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5학년이 되자 나 역시 마음이 바빠졌다. 그동안 가정학습으로 많이 다져왔으니 본격적으로 학원을 보낼 때가 도래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코로나라 많은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정학습을 하게 되면서 우리 아이가 학원을 갈 시기는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늘 겨울방학에는 스키장을 가거나 여행을 다녀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봉쇄되며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와 나는 서로가 이런 생활(집에서만 있는. 둘 다 집돌이 집순이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이 너무 지겨워져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나는 아이의 교과서가 점점 어려워지고 할 양도 많아지자 본격적으로 다닐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나름 학군지로, 가고 싶다고 해서 학원에 바로 등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예약을 하고 레벨테스트를 봐야 한다. 그리고 레벨테스트 역시 레벨을 나누는 역할이 아니라 입학 테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레벨테스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웠고 (국/영/수 모두 최소 1시간 반 이상 테스트를 봤으며 학원에 따라 2시간 이상의 테스트를 보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테스트가 길고 어려울수록 학원입학은 더 어려웠다) 아이는 테스트 포비아에 걸릴 정도로 힘겨워했다. 그래도 아직은 들어갈 학원이 있어서 테스트를 봤던 학원들 중 여러 평가를 종합해 집에서 가까운 학원에 등록했다. 아이는 처음 겪는 학원생활을 힘들어하면서도 재밌어했으나 정작 먼저 지친 쪽은 바로 학원 선생님이었다. 우리 애는 어릴 때부터 유독 연산을 힘겨워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연산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들의 몇 배는 시간을 들여야 사칙연산을 이해했고, 스피드까지 챙기려면 10배 정도는 노력해야 가능할 정도로 연산이 느렸다. 나는 이미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여유가 있었으나 (느리지만 계속하면 되긴 했음.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어요!) 선행을 나가야 하는데 우리 아이를 이해시키는데 진을 뺀 학원 선생님은 (연산에 비해 도형은 또 빠른 편이라 더 이해가 안 가기도 했을지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연산을 쉬워하고, 도형을 어려워함) 정말 우리 애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내게 자주 토로했다. 느린 데다 예민하면 사실 어지간한 사람은 지치기 쉽다. 선생님이 내게까지 짜증을 내던 날, 나는 더 이상은 아이를 학원에 보내기가 힘들겠다는 걸 깨닫고 아이를 다시 가정학습으로 돌리기로 했다.
다행히 내게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는데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그랬다. 그녀는 정말 모범생 그 자체로 (나중에 총괄팀장으로부터 그녀와 남편, 아이들 모두 명문대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반듯하며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는 아이의 연산 스피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4학년부터 학습지로 덧셈 뺄셈을 다시 시작하면서 반신반의했으나 결국 1년 만에 사칙연산을 원하는 시간까지 끌어올리게 되자 선생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졌다. 아이가 사회가 어렵다고 해서 결국 사회와 과학까지 같이 했는데, 학습지 덕분인지 아이는 사회 고민을 덜었고 나는 고민 끝에 수학교과와 영어도 같이하는 학습지 주3회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학습지에 20만 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는 게 과연 잘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학원비에 비하면 전과목 20-30만 원은 절대 큰돈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장기간에 걸쳐 가정학습에 익숙해있던 아이에게 학원 스케줄이 들어서자 모든 게 엉망이 되는 걸 경험한 터라 (당연한 말이지만 수학학원은 수학을 강조하고, 영어학원은 영어를 강조해서 2개의 학원만 다녀도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비교적 빠른 시간에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었다.
5학년은 정말 사춘기 초입인데 모든 게 느렸던 우리 애는 사춘기도 느린 것인지 아직도 사춘기 느낌이 나지 않는다. 여전히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그저 순둥순둥하고 착하기만 하다. 아이가 착하고 인성이 바르니 한 가지 좋은점은 반 아이들 중 여자애와도 남자애와도 잘 지낸다는 것이고 5학년이 되니 바로 그 점을 또 담임선생님이 좋게 봐주시더라. (5학년만 돼도 남자애와 여자애들이 갈라져 싸우는 통에 선생님들은 서로에게 가교가 되어줄 아이가 가끔씩 필요합니다) 학원에서의 평가와는 별개로 아이의 학교생활은 순탄하기만 하다. 학교는 의외로 성적만을 가지고 아이를 평가하는 곳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주요 과목은 학원을 안 다녔지만 아이는 거의 모든 예체능 학원을 섭렵했는데 예체능 학원에서의 아이 평가는 매우 좋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예체능 학원을 다니는 아이가 드물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성실히 하는 아이의 특성을 예체능 학원에서는 인정을 해주기 때문인 듯 하다. 결론은 공부에 대한 욕심만 버리면 우리는 모두 행복할 텐데 아이가 하나인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우리 애는 왜 이럴까....'에 대한 고민을 수년째 해오던 나는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이 어릴 때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었으며 남들보다 10년늦게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길러오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다는 것도...
손정민 군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분당에서 또 고3 남학생의 실종-사망사건이 발생했다.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아이를 공부시킬 때야 죽네사네하지만 막상 아이가 다쳐서 불구가 되거나, 아니면 목숨이 위태로울 때 건강 앞에서 공부라는 것은 함참 후순위가 된다는 것을....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 돼서는 안 되지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아이에게 공부는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고 튼튼하게만 자라 달라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걸 보고 나 자신이 얼마나 간사한 인간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오은영쌤이 이런 얘기를 하신적이 있는데.... <대화의 희열>프로그램에서 패널들에게 고등학교2학년 1학기 중간고사 점수를 한번 얘기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이미 40-50대가 된 패널들은 모두 당황해하며 한명도 점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오은영쌤이 그게 바로 정답이라면서 그럼 이번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하자 패널들 모두 각자의 경험담을 앞다투어 쏟아낸다. 그녀는 바로 그 기억(공부를 열심히 했던 경험)으로 사람들이 학창시절이후에 회사에서나 사업장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부분 점.수.때문에 자살을 한다고 하네요! 제게 이 말씀이 주는 울림은 꽤 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