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체르마트 쓰다
가슴에 명장면 하나쯤 간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이병률 시인을 생각하다,
인생에 잊지 못할 시 한 편 낚고 싶어 여기에 왔노라고 나를 위안하며 반호프 거리를 걷는다.
휘발유 차량이 운행할 수 없는 청정마을.
아기자기한 가게들 사이 이곳 물가의 높이와 내 주머니의 가벼움으로 그냥 눈인사만 나눈다.
여행자는 늘 허기가 진다.
마음의 허기와 육체의 공복감.
채워지지 않은 그 공허감을 키르히 광장 앞 아주 아담한 식당 퐁듀의 향기에 젖어본다.
와인 향기 그윽한 퐁듀에 젖은 감자알 입안에 맴돌다, 그만 혀를 깨물고 아픔을 디밀어 내는 어제의 내가 여기 키르히 다리에 있다.
빙하가 녹은 마터 비 파스 강물은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강줄기 따라 걷다 다다른 키르히 다리.
고개 치켜세우고 바라보는 아침 내내 구름에 가려 문 열지 않는 마터호른.
아쉬움은 또 다른 아쉬움을 남긴 채 서있다.
등 돌려 보면 산악인의 공동묘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비 파스 강물 점선으로 만나 실선으로 흐르는 잠깐의 그 하루가 우리 인생이라 말하는 듯하다.
고르너그라트 오르는 산악열차와 함께 마터호른 자꾸 어깨를 친다.
걸음마다 나고 죽는 수백 개의 내면에 도착하는 길.
초록 물들까 아니 초록 물들고 싶어 걸을 때마다 설렘 가득 담고 다다른 곳.
먼 설산의 만년설 녹은 물줄기가 이룬 라펠제 호수.
마터호른이 반영된 호숫가에 돗자리 펴고 아들과 나는 샌드위치에 설산의 물줄기를 적신다.
납작 봉숭아 한입 베어 물때마다 서걱거리는 감정의 부정맥 어쩌지 못해 산악열차에 실어 보내는 오후 한때.
아슴히 저며 오는 기억의 저편.
아들은 나의 중심에서 빛이 되는 오늘.
멀리서부터 따라온 바람은 혹한의 빙하와 혹서의 마른 초원을 홀로 지킨 기다림의 숨결.
젊음, 그 시절의 내가 그렇게 넘긴 책장 속 한 줄 그어진 밑줄로 남는다.
라이제 호수*
야생화 융단을 깐 길 딛는 첫 발 혹은 마지막 발
나는 들판의 구석
가장 좁은 길목 구석 한가운데에 앉아 있다
차고 희고 푸른 빙하 호숫가로 사람들 그림자 만들며
텁텁한 땀방울 뚝뚝 한낮을 지우며 지나간다
오늘을 지나 다시 오늘이 되는
기록 되지 않는 곳으로 구름은 마터호른을 넘는다
부드럽고 내색 없이
따뜻하고 흔적 없이
구르메 길* 끝의 처음에서 처음의 끝 쪽을 향해
기억을 떠난 풍경이 오늘을 기록하며
가지 않는 길을 지나쳐 오지 않는 곳으로
몸과 마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계획 없이 나는 걸어가고 있다
*수네가 파라다이스 전망대 아래쪽이 있다
*수네가 파라다이스에서 치르마트로가는 하이킹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