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P커플의 책방 창업기
책방을 운영한 지 11개월째에 접어든다. 지금에야 누군가 책방을 차린다고 하면 ‘꼭 그래야만’ 하냐고 묻겠다만, 그래도 책방을 차리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와 여자친구가 함께 차린 ‘무수 책방’은 결심 후 2~3주 만에 만들어졌다.
벌써 4년 정도 되었나,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수강생(?), 그리고 나, 셋이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매번 책이 바뀔 때마다 북리더를 돌아가며 정했고, 대체적으로 북리더가 정한 책을 읽었다. 그렇다 보니 편독이 심했던 나도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게 되었고, 일명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책들도 누군가와 함께 읽으니 가능했다. 독서모임의 인원은 8명까지 불어났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줌미팅으로 오전시간에 30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년 가까이 진행된 독서 모임 ‘뒷북‘덕에 책 욕심이 점점 늘어갔는데, 특히나 뭔가를 모아놓고 쌓아놓기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평이 좋은 책들은 모조리 구매해서 본인의 공방 책장에 쌓아갔다. 책을 얼마나 샀는지 교보문고에서 선물을 보내줄 지경이었다. 그 선물은 목재로 만든 장식품과 책이었는데,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한정판으로 만든 것이었다. 사실 나도 너무 욕심나는 터라 어떻게 하면 교보문고에서 선물을 보내주나 알아봤더니, 연간 도서구매 액수가 200만 원이 넘어가면 주는 VIP선물이라나.
이럴 바에 책방 하나 차리겠다
어쩌면 이 말이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게 아니라면, 내 단골 카페에서 구석에 책장을 책으로 채워놓고 판매하는 것을 목격한 일이었을까. 사장님께 여쭤보니 도서판매업은 비교적 사업자를 내기에 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겸업을 할 수 있다면서, 책에 대한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이 이야기를 여자친구에게 전했더니 눈이 살짝 도는(?) 게 뭔가 실수했나 싶었다. 내 여자친구는 평소에도 워낙 하자는 게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겨울에 타코야끼를 한번 사 먹다가, 그 장사를 해보자고. 붕어빵과 군고구마는 이미 몇 번이나 논의했던 바 있었다. 새로 생긴 가게가 있으면 ‘나도 이런 거 할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우리 책방 차리자, 역시 그중 하나였기에 별 뜻 없이 그러마 했다.
다시 이 주제로 이야기가 오간 것이 무엇 때문인지 세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게 책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둘이서 뭔가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에서 책방 이야기로 이어졌고, 여자친구의 행동력에 제동을 걸어주기 위해 부동산에 함께 들러보자고 했다. 실제로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확인하면 단념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의 책방은 그날 봤던 첫 번째 매물이었다. 잊었다. 나도 대문자 P라는 사실을. 아무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본 첫 번째 매물의 테라스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여자친구는 매물이 나갈까 불안했는지 이야기를 꺼내길래 ‘그냥 계약해 버릴까’라고 대답한 내가 미친 자.
원래 장소는 눈썹 문신을 하던 곳이었고, 가정집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한쪽 벽은 알 수 없는 전자 기판들이 튀어나와 있었고, 건물이 오래됐는지 벽이 살짝 기울어지기도 했다. 물론 계약 후에 살펴보니 그렇더라. 우리는 그리 꼼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단점들을 가리기 위해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 위에 책장을 직접 그리고, 사이즈를 재어가며 얼기설기 설계도를 만들었고, 목수들과 논의하면서 책방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한쪽 벽을 통째로 책장으로 만들면서 전자기판들을 필요시에 들여다볼 수 있게 문을 만들었다. 목수들과 꼬박 5일, 스테인 오일 처리와 마감을 위해 하루, 그렇게 일주일 만에 책방의 뼈대가 만들어졌고, 필요한 가구와 책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간판은 물론 책방 중문도 없어 철문으로 된 현관문을 열어놓고 추운 2월에 가오픈을 했다. 책을 700권이나 주문했지만 책장은 텅텅 비어 보였고, 인테리어 비용의 1/3은 책 값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강남 한복판에 ‘무수책방’이 만들어졌다. 정신 차려보니 도대체 수익구조는 어떻게 만들 것이며, 책방을 어떻게 홍보해야 하고, 우리는 여기서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우리는 감히 ‘온라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프라인’ 콘텐츠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분위기 물씬 풍기는 백화점이 아니라, 구수한 냄새 풀풀 풍기는 마을 회관 같은 곳이 되길 바랐다. 겨우 1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 슬슬 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책방에서 운영하는 희곡 읽기 모임에도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책방에 들어간 돈을 회수하기는커녕 매달 월세도 적자 나기 일쑤지만, 여자친구와 나는 아직도 책방 차리기를 잘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내 명의로 된 커다란 집을 마련하기엔 너무 막막한 세상이지만, 의외로(?) 거실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구나. 여기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드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어야지. 우리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수익구조 같은 것보다 어떻게 놀까 생각하지만, 이런 공간이기에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벌이도 나아지지 않을까 대충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아마 대충 긍정적인 우리 둘이 만났으니까 책방을 차린 거겠지. 둘 다 본업을 가진 사람들이라 문을 닫는 날도 제법 많지만, 그곳에서 만날 무수한 당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방 차리는 거, 엄청 쉬운데 당신도 한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