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by 이그저


나는 참 '쓰잘데기 없는 말'을 해대는 사람이다.

'그런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말은 여러가지 형태를 가진다.

혼자 내뱉고마는 말이 있고, 주고 받는 말이 있고, 여러 사람에게 일방적인 말이 있다. 그 중에서도 '대화'는 주고 받는 말이고, 그 '주고 받음'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무엇'을 주고 받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주고 받느냐가 더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다양한 사람들과 '쓰잘데기 없는 말'을 주고 받는 데에 할애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많은 순간, '하얀 거짓말'을 내뱉을 순간 앞에 놓인다.

선의의 거짓말은 속이는 것과 숨시는 것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다. 그것이 거짓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수두룩하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은 '거짓'이기 때문에 항상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내뱉는 순간, 예상한 결과로 흐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비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어떤 애정 비슷한 감정 때문이다. 진실이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면 내 마음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되려 상대가 나중에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더라도 '왜 거짓말을 말했느냐'고 타박받지 않고, 그렇게 해주었다는 나의 마음을 알고 그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입만 열면, 장황한 서사시 한 편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적어도 한 명씩 갖고 있으며, 그들의 서사시가 재미있다면 그는 '말을 참 맛깔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재미없다면 그는 '말이 너무 길어 지루한 사람'이 된다. 결국, 같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들은 대개 말이 참 많고 길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도 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오래 붙잡혀 있고 싶지 않다면,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는 것은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 결국 들었던 이야기를 또 듣게 될테니까. 하지만, 수도 없는 반복으로 인해 지나치게 넘친 정보들을 알고자 우리는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이제는 대신 말해도 될만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을 또 듣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들과 '대화하는 상황'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오늘은 이 사람과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지'하고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사적인 대화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용건이 생긴 후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만나고 보는 것이다. '만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의 목적은 '정보를 주고 받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쌓기'의 수단에 가깝다. 게다가 사람들마다 관계의 깊이에 따라 대화 속에 얼만큼의 정보를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모두 다를 수 있다. 깊은 관계를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이 '말이 필요 없는 관계'라고 여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모든 말을 해야 하는 관계'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화란 수많은 근거 없는 것들이 여기저기로 튀면서 채워지는 것이다.

대화를 이루는 내용이 그렇듯이, 말의 형식도 그 견고함은 무너지기 일쑤다. 말은 글과 다르다. 글은 대개 주어, 동사, 목적어 등의 성분들로 견고하게 이루어져야 '맞는 문장'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말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에 성분들이 떨어져나가는 것이 오히려 더 '말다운 말'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제대로 된 문장'으로 모든 말을 내뱉는다면, 그 사람은 책을 읽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된다. 말에 있어서 이렇게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연관이 클 것이다. 사적인 대화일수록 그 속은 농담과 재미들로 채워진다. 친근한 관계를 위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고가는 말 속에 담긴 중의성과 모호함, 언어유희적 재미를 통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쌓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논리정연하기 힘든 것이다.

내용조차 논리가 없는 것인데, 과연 간결하고 명료하며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것은 가능할까. 우리는 '내용'에 따라서 관계를 정립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 속에 담긴 '무엇' 때문에 그 느낌을 가지고 여러 성격의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말이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줄 수 있게 된다. 귀로 들려오는 말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말을 내뱉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것을 파악하고, 나 또한 나의 마음을 은연 중에 내보내는 것. 그것이 대화라면 우리는 절대로 논리정연한 사람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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