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글을 잘 쓰지 않았다. 왜 였을까? 아마도 막혀있던 대면모임이 활성화되며 나 역시 여기저기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분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사람들과의 수다를 통해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분출했으므로 더 이상 내 안에 쓰고싶은 이야기가 농축되어지지 않았던 게 실은 제일 핵심적인 이유일 것이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내성적인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는것이니까. (저요? 저도 내성적인 사람이냐구요? 저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원래 타고나기는 내성적으로 타고났지만 어느순간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향성이 필수적임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학창시절 외향적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해서 지금은 마치 아수라 백작처럼 I와 E를 반반씩 갖고있으니까요) 덕분에 나는 입체적인 유형의 사람이 되어 잘 파악이 안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때론 내게 어려움을 선사했지만 대체적으로는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했고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르겠는 사람으로 주변인에게 재미와 다채로움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오늘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바로 우영우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들 또 우영우 이야기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하는 이유는 이제 모두가 우영우가 지겹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영우를 처음 본 것은 우영우 3회가 시작될 즈음으로 주식시장에서 먼저 반응이 온 '우영우'가 대체 뭔가... 하고 검색하다가 1,2회를 보고나서 이 드라마에 바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자폐는 아니지만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느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아이가 '우영우'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많은 부모가 실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 자폐아를 키우거나 혹은 자폐인때문에 힘들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고 절망을 넘어 분노를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우영우가 거둔 성취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기에. 작가가 자폐인에 대해 꽤 자세히 그려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주변에 자폐인이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 내 예상은 드라마 중간쯤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자폐인을 직접 옆에서 목격하거나 같이 생활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런 드라마를 쓸 수가 없고 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자폐가 아니라도 약간의 병리적 현상만 가지고 있는 아이와 생활하는 자체만으로도 쉽사리 일상이 초토화된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어쩌면 재벌과 가난한 여주인공이 연애하는 것보다도, 혹은 좋아하는 최애 연예인과 사귀게 되는것보다도 더 환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드라마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브리핑을 해 본다면 자폐진단을 받은 여주인공(우영우)이 한바다(대형로펌회사)에 들어가서 정명석(한바다의 파트너)변호사 밑에서 권민우, 최수연 등 신입 변호사들과 팀을 이루어 여러 사건을 진행하며 성장해가는 스토리다. 그 와중에 주인공인 우영우는 정명석 변호사의 전담 사무장 역할을 하는 이준호와 썸을 타다가 러브라인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특성상 매주 사건에 맞춰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며, 사람보다는 고래에만 관심이 있는 우영우가 꽉 막혀있는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 고래가 나타난다. (우영우를 자세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막힌 아이디어 일땐 고래가 2마리, 혹은 3마리. 그리고 그저그런 아이디어일때는 고래가 튀어오르지 않는 등. 고래씬이라도 늘 고래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님) 어쨌든 우영우는 포토그래픽 메모리같은 기억력으로 한번 본 것을 모조리 기억해내기 때문에 당연히 학창시절 1등, 서울대 입학, 그리고 서울대 수석졸업, 게다가 서울대 로스쿨 수석졸업 같은 말도 안되는 성취를 줄줄이 사탕으로 이루어낸다. 그러나 뇌가 천재적인 기억력에 몰빵된 대신 누구나 당연히 갖추고 있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 공감능력, 상황파악, 눈치등이 전무하여 사회생활에 중차대한 어려움을 겪게된다. 드라마 초반 우영우는 사람보다는 AI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아마 우영우같은 모습을 갖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우영우 역을 맡은 박은빈이 너무나 연기를 잘했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기 때문에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박은빈의 자폐연기 때문에, 그리고 '자폐'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이 드라마에 빠져 들었고 또 '스펙트럼'이란 단어로 모든 자폐를 합리화(?)하며 '자폐'가 큰 장애라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작가 역시 그렇게 드라마가 흘러가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보이며 우영우가 로펌에서 승승장구할 때 형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있는 자폐인을 등장시켜 균형을 잡고자 했고, 우영우와 준호가 연애를 시작할 때 장애인의 성추행 혐의 사건을 등장시켜 다시 한번 현실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국 드라마라면 빠질 수 없는 '출생의 비밀'과 '시한부'까지 등장시켜 뭔가 작가 나름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려는 욕망도 엿보인다. 이 와중에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이제 슬슬 "우영우 나만 재미없나?" "이제 좀 지겨워지기 시작한다"라며 지나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던 이 드라마의 거품이 서서히 빠지는 중이다. (이미 제작사 주가는 자기자리 찾아간 지 한참 됨)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사전제작한 연출진과 작가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며 아마 드라마 인기의 영향을 받으며 대본을 쓰고, 촬영을 했다면 드라마가 더 산으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주인공인 준호 이상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었던 정명석 변호사는 그가 회사에서 보기힘든 유형의 상사였기 때문인데 거절을 잘 하지 못하고, 또 남한테 싫은 소리하는 대신 본인이 다 짊어지고 가는 마인드. 아랫사람에게도 함부로 하지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은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드라마의 정변처럼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리기 쉽다. (원래 남에게 함부로 하고 말도 거침없이 내뱉는 사람이 스트레스가 없어서 장수하는 법이다) 15화에서는 정명석을 떠나 다른 파트너 변호사 밑으로 가게 된 우영우의 고난 스토리가 나올 예정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다시피 부모가, 그리고 상사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며 아랫사람(자식이나 부하직원. 엄밀히 말하면 아랫사람은 아니지만 편의상 그렇게 지칭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외려 그들은 자신의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거나 상대방에게 탓을 떠넘긴다.
