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에 취하다

3. --아들과 스위스

by 김민재


셰브레 역에서 바라본 포도밭이 내 눈을 열고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포도 넝쿨 알알이 박힌 세브레 계단식 언덕 마을과 포도밭은 풍경마저 달콤한 소리로 온다.

카페 르덱에서 샤슬라 화이트 와인에 취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취해서 한 번쯤 그늘진 나의 속 뜰을 펼쳐 보이고 싶다.

내가 세운 기둥에 받혀 뻗는 넝쿨, 내가 처논 가시울타리, 누구도 근접 못하게 뿌려놓은 내가 뿌린 농약 하얀 마음 가루, 그곳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 뜰에까지 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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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태양’이 자리한 지역.

하늘의 태양, 호수가 머금은 태양, 그리고 경작지를 따라 형성된 벽에 머금은 태양빛이 포도송이 키우는 길을 걷는다.

포도밭 하이킹 코스는 아들과 나 둘 뿐이다.

모두 라보 익스프레스 꼬마기차를 탔는지 인적 없다.

울타리 너머 청포도 한 알.

아들의 핀잔 음악처럼 들리는 몰래 맛보는 찌릿함 뒤에 오는 맛의 향연.

“농약 맛이 어떠하신지요, 민재씨”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달콤함이지요, 동주군”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샹 샤프랑 마을까지 아롱아롱

오늘이 쓰고 지워지는 사이 길의 끝에 호수를 낀 샹 샤프랑 간이역.

로잔행 열차를 기다린다.

나를 기다리다 잃어버린,

내가 웃으려다 놓쳐버린,

그 시간을 따라 멈춰버린,

나는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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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과 몽트뢰 사이에 위치한 포도 재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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