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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살이궁리소 Aug 03. 2020

PPT 농법을 아십니까?

대한민국 농업교육의 현실을 꼬집다

농경과 원예 2020년 8월호 초대석

2006년 이후로 귀농·귀촌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할 정도로 농촌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농고의 경우 귀농·귀촌인들의 자녀 혹은 농업인 자녀의 입학이 증가하고 있고 농대의 경우 20대뿐 아니라 60대까지 입학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농업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농업에 대한 의식은 점차 변화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농업교육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연암대학교 채상헌 교수를 만나 냉정한 시선에서 바라본 대한민국 농업교육의 현실과 타개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Q. 최근 농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A. 네. 지난달에 발표된 정부 통계를 보면, 2019년 한 해 동안 총 329,082가구, 460,645명이 귀농‧귀촌했는데 30대 이하 귀촌 가구 비중이 44.3%로 여전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30대 이하 귀농 가구 비중도 10.6%나 되었습니다.     


Q.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아봤더니 교수님께서 ‘농학만 흥하면 농업이 망한다’라고 하셨던데 농대는 농학을 하는 곳 아닌가요? 

A. 철학, 인문학, 공학의 분류 개념으로 보아서는 농학이 맞지요. 하지만, 농업은 강의실 안에서만 하는 교육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농고, 농대는 현장을 중심에 두고 교육을 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농대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추의 뿌리털 표피세포에 삼투압이 수분과 무기물의 흡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벼에서 도열병균 침투 기작에 몇 개의 단백질이 관여하는지를 밝히는 농학 연구는 필요합니다. 


그래야 농민들이 더 병에 안 걸리고 더 좋은 농산물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농대가 농학만 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Q.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 농업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하신 적이 있던데 마찬가지의 느낌이 묻어납니다.

A. 한 번은 우연히 기차 옆자리에 앉는 청년이 저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와 한참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이 청년은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대를 졸업한 학생이었습니다. 


청년이 말하기를, 

“교수님들이 1년 중에 농촌 현장을 아예 안 가거나, 가더라도 학생들 인솔해서 행사처럼 가서 잘 나가는 현장만 보니까 농촌 현실을 모르고, 지식도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수업을 때우다시피 해버린다”

고 말하며

 “실습수업이라고 해도 어려서부터 부모님 농사를 돕는 식이지만 경험이 있는 제가 보기에는 모르고 그냥 가르치거나 의미도 없는 것으로 시간 때우기를 하고 있다”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학생들이 불만이 생길 것이고 이른바 과목 평가가 나쁘게 나오니 그렇게까지 하겠냐?"라고 물었더니,

 “졸업 후 농업 할 학생들이 아닌 경우가 태반이라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그냥 넘어가는 거죠. 수업 끝나고 무엇을 얻었다가 아니라 ‘수업 끝났다’가 되는 거죠. 학생들은 농업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교수님에 대한 아쉬움도 미움도 그냥 아무 감정이 없으니까 상황이 계속 그렇게 되는 거라고 봅니다” 


이 청년의 토해 내듯이 뱉어 내는 얘기가 결국 저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농대 교수로서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농업을 배우러 왔는데 교사나 교수는 정작 본인 아파트 베란다에서조차 상추를 키워본 적이 없는 거라면 어떻게 학생 지도가 될까요? 


농사 방법 중에는 ‘유기농법’, ‘관행농법’, ‘오리농법’ 등 다양한 방식이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는데 이중 교육현장의 ‘파워포인트 농법’의 병폐가 심각합니다. 


실무, 실습, 지도는 커녕 농촌 현실에 대한 인식도 포털 사이트의 기사 검색 수준인 상태에서 파워포인트로 만든 이론교육이나 본인도 모르는 화면에서의 기술교육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거죠. 


빌 게이츠 얘기는 그래서 나온 표현입니다.     