앞으로 가장 큰 이슈인 준호와 우영의 러브라인은 과연 어떻게 될까? 시청자들은 둘의 연애를 응원하지만 솔직히 말해 현실은 연애 당사자는 물론, 집안에 중증 장애인이 한 명만 있어도 결혼반대가 극심한 것이 사실이다. 둘의 연애를 응원하던 사람들은 이제 자세한 설명없이 "사귀지 않는것이 좋겠다"라고 말한 우영우를 비난하지 못해, 국민섭섭남이 된 준호에게 그 화살을 돌리고 있다. 누구 하나를 욕받이로 세워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것은 준호의 문제도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영우의 문제도 아니다. 자폐인이지만 눈치가 빠른 (눈치를 머리로 받아들이면 대충 이렇게 됨) 영우가 준호를 위해 내린 최선의 결정이다. 작가가 그런 결정을 하지도 않겠지만 나는 준호와 영우가 결혼하는 것에 반대이며 젊은 시절의 첫사랑으로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우는 자신의 좋은 머리로 본인에게 가장 알맞는 최선의 직업을 선택했으며 같은 논리로 비혼을 선택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생활이란 정말 고도의 눈치를 필요로 한다. 김밥밖에 먹을 수 없는 영우에게 육아란 너무 힘들어 도저히 수행할 수 없는 난관이며, 죄없는(?)준호의 가족들 역시 그런 선택을 강요받을 이유가 없다. 어떤 시청자들은 이미 준호에게서 발을 빼고 정변과 영우를 이어주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내놓지만 모든 드라마의 주인공이 커플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준호와 영우가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긴 할 것으로 보이지만 로맨스에 관해서는 열린 결말이 되지않을까....? (내 공식입장은 둘의 연애는 찬성하지만 결혼은 반대인걸로) 13,14화가 늘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은 아마 작가의 정명석변호사에 대한 애정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 흐름상 암치료를 위해 하차할 수 밖에 없었던 정변의 이야기를 1회에 담긴 짧고 2회에 걸쳐 넣으려니 잡다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완급조절에 실패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작가님의 능력을 믿기에 15,16화에 걸쳐 향후 나올 이야기 및 떡밥회수를 잘 마무리 하시리라 믿고있다. 이미 태수미가 엄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자신이 혼외자라는게 알려지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인데 과연 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 지 매우 궁금하며, 졍변을 떠나 홀로서기(진정한 홀로서기는 아니지만 직장인이라면 흔하게 겪는)에 나선 우영우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태수미에게서 지령을 받은 민우는 과연 그 미션을 해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시청자가 예측했겠지만 권모술수 권민우가 왜 수연이와 하필이면 이 시점에 친해지겠는가? 아마 민우가 결정적인 순간에 영우에게 도움을 주는 캐릭터로 쓰일 것이 틀림없다)
이 드라마로 인해 완전히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새로 쓰게 된 박은빈은 아마도 천문학적일지도 모르는 개런티를 마다하고 '우영우'의 캐릭터로는 광고를 찍지 않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박은빈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왜 그녀가 롱런중인지... 그리고 또 앞으로도 롱런할 예정인건지... 원래부터 생각이 깊은 배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공부도 잘했는지 서강대 심리학과를 나왔음) 이렇게까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우영우 역을 처음에 거절했던 이유도 자폐연기를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고민때문이 아니라 혹시 모를 자페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느낄 불편함 때문이었다고 하니 나이는 어리지만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탄복하게 된다. 물론 드라마인지라 자페인뿐만 아니라 암환우분들 역시 불편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14회. 우영우가 3기 위암환자인 정변에 대해 '얼마 살지 못하는' 이런 대사를 반복해서 말함) 하지만 이 드라마로 인해 우리 역시 장애인에 대한 생각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7,8월 수/목을 책임졌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용두사미가 아니라 역대급 드라마로 남아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