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과 한나의 서로 다른 이야기.

영화 <더 리더 : 책을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by 이그저



사람들은 평생동안 몇 개의 이야기를 접할까.

우리의 도처에는 이야기가 넘쳐 흐른다.

하지만, 그 수 많은 이야기를 중에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야기의 영향력에 따라서 저마다 다른 ‘중요도’가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이야기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요도는 사람마다 달라서 각자가 평생 품고 가는이야기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다.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이하<더 리더>)의 주인공 미하엘과 한나에게 ‘잊을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오뒤세이아>일 것이다. 호메로스가 쓴 이<오뒤세이아>는 각자에게는 다른 의미로 그들의 관계의 시작에서 그들을 엮어주는이야기이며, 훗날 그들의 관계의 마무리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크게 총 두 번, <오뒤세이아>는 미하엘과 한나의 관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놓이며, 이는 단순히 사람의 인생에 있을 하나의 남녀관계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 그 자체 속에서 가장 중요한, ‘그들의 이야기’가 된다.

호메로스의 <오뒤세이아>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뒤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이후 자신의 나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 ‘귀환’은 단순히 오뒤세우스가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나열한 ‘모험담’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오뒤세이아>는 다른 영웅 신화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 놓여있다.

일반적인 영웅 신화는 주로 그 인물이 어떻게 사건, 역경들을 이겨내고 나아가는지, 그래서 결국 ‘어떤 것’을 얻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에 반해, <오뒤세이아>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오뒤세우스 자신이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 오기 위한 ‘귀환의 여정’을 그리고있기 때문에, 우리가 영웅들을 통해 대리만족할 수 있었던 성취감을 느끼기엔 어렵다.

원작자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말처럼, <오뒤세이아>는 “목표점이 있으면서도, 목표점이없는, 성공적이면서도 헛된” 영웅 이야기인 것이다.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지만, 결국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왔을뿐, ‘무엇을’ 얻는다는 목표는 없고, 결국 성공적으로 고향에 돌아오게 되지만, 또 결국 그것뿐이라는 점에서 헛된 성공인 것이다.

영화 <더 리더>의 주인공 미하엘에게 이 <오뒤세이아>는 두 가지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처음 그가 15세 때, 한나에게 들려주었던 <오뒤세이아>는 우리가 보통 표면적으로 이해하는 ‘모험담’이다. 영화에서 한나가 미하엘에게 지금 배우는 아무 책이나 읽어달라고 했을 때, 미하엘은 <오뒤세이아>를 읽어주며, 그것이 ‘모험담’이라고 말한다.


이어져 나오는 첫 문장.


“오디세이. 호머 지음. 노래를 들려다오. 한용사와 여신, 그리고 항로를 벗어나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에 대한 노래를. 한 때 신성한 트로이를 점령했던 그 용사의 노래를.”


이 문장을 읽어줄 때의 미하엘은 <오뒤세이아>를 ‘배우고’ 있던 학생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나와 함께 오뒤세우스의 ‘여정’을 함께 읽어나가게된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오뒤세이아>를 설명하면서, “인물에게는 비밀이 있다”는 말은 그를 더욱 자극시켰을 것이다. 즉, 용사인 자신과, 여신인 한나의 ‘모험’이 이 책을 읽어주면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 ‘모험’은 그들에게 <오뒤세이아>의 인물들처럼 ‘비밀’을 주어, 그들 자신이 그 이야기의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이 때의 <오뒤세이아>는 그들의 여정의 시작에 놓여있으며, 이후부터 미하엘은 한나와의 관계를 ‘마냥 즐기며 빠져들게’ 된다. 신나는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반해, 영화 후반부에서 50대의 미하엘이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녹음으로 들려준 <오뒤세이아>는 미하엘에게 15살 때 자신이 읽었던 <오뒤세이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10대와 50대의 사이의 시간동안 한나를 만났고, 그녀에게 버림받았고, 법대에 들어갔고, 다른 여자와 만났고, 결혼했고, 아이를 얻었고, 이혼했다.

많은 사건들을 ‘직접’ 겪고난 후의 미하엘에게 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오뒤세이아>는이제 더 이상 오뒤세우스의 ‘모험담’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귀환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귀환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향해 가는 것이다. 짧았지만 한나와의 관계는그의 인생 전반에 깔려 있다. 그는 그 관계로 인해 받은 상처를 책을 읽어주는 행위로 ‘다시 돌이켜보고, 치유하고자’ 한다.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의 상처를 미하엘과 한나는 모두 안고 있다. <오뒤세이아>를 읽는 것은 그들의관계의 시작에 놓여있는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싶은 마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열정적이었던 그들의 관계를 다시 돌이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은 미래를 향해 가고 싶은 마음이다. 상처를 치유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뒤세이아>의 첫 문장은 전혀 새롭게 들린다.


“오디세이. 호머 지음. 노래를 들려다오. 한용사와 여신, 그리고 항로를 벗어나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에 대한 노래를. 한 때 신성한 트로이를 점령했던 그 용사의 노래를.”

한나에게 <오뒤세이아>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아우슈비츠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저지른역사의 죄에 대한 처벌보다 ‘문맹’이라는 것이 들켜버리는‘수치심’을 훨씬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만큼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문맹을 들키지 않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결정짓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하엘이 한나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한나의 가장 아픈 부분을 치유해주는 행위이다. 15세의 미하엘이 읽어준 <오뒤세이아>의 내용은 어쩌면 그녀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저, 그것이 그녀가 읽을 수 없는, 미하엘이 아니면 절대로 알지 못했을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뒤세이아>로 시작된 미하엘과의 관계는 그녀에게 미하엘이 느낀 것처럼 ‘모험’이 아니라, 그녀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안식처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미하엘은 단순히 ‘사랑의 대상’을 넘어선다. 오랜 시간 감옥에서 죽은 듯이 살고 있던 배달온 <오뒤세이아>는 미하엘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도 더 이상 예전의 <오뒤세이아>가 아니다. 이제 <오뒤세이아>는 ‘모험’ 이야기이다. 문맹인 것을 감추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던 그녀는 <오뒤세이아> 녹음 테이프를 시작으로, 글을 익힌다. 그녀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40년 전, 그저 듣기만 했던 그 이야기를 40년 후에 와서 ‘다시’ 듣게된 것이다. <오뒤세이아>는 한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미하엘과 한나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오뒤세이아>는 놓여있다. 하지만, 앞서 밝힌 것과 같이 그 이야기는 같은 시간에 그들 모두에게 ‘중요’한 이야기였지만, 다른의 미로 그들 각자에게 읽혀졌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계속 어긋나는 것일까.


오뒤세우스처럼 굉장한 모험을 한나와의 관계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미하엘은 얼마 되지 않아 한나에게 버림받았다. 법정에서 다시 한나와 미하엘은 만날 수 있었지만, 미하엘에게 한나는그 자체로 큰 상처였고, 그는 그 상처를 피하는 길을 선택했다.

오랜시간이 지난 후, 미하엘은 ‘한나’라는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오뒤세이아>를 읽었지만,

한나에게 그것은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신이 난’ 한나를 미하엘은 이해하지 못하고, 한나는 죽음을 선택한다.


이 먹먹한 그들의 관계에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있었지만, <오뒤세이아>가 사실은 전부일 수 있다.


이야기는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읽히지 않는다.

당연한 이 사실이 어긋나기만 하는 그들의 관계 안에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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