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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살이궁리소 Dec 13. 2017

농부가 된 철학 소녀의 농사철학

외국 유학 생각하고 이륙했다 배 밭에 불시착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부모 일 도우며 농사일에 익숙하고 가업이라 생각했지만, 농업은 너무 힘들고 피하고만 싶은 일이었다. 대학은 관심분야인 철학을 공부하러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서양철학을 공부했다. 학부과정을 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학비를 면제받고 대학원을 다닐 수 있었는데 석사를 마치고 나서 박사과정을 국내와 유학을 두고 고민하던 중, 가업 승계를 요청하는 부모의 강한 권유로 내린 결정이 27세 농부의 길. 할아버지 때인 1958년에 과수원을 개원해서 김후주 씨 (30)가 3대째이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주원농원 배 과수원 전경 @주원농원

그런데 마을에서 수재가 났다고 동네 어른들로부터 칭송을 받다, 막상 농사를 하겠다고 돌아오자,

'20대’와 ‘여성’이라는 두 단어에 대한 주위의 선입견은 예상을 훨씬 넘는 강도


‘얼마나 하겠어?’, ‘어린 여자가 힘든 배 농사는 무슨...’, ‘시집이나 가라고 해!’ 무심코 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때론 독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자신이 자라고 살아온 곳이었지만 서양복을 입고, 서양옥에 살며, 서양식 합리주의를 익히며 성인이 되어 돌아온 시골은 스스로의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역 문화 쇼크의 연속이었다.  

이륙 직후 공중 충돌 위기

많은 젊은 농부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부모와의 갈등. 기본적으로 부모 자식 간에는 '서로 같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나하고 같은데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면 틀리다고 생각하게 되고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후주 씨의 부친은 국내 최초로 유기농 배 인증(2006년)을 받거나 국무총리 표창,  각종 농업대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고 농장은 대한민국 스타팜으로 지정되는 등 명실상부한 베테랑 농부

주원농원은 ‘대한민국 대표농장 스타팜’에 수차례 선정되는 등 명실상부한 ‘스타 농장’이다 @채상헌

아무리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배웠다고 하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히 물가에 내놓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배 밭으로 불시착당한 느낌이었다. 본격적인 농촌생활을 시작하고 3년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관행 질서에 무조건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물들지 말고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동행한 농학도들에게 농촌에서 살겠다면 기존의 질서를 존중해야 하지만 무조건 순응해서 따라갈 것만은 아니므로 지금부터 20대인 젊은이가 농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자신의 기준을 세워 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농업경영에 있어서는 대학에서 배운 기술과 지식 등 선진 방식도 중요하지만,

농업은 항상 1+1=2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오랜 경험과 자연과의 동업


부모를 비롯한 선배 농업인들의 지혜를 얻는 노력과 자연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노력과 더불어 극복하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장을 방문한 농대생들과 함께 @채상헌

생각보다도 어렵고 힘든 일의 연속에 몸도 마음도 지친 적이 많았겠지만, 대화의 마디마디에서 서양 철학도에서 농촌 철학자로 바뀌어 가고 있는 모습이 느껴졌다.

시골생활은 외로움과의 싸움

또 한 가지 그녀에게 복병처럼 다가온 것은 '시골생활의 외로움'이다. 주변에 서로 이야기를 나눌 또래의 농부도 없었고, 생활환경도 망망대해와 같은 배 나무 숲 속에 달랑 혼자 앉아 있는 종달새 같았다. 어떤 때는 동료들과 함께 배나무 가지 위에 앉아 지저귀는 종달새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청연(청년농업인연합회 http://cafe.naver.com/0farmers)이라는 자발적 청년 농부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서 도시생활 당시보다도 훨씬 풍성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도시에서의 생활이 대중 속의 고독이라면, 시골에서 같은 외로움과 사회적 갈증을 나누고 채워 줄 수 있는 청연 모임은 후주 씨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동료 청년 농부들과의 교류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활동가들과의 만남의 보폭도 넓어지고 있다. 필자와의 만남도 모 신문사에서 주최한 멘토-멘티’ 간담회 장에서였다. 

간담회장에서 필자와의 만남 (사진왼쪽 두 번째) @농수축산신문

15,000평 유기농 과수원은 단군이래 유일

기존의 틀을 깨려고 시도하는 자식과 기존의 틀에서 성공한 부모와의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한 가지 의기투합한 것이 있었다. 이런저런 갈등의 상대방이기도 한 아버지이지만 완전 의견 일치를 보고 있는 부분이 유기농 재배 방식이다. 

주변 농가의 농약이 비산되어 날아 오지 않도록 특수 방어망을 설치하고 있다 @채상헌

남들은 유기농으로는 천 평도 어렵다는 배 과수원을 1만 5000평이나 되는 면적을 병해충 방제를 위해 칫솔로 일일이 벌레집이나 병반을 닦아 내거나, 화학비료 대신 10cm 정도나 되도록 퇴비를 뿌리고 쟁기질을 할라치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농장에서는 계분 쌀겨 우드칩을 이용해 자체 발효시킨 친환경 퇴비를 사용한다 @채상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주 씨는 유기농업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다. 저가의 수입 농산물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안전(유기농)하고먹기 편하고(가공), 마음의 여유를 제공(체험)하는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기농업을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로 농업인 스스로의 건강을 꼽는다. 