"연간 청년의사를 3,000명에서 4,000명으로 늘린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 농부는 1,600명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병나고 고치는 것보다 병나지 않게 하는데도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현실을 지적했다.


Q. 아하! 그런 의미이셨군요. PPT농법 표현은 확 와 닿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농고와 농대의 현실이 어떤 상황인가요?

A.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교사나 교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제가 작년에 농식품부 주관으로 전국 주요 5개 농대를 순회하면서 농대생들과의 토크콘서트 사회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농대 졸업자 중 농업 하는 비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꼈습니다. 


농대에 진학을 한 학생이나 부모의 일부는 농업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해당 학교 입학에 맞추다 보니 농대에 진학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 일 수 있는데 농대의 경우가 유독 많겠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전공실습의 경우도 노지나 온실보다는 실험실 중심으로 되어 갑니다. 


기자재 투자도 현미경을 구입하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데 트랙터를 구입하거나 온실을 짓게 되면 운용과 관리의 어려움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Q. 교수님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3가지로 나누어 제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정부가 농고, 농대의 실습시설 지원을 현실적 규모로 지원해줌과 동시에 운영인력과 운영비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시설만 지원해서는 가동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 교육과정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 지역 농업 주체들과의 적극적인 연계가 필요합니다. 한두 차례 특강이나 견학 정도가 아니라 현재 농고, 농대가 안고 있는 앞서 지적한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의 체계적 운영시스템을 교육과정에 도입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지역 농업계의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역도 지속적인 농업이 가능해지는 것이니까요.


세 번째, 현재 농식품부가 전국에 3개 학교를 선도 농고로 지정하고 전폭적인 예산지원을 하고 있는데, 교원의 업무 개선이나 평가 그리고 예산지원의 지속성과 확대를 위해서는 현재의 교육부 소관에서 한국농수산대학과 같이 농식품부 소관으로 이관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농대의 경우도 한국농수산대학의 정원 증원이나 캠퍼스 분할과 같은 소극적 방안이 아니라, 추가적인 대학의 개설이나 기존 농대의 전환을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통한 경쟁체계를 갖추어야 학생 수요에 대한 대응과 더불어 대학이 현실에서 안주하거나, 농산업 현장에 특정학교 출신의 부정적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고 급변하는 농업환경 변화에 농대로서의 역할 수행을 고도화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이미 지난 4년 동안 농식품부가 농대영농창업과정을 운영하면서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채상헌 교수는 “근본적인 문제의 개선 방안으로 현재의 3개 선도 농고를 교육부 소관에서 농식품부 소관으로 이전시켜야 한다. 농대의 경우도 제2의 한국농수산대 설립이나 기존 대학의 농식품 소관 대학으로의 전환을 통해 교육현장의 현실안주를 탈피시켜 지역에서 특정학교 출신의 카르텔이 형성되는 부작용도 막으면서 경쟁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Q. 끝으로 농고, 농대를 포함하여 농업 교육계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농업교육을 통해서 한쪽 날개는 생산이라는 날개, 한쪽은 판매라는 날개, 이것을 균형 있게 만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젊은이들이 생산기술과 판매라는 양 날개만 있다고 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단전에 자기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엔진이거든요. 


내가 왜 농촌에서 농부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 찾기도 같이 해 줘야 합니다. 농업철학이죠.


이론을 통해 원리에 대한 이해나 실무 실습교육과 더불어 학생 스스로가 각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눈앞의 안개를 걷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선생은 가르치는 것과 더불어 가리키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장에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주시하면서 그을음만 남기는 등불을 켜지 말고, 한 구석이라도 제대도 비추는 촛불을 켜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농업 교육계 현실의 벽은 매우 두텁고 높기만 합니다. 행여 저의 발언이 열심히 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장대 끝에서라도 뛰어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저 자신도 밥값의 절반도 못하는 상황인지라 스스로에게 뱉어내는 채찍처럼 말씀드렸습니다.  


인터뷰 진행 : 농경과 원예 이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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