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이야기 열
초등학생 때 읽었던 책 중에 그런 얘기가 있었다.
빨간 소파 안에 난쟁이 나라가 있다는.
특정한 번호를 누르면, 통화도 할 수 있다는 뭐, 대충 그런 얘기.
고등학생 때, 그 이야기가 그리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았단 생각을 했다.
독서실 나무판자 두 개 사이에서 나만 아는 세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통해 전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내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자습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새까만 독서실에 정말 내 자리 불빛 하나만 딱 켜져 있었다.
우리 고등학교는 10시까지만 의무 자습이라, 다들 집에 가고 나 혼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섭지 않았다. 외롭지도 않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얘기에 울고 웃다 보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어폰 너머에서 함께 밤을 지새워준 그네들이, 참 고마웠더랬다.
몰랐겠지만, 18살 소녀는 남몰래 다짐하기도 했다.
이 독서실을 나서는 날,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받은 위로를 돌려주겠노라고.
"먼 경남의 시골읍에서 방송을 듣고 있은 혼자 있는데도 세상과 연결된 기분이에요."
그래서 라디오에서 조연출로 일하며 이 문자를 받았을 땐,
일종의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94년생이다.
라디오 키즈 세대의 끝을 부여잡고 있다 할 수 있는 나이이자,
사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에 있는 나이다.
변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제 라디오를,
그 시대의 끝을 이제 놓아주려 한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상상밴드의 피너츠 송, 이지라이프의 너 말고 니 언니 같은
명곡들을 알게 해 준 초등학생 때의 라디오를,
슈퍼주니어가 진행하는 바람에
월 문자를 #8910에 모두 써버리게 한 중학생 때의 라디오를,
유희열이라는 사람의 덫에 빠지고 말아
인강 대신 10cm와 옥상달빛이 게스트로 나온 수요일 코너를 다운받아
달달 욀 정도로 들었던 고등학생 때의 라디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