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마을 머물다

1. --아들과 스위스

by 김민재

아이거 산중턱에 자리한 빙하마을은 열아홉 시간의 비행과 네 시간의 기차로 견딘 풍경이다.

그린델발트 반호프 거리 트렁크 드르륵 드르륵.

빗줄기만 세차게 우리를 반긴다.

아이거 북벽은 안개구름으로 몸 가리고 보여주지 않는다.

아이거봉과 융프라우 봉은 사랑하는 처녀 총각 사이.

중간에 수도승(묑크)이 방해하여 두 사람 사랑 이루어지지 못한 전설을 녹아 내고 있다고 빗줄기 따라 트렁크가 대신 전하고 있다.


어제의 빗줄기가 안긴 그린델발트의 아침 한기는 어깨가 시리다.

아이거 북벽을 치고 가는 만년설 끌어안고 구름 지나는 지극히 낯선,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풍광을 눈으로 찍으며 케이블카타고 멘리헨 전망대 간다.

눈 아래 찍히는 푸른 초원 목초지 위로 흘러가는 워낭소리 잔설에 새기며 도착한 전망대.

어떤 모습으로 도착해 있을지 궁금해 하는 사이 알프스 봉우리들 구름에 가려진채 8월의 추위가 먼저 반긴다.


왕관모양 전망대까지 오르내리며 얼굴이 지워지는지 모르고, 발목이 시큰거리는지 모르는 듯 춥다.

뭰리헨 레스토랑에서 뜨끈한 차로 목축이고 아이거를 안고 츄계산을 밀어내며 멘리헨에서 클라이데 사이데크까지 야생화 점멸하는 시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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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걸었을 듯한 그러나 처음인 이곳의 바람은 내 몸을 감고 나의 길을 만들고 있다.

내가 아닌 나는 그대가 모르는 사람. 그대가 아는 나는 그대가 이해 할수 없는 사람.

내가 아닌 나는 하이킹 길의 끝을 이으며 유모차 이끌고 가는 관광객들 비집고 지난다.

어제를 밀어내듯 알프스에 나를 녹이며 내일을 간다.

여행이란 꿈을 꾸면서 멀리, 아무 멀리.


자연이 이룬 풍경은 그림을 따를 수 없다는 그말을 실감하며 알프스에 엉켜 지낸 하루.

내안에 뭉쳐진 모든것들 설산이 대신한다.

인간은 자연에 미치지 않고 한 순간도 목숨을 이어갈 수 없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가치를 몸으로 깨닫는 것이 항구적인 자연 신화적 삶의 길이 된다고 하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여름과 겨울 사이 그곳에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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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마을*



역에 내리자 소낙비다

아이거 봉우리에 걸 터 있던 만년설 뭉개지고 안개구름 마을로 내려와 솜털로 날리다 지붕위에서 찌그러진다

캐리어 끌고 가는 사람은 처마 밑으로 스며들고 캐리어에 끌려가는 우리는 꼿꼿하게 꽂히는 빗줄기 받아내고 있다


깨진 빗방울 속을 관통하는 도르프 거리 한가운데 속으로 그렇게 오늘 하루가 묻혀간다

아이거 북벽을 치는 빗줄기 어둠에 더욱 안개 두터워지고 울타리 나팔꽃 핀 시간들 무거워 동그랗게 말려간다

어느새 아들과 나도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융프라우로 가는 산악열차와 그린델발트로 오는 산악열차가 교차하여 다시 인터라켄으로 가는 산악열차 위로 떨어지는 비를 함께 보고 있다


*해발 1,034m의 그린델발트는 빙하가 내려왔다 하여 빙하마을로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