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학원시스템)
코로나로 인해 1년반째 아이는 학교를 평소보다 덜 가고있고, 그에 반비례해 나는 너무 지치고 있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건 아니지만 현재 사회의 모습은 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든것이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학원도 비대면하는 곳은 하나도 없고, (입장시)약간의 불편함과 마스크 착용만 한다면 이제 입장불가한 곳도 거의 없는 지경이다. 문대통령이 미국과 영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필두로 곧 해외여행도 재개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면 과장일까...? (최근 영국과 러시아는 다시 확진자가 늘고있는 모습이라지만 백신이 없던 옛날에도 4-5년이면 전세계를 휩쓸던 전염병의 경우도 잠잠해졌다고 하니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 코로나는 늦어도 3년차인 내년에는 잠잠해질 것 같다)
나는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지 않고, 필요하다면 (1대1로)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가 학교수업을 잘 따라가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아직 초등학생이기도 하고, 가뜩이나 느린 성향의 아이를 대형학원에 보내 전기세만 내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런데 5학년이 되자 부쩍 체력이 좋아진 아이는 학교도 거의 가지않고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과 노는것도 쉽지않자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힘겨워했다. (그 에너지를 공부에 쏟으면 좋으련만 엄마의 바램과는 달리 그런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와 달리 나는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으며 1년이 넘게 이어진 코로나상황으로 인해 체력소모는 더 극심해졌다. 나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바로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로 결심한 것! 우리동네는 전국에서 손꼽는 학군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만한 동네도 아니었기에 나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로 결심하자 과연 영어와 수학 중 무엇을 먼저 보내야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단 인터넷 검색을 하고 테스트도 보기로 했는데 대형학원의 테스트를 보기 시작하자 (예상치를 훨씬 상회하는) 테스트강도에 나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영어와 수학 둘다 테스트시간만 2시간이 넘었으며 영어는 중,고등학생용 단어가 주를 이루고(그 와중에 4개영역을 다 시험봅니다) 수학은 교과서수준의 문제는 20%(교과서 문제를 다 풀 수 있다면 100점 중 20점을 맞는것. 나머지 80점은 응용과 심화에서 나옵니다)밖에 안 나오는 시험을 봐야만 했다. 그나마 4-5학년에 수학학원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기에 테스트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이지 6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어 학원에 처음 입문하려면 입학조차 불가능한 학원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듣게되었다. 사교육에 휘둘리지 않아 자신의 처지를 잘 몰랐던 아이는 테스트결과에 눈물바람이었고 꽤나 멘탈이 강했던 나 역시 현실을 알게되자 무서워졌다.
나는 결국 내가 조금 더 잘 봐줄 수 있는 영어는 내가 가르치기로 하고, 아이의 첫 학원으로 대형수학학원을 선택했다. 주3회 2시간30분수업은 자리가 없어 주2회 3시간30분수업을 보내게 되자 걱정이 많았지만 학원에서는 모두가 잘 적응한다며 걱정말라고 했다. 난 대학교에서나 처음 경험한 3시간수업이 초등학생학원에 있는 사실에 꽤나 놀랐지만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겠지하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수업시간이 워낙 길다보니 저녁먹을 타이밍이 없었는데 첫날은 (순진하게도)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뭔가 허기를 채우는데 우리애만 굶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첫날 학원에 다녀온 아이의 입에서 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3시간30분동안 단 5분도 휴식시간이 없었으며 화장실도 개별적으로 다녀온다는 것. 첫수업이후 상담하게된 학원담임선생님도 저녁은 학원이 끝난 7시반에 먹으라며 밥먹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셔서 나는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전에는 식사를 8시-12시-6시로 거의 시간에 맞춰 먹곤함) 나는 아이가 그 시간동안 얌전히 앉아서 공부를 하는것만도 장하게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처음이라 집중력이 높지않다며 아이가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더라. ㅎㅎㅎ (3시간반동안 앉아서 집중력있게 수학문제를 한번도 쉬지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한가요?) 그리고 학원숙제는 역시 상당히 많아서 매일매일 최소한 5장정도는 풀어야 겨우 진도에 맞춰갈 정도의 양이었다. 다행히 학원에 로망이 있었던 아이는 첫수업이후에도 학원에 질려하지는 않았으나 수학숙제를 하느라 다른 과목을 예전처럼 살펴보기가 힘들었고, 기존에 하던 다른 공부를 날림으로 하는걸 목격하게 되었다. 마침내 학교에서 실시하는 단원평가와 수행평가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던 어느 날, 나는 또 한번의 결단이 필요함을 느꼈다. 학원에 전화해 숙제양을 절반으로 줄여달라는 부탁을 한것이다.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하셨으나 어차피 학원은 학교수업을 잘 따라가기 위해 받는것인데 이 명제를 잘 기억하는 나조차도 쏟아지는 학원숙제에 정신을 못 차릴정도였으니 이쯤되면 사교육인플레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우리아이는 수학만 다니는데도 이 정도였으니 수학과 영어를 배우는 다른 아이들의 고충은 말안해도 알만하다.
사실 학원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 학원은 못하는 아이들은 받아주지 않는다. 수학만해도 학년당 최소 10개에 가까운 반이 있어도 그 전학년수학은 배울수가 없다. 제일 밑의 반이 현행반이다. (5학년이면 초6,중1,중2,중3,고등수학을 가르치는 반은 있어도 3,4학년수학을 가르치는 반은 없음) 결국 정말 학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전부 과외나 소규모학원으로 내몰리고 이름있는 대형학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간다. 똑똑한 아이들이 모인 곳이기에 더욱 어렵게 가르치고, 더욱 숙제를 많이 내며 살인적인 스케쥴로 아이들의 삶을 옥죈다. 그런데 똑똑한 아이들일수록 학원시스템에 더욱 잘 적응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살아남기위해) 선생님이 내주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숙제들을 별표를 치며(몰라요!) 적당히 풀고(오답) 또 때로는 답지를 다운받아 정답과 오답을 섞어서 선생님과 부모님의 눈을 속인다.
사교육 인플레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어른들은 학교가 학원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이들은 학원이 학교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학교수업시간에 학원숙제를 하고, 학원에 가서 집중하기위해 수업시간에 잠을 자며, 여행도 학원스케쥴에 맞춰서 간다. (중학생만 되어도 학원스케쥴때문에 해외여행을 못가는 집이 많다고 하니 정말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학원을 보내보니 학교가 정상화 되는대로 다시 집에서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왜 요즘 아이들은 자기주도학습이 안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감당할 수 없는 학원숙제를 해내기에 급급한채로 몇년을 살아온 아이들이 갑자기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 자기주도형 학습이 되면 그게 이상한게 아닌가? 아이의 숙제량을 줄이니 아이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다른 과목들과의 형평성도 맞추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은 곧 거품이고, 거품은 (시간이 걸릴뿐) 꺼지게 되어있다. 대형학원의 스케쥴을 보니 예전에 존재했던 단과학원(재수생들을 위해 만든, 학교를 가지않는 학생들을 위해 노량진에서 시작됨)+소수정예 딱 그 시스템이더군요. (예전에는 소수정예가 15명이었는데 이제는 대형에서도 10명이 기준입니다) 과연 학원시스템으로 키워진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울지는 지켜봐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