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되지 않는 농부로 농촌에서 윤택하게 살기
노예 되지 않는 농부로 농촌에서 윤택하게 살기
모두 도시로 떠나가던 고도 경제 성장기. 그는 수백 년 조상들의 업이었던 농업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시부터 그는 농촌이 단순한 식량생산 기지로서의 임무만 강조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고 생각했다. 노예되지 않는 농부로 농촌에서 윤택하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약관의 나이에 시골 행. 그가 생각한 것은,
배를 채워주는 농업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 도시화 산업화 다음은 가슴을 채워주는 농촌에 비즈니스 기회는 많다
“농경이란 스스로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그것을 먹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절로 보편타당한 정서가 형성된다. 또한 수확한 것을 어떻게 저장하고 조리하고 먹는지를 궁리하는 데에서 문화가 생긴다. 농사가 농업이라는 산업에 분화되고 나서는 돈을 얼마나 버는지에 중점을 두게 되어 농사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교육과 문화까지도 쇠퇴해 버렸다.
농부에게 농지는 일터이며 생활의 터전이다. 우선 그곳을 쾌적한 장소로 만들고 누구나 거기에 살고 싶어 지는 장소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산업으로서의 농업이 지배를 하면서 그런 본래의 것들에 대한 가치는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
우리 농장은 생산성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넘어서는 농경을 추구한다. 요컨대 농업을 통해서 경제적으로는 윤택함을 추구하지만 그것은 교육이나 정서, 평안함, 문화까지도 포함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다. 결코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대지에서 일하는 긍지를 갖는 행위가 내가 추구하는 농민이다 (홈페이지 발췌 의역)
노지마 씨는 대학 졸업 후 22세에 현재의 장소에 기틀을 마련했다. 이때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기에 돌입했다. 도시화 산업화 속의 농업은 힘들고 가난하고 뒤쳐지고 세련되지 못한 직업이 되어 버렸다. 주위에서도 농지를 포기하는 농가가 잇따랐다. 외국 농산물의 수입도 급증했다. 노지마 씨는 야산을 개간해 4ha (12,000평) 정도의 농지를 확보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호주나 미국에서라면 티끌만 한 면적이겠지만 일본에서라면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TV 화면에서 꽃이 피었다는 뉴스를 보고 그런가 보다 생각하지만 우리 집 화분에 꽃이 피면 훨씬 좋은 기분이 든다. 농업은 식량을 생산하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힘이 있다.
바로 근처는 오사카라고 하는 일본 제2의 대도시가 있다. 나는 농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는 일을 하겠다.
이 일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이때 노지마 씨의 나이는 약관 스무 살이었다
1971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농업을 시작한 그가 시도한 것은 대량생산이 아닌, 소량이라도 가치 있는 농산물을 판매하자는 것이었다. 당시는 직매장도 인터넷도 없었다. 그래서 농장에 사람들을 많이 불러들여 판매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들이 오게 할 것인가? 논 밭둑에는 쇠뜨기가 널부러지가 발생한다. 그가 생각한 것은 쇠뜨기 초밥. 흔한 들풀인 쇠뜨기도 잘 궁리하면 가격을 매겨 팔 수 있는 상품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고구마와 감 수확 체험 농장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그런 개념의 농장은 없었다. 자치회나 부인회, 어린이회, 친목회를 통해 광고지를 만들어 뿌렸다. 쇠뜨기 도시락도 마련했다. 또한 비가 와도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지붕이 있는 건물을 지었다. 이것이 레스토랑과 직매장을 겸한 지금의 본관이다. 입구에는 제철 과일을 놓아 손님들이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노지마 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는 4,000~6,000엔 (약 4~6만 원) 전후의 코스요리부터 바구니에 손님이 직접 담아 먹는 2,200엔짜리 '농장 도시락'이 있다. 고택에서 농촌경관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수확한 제철 식재료를 즐길 수 있는 메뉴다. 그의 생각은 주효했다. 인근 오사카는 물론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로 예약이 쉽지 않은 정도이다.
초창기에는 친목회 등을 통해 광고지를 뿌리기도 했지만 그는 이제 별도로 광고를 하지는 않는다. 와서 보고 가치를 느끼는 사람들이 비슷한 손님을 연결해 주기 때문이다. 이른바 코드가 맞는 손님들이 온다. 본관 입구에서 판매되는 농산가공품은 무인판매이고 적혀 있는 금액대로 상자에 돈을 넣고 가져간다. 코드가 맞는 손님들이 오다 보니 다른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체험농장은 연회비 60,000엔 (약 60만 원으로 2년째 이후는 5만 엔)으로 운영하는데 피자 굽기, 콩 탈곡, 목공 등을 체험하는 “라쿠노 축제“, 과일식초나 말린 고구마를 만드는 ”식농 체험 행사“등의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다.
노지마 씨는 정년 후 연금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한다. 3살 아이에게는 3살의 역할이 있고, 여든 살 노인에게는 여든 살의 역할이 있는데 나이가 얼마가 되더라도 자신의 역할이 있는 것이 농업이고 농업으로 노인이 건강하게 산다면 그것은 훌륭한 복지라고 주장한다. 많은 돈을 써서 만드는 지금의 복지 구조보다 훨씬 괜찮은 복지가 농업에 투자하고, 농촌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이후 NARA지방의 AWA에서 만난 미우라 씨 부부의 사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로 한다.
