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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ho Nov 15. 2024

아끼던 것들에 대하여

아니, 아끼다 X된 것들에 대하여


어릴적 나는 무언가들을 그렇게나 아꼈다. 


어머니와 처음 교환하던 일기장. 아버지가 사주신 전기파장을 콘트롤 하는 장난감, 동생의 배시시 침이 묻은 아기냄새 가제수건 같은 것들... 그 중에서도 최고로 아끼던 것은 아마 '지우개’일것이다. 


 열 살 때까지 나의 보물상자엔 지우개가 꽤나 많았는데, 세계 각국에서 부모님과 친지들이 모아다 준 것부터 파슬리 모양, 적어도 열 가지는 될 곰돌이 모양. 아, 일본에 살던 친척동생이 보내준 새우튀김 모양도 있었다. 이 것들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당시에는 <지우개 따먹기>라는 놀이가 그리도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모은 콜렉션인데 단지 한 번의 어부바로 이걸 가져가버린다고??? 그 사행성에 기겁한 나는 우정은 잃을 지언정 지우개 따먹기 놀이엔 동참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우개들은 내 보석 모양 플라스틱 보물함에서 안전히 지켜졌다. 한 달에 한 번은 잘 있나도 확인하고, 괜시리 이미 단단히 씌워진 비닐껍질도 한번 더 점검하곤 했다. 


아마 이쯤되면 이 이야기의 슬픈 결말을 짐작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그렇다. 아낀 나머지, 너무 아낀 나머지, 나는 그 보물함을 중학생이 되며 까먹고 말았다. 15세의 쪄죽을 듯한 어느 여름날, 나는 기어코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 방을 대 청소하다 먼지구댕이 침대 아래에서 지우개 보물함을 발견했다. 뭔지도 기억이 안났고 어떻게 여는지 그 메카니즘도 까먹어 한참을 붙들고 실랑이를 한 끝에 뚜껑을 열었을 때!! 


아뿔싸... 내가 소홀 한 사이 나의 사랑스러운 지우개들은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그로테스크하게 한 몸으로 엉겨 붙어 녹아있었다. 


'아...안돼...' 


새우튀김은 새우죽이 되어버렸고, 곰은 이미 초콜렛으로 변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지우개 따먹기를 할 걸, 아니, 지우개 컬렉션을 때마다 부러워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던 그, 어머니가 안계시다던 친구에게 차라리 꺼내 줄걸. 지우개 너무 예쁘다 바꾸자하던 친구 눈앞에서 매몰차게 뚜껑을 닫아버리지나 말 걸,


이럴 걸. 저럴 걸. 이렇게 아끼다가 똥 되는건 어느 새 너무나 일상이 되어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선물해준, 뜯기도 아까워 두 달을 묵힌 모짜렐라 치즈는 이미 블루치즈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언젠가 선물할 거라고 산 멜로디카드는...몇 년이 지난 후 열어보니 Happy Birthday song 이 아닌 기괴한 할로윈 송으로 변주되어 지직거렸다.


결국, 내가 아낀다고 아껴왔던 방식은 진정의 아낌이 아니었다. 외려 이건 방치, 방관? 우선은 놔 두어도 괜찮을 것이라는 착각, 오만방자함이 이런 변질들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나는 자주

미안하다는 말을 삼켰고

보고싶다는 말을 숨겼다. 사람이 어디 가나. 물건에게 하듯 사람에게도 똑 같았다.


사랑한다는 말

사랑했다, 그립다는 말도 모두 아꼈다. 

한 번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이 말 들은 

이제 쓸 대상도 없어지니 공연히 혼자있을때에나

 어색하게 한번씩 허공에 던져진다. 


사랑해


무지하게 어색하고 상그럽다. 


미안하다

보고싶다

사랑한다

사랑했다




아끼지 말자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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