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행위에 대한 내 관점의 변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
러닝 열풍이 불고 있다. 아니 이미 뜨거움 보다는 각자의 삶에 녹아드는 중이니 순풍이 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집 앞 불광천이나 한강으로 뛰어보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24시간 사람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집에서 3분 정도 걸어 나가면 불광천이 나온다. 거기서 북쪽으로 2km 정도 달리면 홍제폭포가 나오고, 남쪽으로 2.5km 정도 달리면 한강을 만난다. 한강 서쪽으로 달릴 때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고, 동쪽으로 달릴 때는 운이 좋으면 핑크 빛으로 물든 일출을 마주하게 된다.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은 북쪽으로는 나이 대가 높아지고, 남쪽으로는 낮아진다는 점, 생각보다 출퇴근을 한강을 통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그리고 달리는 행위에 대한 내 만족의 관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는 점이다.
내 삶은 달리는 형태로 나누어도 시기 별로 카테고리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새삼 놀랍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서 매년 달리기 대표로 뽑혔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물론 나보다 잘 달리는 녀석이 없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순간 사람들은 내게 환호를 보냈다. 그 시기에는 이 행위가 저 멀리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힘을 얻었던 것이 분명하다.(태생적 관종은 어떤 형태로든 주목받길 원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20대의 나의 달리기는 말 그대로 '패션'에 가까웠다. 자기 관리를 하는 멋진 옷을 입은 사람처럼 나는 달리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꼭 어떤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겠다는 느낌보다는 나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관리하는 사람, 운동하는 멋진 사람, 그 행위를 좋아해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행위를 뽐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30대 후반인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나의 만족의 관점이 나로부터 시작된다. 더 멋지게 달리기보다는 더 안전하게 오래 달리고 싶고, 예전만큼 달리지 못하지만 점점 거리가 늘어나고 시간이 단축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성취감을 느낀다. 건강함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느낌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축복이다.
저 멀리 있던 관점이 나에게 다가온다. 삶의 모든 행위가 어쩌면 같은 궤도에 놓이게 된 것이 내 삶의 만족과 유지력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나로부터 시작해 나로 귀결되는 생각과 행동은 내 삶을 온전한 것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순수한 의미의 성장을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나로부터 시작한 성장과 성취를 타인과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이제 관점은 나로부터 다시 멀리 나아갈 것이다. 나와 우주 사이의 어느 특정한 지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유영하며 다시 성장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