작업복은커녕 마스크나 장갑조차 하지 않고 농약 살포 작업하는 농업인 많은데, 시골에 암 환자 많은데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유기농업은 농업인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죠


생각해보면 농업인 입장에서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한 농부 아니던가.

침대보다 더 과학이어야 하는 농업

농업인으로서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김후주 씨는, 주원농원에서 생산되는 1kg짜리 특품 등급 배는 명품 백화점에서 수매할 때 한 개당 12,000원을 호가한다. 하지만 15,000평의 면적에서 나오는 물량을 전부 소화해 주지는 않는다. 어떤 농업인 이든 부부 경영규모를 넘어서고부터는 대량 소비처를 찾아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학교급식과 가공제품 생산이라고 밝힌다. 

생산되는 배는 100% 유기농 인증을 받고있다 @주원농원

이제 한국의 학교 식단에서 어린이들에게 우유로 대표되는 지방과 단백질은 과일로 과일급식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선 것이 친환경 학교급식이었다. 결국 주원농원의 생각과 노력은 주효했다. 아산지역의 학교급식에 1회 출하 시 200kg~ 500kg을 공급하고 있는데, 서울시 친환경 급식에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15,000평의 대 면적에서 나오는 유기농 배의 판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될 수 있으면 농장 브랜드를 사용하겠다는 자신의 농업에 프라이드 높은 아버지의 고집을 꺾고 후주 씨가 주력하는 비즈니스는 타 가공, 유통 회사를 통한 판매 사업이다. 

배즙은 일체의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어져 인기가 높다 @채상헌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 어린이 홍삼액이나 도라지 청 등을 만드는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감미 원료이다. 주원농원에서는 이점에 착안하여 저온 진공농축 방식으로 추출한 유기농 농축액 제품 개발에 성공, 농업경제 아이디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기농 배 농축액은 설탕을 대신할 단미 높은 원료로 평가받으면서 어린이 홍삼액 원료, 도라지 배농축액 원료로 납품하여 연간 억대 매출을 올리는 효자 상품이 되었다. 특품이 아닌 가정용 배나 가공용 배는 한살림, 상하농원, 헬로네이처 등의 유명 사업체에 톤 단위로 출하한다. 주원농원의 대표적 상품 중의 한 가지는 100% '유기농 배즙'과 '도라지 배즙'이다.

위생적이고 현대식 시설을 갖춘 가공공장 @채상헌

미세먼지를 비롯한 생활환경이 변화되면서 기관지나 천식 등을 호소하는 어린이들이 증가하고 있고 농원에도 많은 문의가 오고 있는데 주원농원에서 생산하는 도라지 배즙의 특징은 100% 직접 재배한 유기농 배와 유기농 도라지를 원료로 하고 있다는 점과 도라지 원료를 4%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기농 원료는 부모가 선택하고 도라지 성분 4%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셈

도라지가 4%를 넘어서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도라지의 쓴 맛에 입을 뗀다고 한다. 아무리 유기농 제품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먹지 않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설비만 첨단이거나 과학이 아니다.

땅만 바라보고 농업 하지 않고 시장 바라보고 농업 하는 것도 과학영농
도라지 4% 함유한 100% 유기농 도라지 배즙은 전국에 택배로 판매되고 있다 @주원농원

[인터뷰] 김후주 주원농원 이사의 농부로서의 포부

농업을 가장 잘 알고, 농산물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농업인입니다. 품질 좋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만이 농업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소비자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도 농업인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대 째 농업을 이어가는 김후주 주원농원 이사 @주원농원

특히 체험 등 농업과 친숙해질 수 있는 경험, 급식 등을 통해 우리 농산물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 등을 갖고, 관련된 설명까지 듣는 것은 미래의 소비자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 학생, 젊은이 등에게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며 농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역할은 젊은 농업인을 중심으로 진행돼야 할 것입니다.  농업을 잘 알고젊은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 농업의 지향해야 할 방향이며 젊은 농업인들은 이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농업인이 똑똑해져야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술과 시대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농업이 되기 위해서는 농업인부터 먼저 변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먹거리는 생명이고 농업의 생명은 신뢰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는 안전한 환경에서 정직한 농업으로 이루어 낼 수 있고요. 물론 누구나 유기농으로 농업을 할 수도 없고, 누구나 유기농 제품을 구매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환경 친화적인 농업을 하고 깨끗한 농촌을 가꾸는 것이 저가의 수입 농산물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농업인의 유일한 활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부터 스스로의 농업과 농장 환경을 환경 친화적으로 가꾸고 생산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아이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에게 농업 농촌의 가치를 확산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에 청연 모임을 통해 전국의 젊은 농부들과 힘을 모아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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