버지의 20년치 일기장이 탐이 났다. 그것에는 언제나 조용히 무언가를 열심히 쓰시던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과묵했지만 속마음은 유난히도 시끄러우셨던 분.

하지만, 내게 남겨진 그의 흔적에는 그때 그 순간의 관심이 묻어있었다.

성냥갑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추억의 물건이 되었기에, 신기하고 예쁘다는 이유로, 그것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나는 고작 5년 어치의 동전들에게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 애매했다. 거기에는 봉투 겉면에 동전이 종류별로 몇 개가 들었는지까지 적어둔 치밀함은 있었지만, 세월은 없었다.

도무지 동전 속에 그의 '어떤 모습'을 끄집어낼 도리가 없다.


동전을 슬그머니 가방에 집어넣는 나를 보며, 막내 이모는 어렵사리 한 기억을 끄집어냈다.

본인이 몇년 전에 본 뉴스에서 몇 년도짜리 500원짜리가 몇 십배의 가치로 거래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그녀의 기억만큼이나 흐릿했지만, 나의 주의를 확실히 끌어당겼다.

말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붙잡아 둘 요량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곧바로 연도를 확인했다.


1998년.


'당시 IMF로 인해 8000개만이 만들어져 현재 가격으로 30만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정보가 인터넷에 수두룩했다. 나는 허겁지겁한 마음으로, 하지만 티나지 않게 천천히 봉투를 꺼내어 할아버지의 꼭꼭 눌러쓴 글씨를 보았다.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3년.


봉투는 다시 내 가방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외할아버지를 모두가 나누어가지고 헤어지자마자 곧장 원룸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문득, 봉투가 생각나 몸을 일으켰다.

큰 이모는 부조금에서 5만원짜리 10개씩, 50만원을 우리들에게 주면서 "외할아버지가 주시는 마지막 용돈"이라고 했다.

가방 속에는 6개의 봉투가 있었고, 나는 손쉽게 그 마지막 용돈을 구별해내어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되서 몇 달전부터 지겨워하던 내 지갑 안으로 50만원을 옮겼다.


내일이면 드디어 오늘 생긴 돈과 함께 이 지갑과 이별할 수 있다.

몇 달전부터 머릿 속에 맴돌던 흰색 지갑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파란색 지갑이 지겨워진 건 흰색 지갑을 본 후부터였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카드 결제만 했던 나에게 동전이 들어갈 자리가 달려있는 지금의 지갑은 두껍고 무겁기만 하다.


아, 하루만 기다리면 그런 잡다한 것 없이, 얇고 심플한 지갑을 가지고 다닐 수 있구나.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해서 도무지 씻을 힘이 없다.

이 지경이니, 외할아버지를 보내기 위한 준비물이 가득찬 가방도 내일 일로 미루어야겠다.

참, 그 속에는 그가 내게 남긴 유품이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굳이 지금 고이 서랍 속에 보관한다고 해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니,

내일 일이다.

성냥은 예쁘게 정리한 후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줘야겠다.


동전.

동전을 생각하니 아까 막내이모의 말은 나름의 위로였던 것 같다.

누구나 탐내는 그의 오래된 흔적을 가진 그녀가 다시 한 번 부럽다.


그나저나, 그 동전들은 당시에 따로 빼놓고 보관된 것일까.

아니면, 나중에 저금통 정리라도 하면서 오래된 것들만 모아둔 것일까.

문득, 동전들의 시간에 왜 1년이 비어있을까.


그는 왜 동전을 모았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말,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