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들의 강한 마음씨가 모이면
한국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네이버도 되도록이면 들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어느 나라나 자극적이고, 흥미유발을 위한 뉴스들이 맨 앞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은 일관된 논리이나
한국의 뉴스를 보다보면 유달리 권력자, 힘을 가진 사람들이 이 나라의 중요부분을 쥐고 흔드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아마 이것은 내가 한국인이라 영어로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정보가 나에게 흘러들어와서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한 죽음, 부조리한 재판. 동물을 학대 하는 대에 대한 처벌, 대기업 속의 직원이 받는 대우, 군대에서의 위계 폭력, 성희롱, 사내 갑질, 학교에서의 학부모 갑질, 갑질, 갑질 ...
작게는 소셜 미디어에서 악! 소리를 질러보는 데에서 크게는 민원, 소송, 청원, 그리고 그렇게 해도 해결이 안되었을 때에는 조용히 삶의 방향을 달리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자주 목격 한다.
갑질.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말인지 모르겠다. 을이 있고 병, 정 이하 주루룩 따라오지만 그 중에 최고는 '갑' 인지라 여전히 계약서에는 갑과 을로 명시가 된다.
매우 가까운 지인의 자녀가 자신은 '갑'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떵떵거리고 싶다고. 모든 범죄와 편법, 꼼수가 다 당연시 되는 이 세상에서 필요한 건 갑이 되는 것 뿐일 거라고. 그런가. 그래서 이 나라의 사람들은 그렇게나 돈과 명예, 재산을 가지고 싶어서 타인을 음해하거나 고발, 혹은 짓밟아 가면서 자기가 위로 위로 가려고 하는 걸까. 그 어린 아이에게 그렇게 살아선 안된다고, 그런 꿈을 가져선 안되는 거라고 강하고 호되게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럼, 왜 착한 사람들은 아무도 정치 안 하는가, 왜 나쁜 사람들만 권력자인가를 되묻는 눈망울에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착하고 선한 사람들은 정치 못 해, 아니 안 해. 라고 할 수도 없고, 그 길은 가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어, 라고 할 수도 없고...
똑같은 잘못을 해도 누구는 풀려나고 누구는 감옥에 간다. 대부분의 판결이 정의로웠을 거라고 믿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는 더 없이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새긴다. 더러운 세상. 갑이 되고 말거다. 라고 이를 악무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좋지 않은 에너지를 가슴에 품고 방향이 틀린 온갖 노력을 하게 된다.
언제까지 나이브(Naive) 할 수 있을까? 좋은 사람들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올까? 정치인은 왜 꼭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들이 높은 자리로 가게 되는 것일까. 그 자리로 가면서 초심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들이 그 자리에 가는 것일까.
언젠가 우연히 웹툰을 켰는데 비질란테, 즉 자경단에 관한 주제가 꽤 많이 눈에 들어왔다. 정의를 대신 구현해 주는 사람. 약자에겐 히어로, 강자에겐 눈엣가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배트맨이다. 내가 사랑하는 배트맨.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배트맨 또한 어린 시절에 부모를 범죄단체에게 잃은 아픔이 있을 뿐 실은 엄청난 재력가다. 재력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재력을 정의에 사용하는 것에 나는 전혀 반감 없다. 대 환영. 나도 클라크 가문 처럼 재력이 있다면 검은 비닐 타이즈를 입고 정의 구현에 힘썼을 거라고 본다. (옷이 너무 낑기면 배트맨을 고용하거나...)
법이 처벌하지 않으니 자신들이 대신 처벌한다는 논리는 매우 속이 시원하나 비질란테도 사람인이상 논리가 언제나 정의일 수는 없다. 어느 순간은 치우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고 아마 그 시점의 응징은 단순한 복수에 지나지 않겠지.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가정환경, 태생, 교육 등 많은 외부적 요인으로 그렇게 성격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걸 다 감안해 줄 순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나는 누군가 찌르고 말거다" 라는 마음으로 태어나는 아이는 거진 없을 것이란 얘기다. (0.001%의 가능성은 남겨둔다. 나는 성악설을 믿으니깐...)
조심스레 희망을 품어보건대는 범죄가 일어나면, 물어라 때려라 똑같이 만들어줘라 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죄 없는 동물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아이의 심경은 어떠한지, 불륜을 저지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 수없는 민원으로 공무원을 괴롭게 하는 노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들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선행되고 나서 잘못을 이야기 하면 좋겠다. 이유가 무죄를 답보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더 나아질 것인지 건강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도 오고 날이 꾸름한데, 몸이 조금 아파 골골대다가 내가 사회적(그리고 정신적) 약자인가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약자'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렇게 주절거리게 되었다. 약한 게 죄는 아니잖아?
사실 나는 약한 사람들의 힘을 좀 믿는 편이다. 힘없어 보이고, 주저주저 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런 사람들이 우리의 대부분이잖아?
그 사람들이 전부 모이면 얼마나 많겠어?
여기서 꿀벌의 서사가 등장한다.
꿀벌은 일반 말벌 한마리와 교전비로 보면 1:1000까지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약해 빠졌다. 특히 장수 말벌과는 게임이 되지 않는 정도다. 사자와 아기 메뚜기 정도의 싸움이랄까...
그래서 말벌이 꿀벌들이 사는 벌집에 쳐들어 오면 사진처럼 꿀벌들이 말벌을 둘러싸고 열심히 날갯짓을 부웅부웅 해대어 46도이상의 고온을 만든다. 그러면 그 안에서 말벌은 고열로 괴로워하다 쪄죽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전방 수비수들 수십, 수백마리는 장수말벌의 저항에 의해 현장에서 죽는다. 물론 살아남은 나머지 벌들도 전투의 여파로 오래 살지 못하고 시름시름 하다 곧 죽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온다.
나의 소중한 어떠한 것을 지키기 위한 약한 것들의 강한 마음.
그것이 우리에겐 참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약한 우리가 강하게 삶을 이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꿀벌에 대한 내용: 사이언스 타임즈 ‘벌들의 전쟁?’ 토종 꿀벌이 침입자 말벌에 대한 방어태세를 갖추기 시작하다 (2023.12.08) 참고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53?nscvrgSn=254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