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를 못하는 이유?
다들 알다시피 분명한 원인은 시험 제도에 있다. 시험은 오류를 가려내는 작업이다. 틀리면 점수가 깎이고, 점수가 깎이면, 대학 입시나 취업에 지장이 생기는 이 교육 시스템이 사람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 나도 모르게 '틀리면 안 된다'라는 강박관념이 주입된다. 시험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준비할수록 이 생각은 머릿속에 더 깊숙이 파고든다.
이 시험 문화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 바로 지적이다. 틀렸을 때 곧바로 지적을 한다. 써먹을 기회가 생겨 용기 내어 영어로 말했지만 옆에서 누군가 급히 끼어든다. '저기~ 너 방금 문법 틀렸어~' '그땐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신경 안 쓰고 싶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고 점차 영어 앞에서, 그걸 듣는 한국인 앞에서 주눅이 든다.
내게도 한때 이런 지적쟁이 친구가 있었다. 북경에서 연구하던 시절, 같은 반이었던 단짝 한국인이다. 뉴욕에서 4년 어학연수하고 가족따라 얼떨결에 중국에 살게 된 친구였는데, 어쩌다 보니 내 옆에 앉게 되고 친해지고 그렇게 일 년을 붙어 다녔다.
정말 알뜰살뜰 잘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전직 프로 운동선수였어서 집중력이 놀라울 정도로 남달랐고 매사에 경쟁심도 다분했다. 함께 놀 땐 굉장히 잘 맞고 즐거웠지만, 그 친구가 언젠가부터 나를 같은 경쟁 선상에 두는 게 느껴졌고(난 경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함께 있는 자리가 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뉴욕 현지에서 배워 미국 표준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자리를 가던 본인의 영어실력 어필을 정말 적극적으로 했다. (사실 난 그런 자기 PR을 잘하는 사람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평생 선수였어서 그런지 곁에 있는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경쟁자로 두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게 나를 너어무 불편하게 했다. 더 이상 순수한 자기 PR이 아닌 비교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인을 내리며 자기를 올리는 방법으로.
이 친구는 나를 중국에서 처음 만났기 때문에 내가 중국어를 잘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영어실력은 좀 의아해했었다. 영어는 어디서 배웠냐는 질문에, 어릴 적 집에서 배웠다고 했다. 어떻게 배웠냐 묻길래 엄마가 영어 밑에 한글 발음을 달아준 거 그냥 집에서 매일 읽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외국어 배우면 엄청 효과적이야~라고 했더니, 그 친구는 ‘한글로 영어 배우면 안돼’라고 했다. 반박 근거는 딱히 없었지만 어쨌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고,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그건 진짜 영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그 당시 맨땅에 헤딩식으로 중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학업이 좀 힘들어 보여서 하루는 수업 발표문 아래에 한글 발음을 달아주려 했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한글 발음보다 영어 병음표기가 더 정확한데(?) 왜 굳이 한글로 배우냐는 거다. 아무래도 영어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던 것 같다. 난 그래서 발표문에 항상 한글로 발음 달아 연습을 했고, 그 친구는 영어 병음을 달아 연습했다. 각자에게 편한 방법으로 했다.
언제부턴가 친구는 옆에서 내가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걸 옆에서 가만히 듣다 내게 충고를 해주기 시작했다. '너 아까 말할 때 그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됐었어.' 처음엔 고쳐줘서 좀 고마웠는데 내가 그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가 아닌, 사사로운 것에 대한 지적을 거듭 들으니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은 딱 이 친구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소통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오류 없이 정확히 말하는가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느낌이었다.
친구는 내 영어와 중국어 실력은 인정을 했지만, 여기까지 온 방법은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영어 중국어를 말로 잘해도 방법 자체는 납득이 안되었나 보다.
사실 이 친구에게뿐만 아니라 한글로 영어 일을 하면 똑같은 편견을 사방에서 수도 없이 듣는다. 한글로 토 달면 발음 엉망 된다, 정확한 표기가 불가능하다, 가짜 영어이다, 영어는 영어로 배워야 한다, 영어 읽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한글'로 영어라는 말만 들고 화부터 내는 사람도 꽤 만나봤다. 세상에 제일 편하고 빠른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뿐인데.
왜 화를 낼까?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이유가 궁금해졌다. 늘 외국어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동생과 함께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그들이 영어를 너무 어렵고 비싸게 배웠기 때문에. 영어에 들인 돈과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들도 자기만큼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배워야 되는 것이다.
그 마음 이해간다. 쟤는 나처럼 오랜 기간 미국에서 살지도 않았고, 돈을 나만큼 들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영어를 하지. 말도 안 돼. 가짜시 저건.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한글로 영어는 치트키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한글로 써도 된다. 그간 영어를 어렵게 비싸게 배운 사람들의 많은 공분을 살 수 있고, 가짜 영어라고 질책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좋다. 기존 방법으로 영어 하나 할 시간에 다른 외국어 하나 더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단축된다.
좀 틀려도 된다. 옆에서 영어 문법 좀 틀렸다고 곧바로 안 잡아줘도 된다. 좀 틀리면 어때. 아나운서가 아닌 이상 우리는 한국어를 말할 때도 끊임없이 오류를 만들어낸다. 늘 문법적으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문장을 서슴없이 주고받는다.
모국어도 그렇게 배웠다. 우리도 한국말 배울 때 수도 없이 틀려가면서 자연스러운 말을 찾아왔듯이 외국어도 그렇게 배우면 된다.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으로 하려면 말이 더 어색해지고, 스스로 부담되어 입부터 떼지 못한다. 혹시나 틀릴까 봐란 생각이 앞서면 대화에 끼질 못한다.
그러니 마음껏 틀리자. 지금까지 미국인 포함 수많은 외국인을 만나 친구로 사귀었지만 말을 얼마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말이 좀 서툴고 짧아도 내 의사를 얼마나 당당하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오히려 발음적인 면에서 한국인 특색을 제대로 살리면 가산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처음부터 말을 잘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다 과정이 있었겠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는 그 과정이 안 보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한글로 영어 하면 부자연스러움에서 자연스러움으로 수렴되는 그 과정이 놀랍게 단축되더라. 지금도 노력하는 중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