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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브장 May 02. 2019

영화 <4등>, 익숙함이 주는 불편함

게으른 천재, 그리고 체벌


영화는 한 명의 수영천재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는 연습이 끝나고 밤에 몰래 나와서 술을 새벽까지 마셔도 한국 신기록쯤은 거뜬한 천재입니다.

아시아 신기록도 무난히 세우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기대하게 하는 선수죠.


금메달쯤은 쉬운 수영천재 광수

하지만 자신의 천재성을 믿기 때문인지, 놀기를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인지.

어린 나이에도 술과 도박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심지어 동네 아저씨들과 하는 도박판에서조차 엄청난 천재성을 발휘하죠.


하지만 게으른 천재의 최후는 비참합니다.

뒤늦은 대표팀 합류로 감독의 가차 없는 구타가 시작되죠.

그리고 그는 그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수영을 그만두겠다며 뛰쳐나옵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부터 불편함을 던져줍니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체벌이 만행하던 시대.

그리고 그 체벌에 유난히도 관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에서 그는 맞아도 될만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죠.

감독이 가하는 체벌의 정도가 심하게 묘사되긴 하지만,

그 장면을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저런 애는 좀 맞아도 돼', '맞을 만 하지'라는 생각이 자라납니다.

그만큼 잘못한 사람은 맞아도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무덤덤해졌기 때문이겠죠.



4등...


영화는 이제 시간을 거슬러 현재로 돌아옵니다.

다시 수영장. 수영을 좋아하지만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하는 준호.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고, 햇빛을 통해 우주의 기운을 받는 밝은 아이죠.


하지만 준호 엄마의 생각은 다릅니다.

엄마는 그런 준호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4등이라는 의미 없는 순위는 누구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하죠.


엄마는 그런 준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은 내려놓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모습은 슬프기까지 합니다.


또 4등이니....

준호의 엄마는 준호가 메달을 따게 하기 위해 무슨 수를 써도 괜찮다며 코치를 고용합니다.

준호의 재능을 알아본 코치는 준호를 때리면서 훈련을 시킵니다.

그 결과는 2등, 영화 속의 엄마의 대사를 빌리면 거의 1등을 하게 됩니다.


준호가 맞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는 준호의 메달을 보고 침묵을 선택합니다.


-

이 영화 제목이기도 한 "4등"은 우리 사회에서 낙오자와 같은 순위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따면 욕을 먹고, 무관심을 받는 선수들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하죠.

물론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1등이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히 만연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떠한 즐거움도 허락되지 않고, 무한한 경쟁만이 허용되는 사회.

어른들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아이들의 잘못을 우리가 비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용과 배려가 부족한 사회라고 합니다. 왕따의 정도가 심해지고, 부모의 재산에 따라 아이들의 계급도 갈리죠.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만든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어른들입니다.

4등이 용납할 수 없는 사회. 친구는 없고, 모두가 경쟁자로 여기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버린 거죠.



4등... 그리고 1등


영화로 다시 돌아오면 준호의 아빠가 아들이 맞으면서 수영을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상황이 변하죠.

그리고 체벌을 견디다 못한 준호는 수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수영에 대한 애정을 포기할 수 없는 준호.

준호는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코치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코치는 혼자서 하면 1등 할 거라는 한 가지 예언만을 남기고 떠나가죠. 

수영을 할 때, 행복한 준호

그리고 준호는 혼자서 수영을 다시 시작합니다.

수영을 계속하고 싶어서. 그러려면 1등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죠.


준호는 물속에서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로 묘사됩니다.

물과 아이가 하나 되는 것 같은 모습이랄까요.

그렇게 준호는 즐기는 수영을 하면서 1등을 해내고 말죠.



익숙함이 주는 불편함


그렇지만 이 영화는 한 아이가 수영을 즐겁게 하게 되고, 1등이 되는 행복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감독의 구타로 수영을 그만뒀던 그 옛날의 수영천재는 준호를 때리는 수영코치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는데 때리면서 잡아줬던 선생님이 진짜였다고 얘기하죠.


구타가 싫어서 떠났지만 구타를 하고 있는 코치...


준호는 자신이 맞는 것을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그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갑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생을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구타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지어 준호의 구타에 분노했던 아빠는 그 옛날 수영천재가 구타당했다는 기사를 써달라고 했을 때,

그가 맞을만한 짓을 했다며 그를 무시했던 사람이기도 하죠,


이 영화는 우리가 갖고 있는 체벌에 대한 익숙함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렇게 잘못했으면 맞아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죠.

이 영화는 우리가 얼마나 이러한 체벌에 무감각해져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나라는 폭력에 관대한 사회였습니다.

아이에 대한 체벌은 물론이고, 가정폭력, 친구와의 주먹다짐 등등 모든 것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결과는 아동학대로 인한 아이의 사망,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 등 비참했습니다.


영화 <미쓰백>의 모티브가 된 아동학대 사건들을 방치했던 것들도

그러한 폭력은 남의 집안일, 가정교육이라는 이름을 덮여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처럼 한 아이가 아동학대를 당하는 것도 한 마을의 침묵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

그동안 우리 사회가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너무 관대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익숙함이 주는 불편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 <4등>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그래도 여전히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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