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냥 쉬었음

쉬고 있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by 시일

상대가 먼저 표현해 주지 않는다면, 요새 뭐 하냐는 질문을 상대방에게 꺼내기가 조심스러워진 세상이다.

"요즘 좀 쉬고 있어." 라는 말 뒤에 변명같은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누군가에게 그냥 쉬었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충분하지 않다.


2030 세대에게 '그냥 쉬었음'은 선택이라기보다 유예에 가깝다. 쉬고 있지만, 쉬지 못하는 상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출근할 곳이 없다고 해서 마음이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쁘지 않은데도 피곤하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하루를 허비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은 이력서에 쓸 수 없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책이라도 읽으려고 하고, 관련이 없더라도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노력은 한다마는, 결국 자아성찰보다는 바깥에서 바라보았을 때 어떻게 평가받을지가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유 없이 늦잠을 자고, 목적 없이 동네를 걷고, 멍하니 있는 시간. 생산적이지 않은 나를 허락해보는 것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휴가라는 것이 왜 있겠는가. 직장인들에게도 연차라는 것이 있다.


‘그냥 쉬었음’은 실패도, 도망도 아니다. 필요한 공백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는 조용히 채워지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충만감을 주는 것을 찾는 과정, 그것이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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