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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Jan 15. 2020

사소한 위로

0115의 끄적

#1. 체구가 반쯤으로 줄어든 내가 조막만 한 과도를 들고 대포와 탱크가 오가는 전장에 뛰어든 기분. 요즘 근황이다. 80cm쯤 돼버린 몸으로 손을 열심히 휘적거리며 잘 들지도 않는 무기를 휘두르는 나. 매일 매일 다른 전장을 찾아다니며 얍! 얍! 휘둘러보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침대로 향하는 나. 어쩌다 한 방 제대로 들었을 때 작은 기쁨으로 일주일을, 한 달을 버티는 나.


#2. '일하는 나'와 '일상의 나' 경계가 흐려지는 일이 벅차다. 연락처엔 #을 붙인 낯선 이름이 가득해졌다. 아, 처음부터 업무용 폰을 쓸 걸. 폰에다가 자아의 경계를 나눠놓을 걸. 후회 중이다. 최근 페이스북엔 일을 위한 계정을 만들었다. 단출하고 안온한 SNS를 결국 포기했다. 일이 일상을 차지할수록 더 나은 결과가 탄생한다는 '장시간 노동의 역설' 같은 말에 졌다고나 할까.

다짐이 무색하게도 새 계정은 방치하고 있다. 이름도, 얼굴도 처음 보는 487명에게 친구신청을 받고 나서다. 아마도 일을 위해 걸어놓은 직업 소개 때문일테지만. 낯선 이름들에 휩쓸려 미처 ‘확인'을 누르지도 못하고 외면하고 있다. 볼 때마다 벅차다. 어쩌지.

하루는 낯선 사람들로 채워지는데 내 공간은 자꾸만 줄어든다. 영역을 침범당한 영역 동물이 된 기분. 딱 떨어지는 출퇴근이 없어 피곤한 건 체력이 아닌 정서적인 문제다. '단출하고 안온한' 공간이 좁아지는 게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다. 밤 11시에 전화를 걸어도 온기를 나눠주던 사람들이 줄어든다. 줄어드는 것 같다. 아니, 정확하게는 줄어들게끔 지난해를 살았다.


#3. 하루 단위로 소비되는 활자들 사이 살고 있다. 오래도록 곱씹고 삼켜 나를 지탱해 줄 활자들에 소홀하다. 스스로를 달래는 이런 글도 오랜만이다. 소설도, 영화도 버겁다. 하루살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다시 찾아야지 다짐했는데 여전히 적응은 멀기만 하다. 마음이 자꾸 건조해진다. 말라비틀어지기 전에 쌓아놓은 책을 들어야겠다. 쩍쩍 갈라지는 마음에 물기가 필요해.


#4. 여전히 모든 일이 찬성과 반대로만 읽히는 세상이 굴러간다. 나는 그 안에서 이리저리 치인다. 내가 어떤 하루를 보내든 사람들은 찬성과 반대로만 읽는다. 그러니까 어찌 됐든 나는 둘 중 하나의 마음엔 들지 않는 XXX.


#5. 태어나기를 쉽게 타협하는 편인 나로서는 아주 소중한 조직에 들어왔다. 함부로 타협하고, 함부로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좋은 선배들이 곁에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이를 악 물고서라도 참는 데 뛰어난 나로서는 '좋은 사람'의 '부적절한 행동'을 짚어내는 일이 쉽진 않다. 얼굴 붉히는 일도 쉽지 않다. 함부로 미안하거나 감사하지 않는 법을 연습 중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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