노지마 씨 자신이 그런 생활을 하고 있고 그가 운영하는 스기고헤이 농원에는 30~40년 장기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펼쳐 보고 싶은 것은 농업이 갖는 복지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체험농장 회원 중에는 의사가 있어서 커뮤니케이션과 발육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농장에 데려 왔는데 증상을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복지 시설이나 기업의 OB회와 연계하여 앞으로 어떻게 구조를 만들 수 있을지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또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은 자신처럼 농촌을 경영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다. 이미 행정과 손 잡고 ‘도시 농업 히라카타 도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신경 쓴다는 거예요. 나올 때에도 신발 꺼내 놓고, 화장실 갔더니 곳곳에 냄새를 흡착하도록 숯을 놓았더라고요'
'마트에서 파는 화학제품의 소취제가 아니고 선인들의 지혜가 배어있는 자연 소재를 사용하니까 방향 소취제의 특정 냄새에 대해 호불호도 적고 완벽하지 않아도 불만이 느껴지지 않을 거 같았어요'
'화장실 한쪽 액자에는 농장 주변의 사계절을 찍어 즐거움을 선사했더라고요. 자연 그대로 사계절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섬세함이 좋았습니다'
'자가 또는 마을에서 생산한 식재료로 만들어서 그런지 설명이 풍성해지고 술술 나오잖아요. 수습생 직원마저도 설명을 잘해서 믿음이 갔어요'
'아쉬운 거는 너무 많은 일을 하니까 농장은 좀 소홀해 보였어요. 아까 작물도 봤을 때 제대로 자라는 것 같지 않았어요. 아무리 유기농이라고 해도 생육이 정상적인 것을 찾아보기 어렵더라고요.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자라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저는 농민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재배에 신경을 더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식 맛이나 이런 것들은 다 좋았고, 시각적으로도 만족스러웠어요. 오래 해서 그런지 메뉴 하나하나 나오는 순서까지 물 흐르듯 무리가 없던데 1~2년 가지고 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주인이 47년 전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리고 47년을 꾸준히 사업을 해서 여기까지 발전시켜오고 안정적으로 꾸려나가고 있고, 20명 내외의 사람들을 고용해주고, 지역 경제의 하나의 중심이 돼서 일하고 있는 게 좋았습니다'
'시골 음식점 수준은 훨씬 넘는 고급 음식을 하고 있었어요. 파티할 때 먹는 음식 수준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아니고, 좋은 일이 있을 때 호기롭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시골에서 자체 생산한 농산물을 위주로 요리를 만든 게 좋았어요'
'앞으로도 대를 이어서 끊임없이 이 일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일본의 장인 정신의 좋은 예를 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농가 레스토랑을 한 것이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좋은 조건에 팔기 위해서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취급하는 농산물이 많아지고, 농산물 자체로는 아주 우수한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지만.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조합해서 파티용 음식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다양한 식재료를 전부 재배하는 농사를 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고급 농촌 식당, 나로서는 그 사람이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경영을 해서 발전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농가 레스토랑에서 느낀 점은 자연에는 관대하고, 손님을 대하는 마음은 아주 철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통 보면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나무를 가꾸고, 잡초를 제거하고 아주 깔끔한 모습인데 여기는 아주 자유로운 거 같아요.
대표님 말씀하신 대로 농민이 행복해야 된다고 한 거처럼 잡초를 뽑아야 하고 나무를 정돈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 맛이나 고객을 대하는 게 편안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요. 음식이 나오는 순간 색감이나 배치가 좋았습니다'
'일본 음식 특유의 양념이 적고 원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에 반했어요. 그동안 일본음식이 나에게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도시의 일본 음식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특히 이번에 보고 싶었던 게 수준 높은 레스토랑의 서비스나 음식 문화를 많이 보고 싶었는데 한눈에 반했어요. 음식 해주신 분들의 노고나 정성이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어요. 돌아가면 적용할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소스가 된장 소스인데 전혀 된장 맛이 나지 않으면서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
'호나미입니다. 저는 일본인이니까 일본인 시각을 섞어서 말씀드려 볼게요. 일본 음식의 특징은 프랑스 요리와 비교해서 말하고는 해요. 먼저 눈으로 봐야 되는 음식. 양념을 많이 안 하는 게 일본 음식의 특징이거든요. 그래서 그 일단 재료의 신선도가 떨어지면 달리 손 슬 방법이 없는 것이 일본 음식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신선도는 재료를 외부에서 매입해서 하는 곳과는 비교가 안 될 거예요. 말씀하신 대로 양념을 많이 안 하다 보니까 원재료의 맛이 중요하거든요. 좋은 음식은 신선한 재료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농가가 아침에 일어나서 수확한 재료라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 내내 노지마 씨는 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농민이 살고 국민들이 산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몇 차례나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으며 좋은 친구를 만났다고 말하는 그의 농촌의 공익적 기능 지론은 47전 년 스무 살에 그가 농촌으로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니 그 무게 남달랐다.
이번 여정에서 노지마라고 하는 친구가 생겼다. 적어도 한 번은 그를 다시 만날 것 같다. 그때 몇 마디 물어볼 것이 있을 것 같다. 그 후로 일본 사회는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나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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