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는 중에 만나는 것들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 산책

by 푸른 숲


별다른 일이 없는 휴일에 꼭 하는 일이 있다. 천천히 걷는 일.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공원까지만. 어떤 날은 좀 더 가서 근처 체육관까지 돌고 올 때도 있고. 어떤 날은 강변 주변으로만, 어떤 날은 강변에 있는 서점까지.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걷는다. 산책의 이유는 다양하다. 날이 너무 좋아서. 바람이 너무 부드러워서. 봄꽃이 예뻐서. 여름꽃에 반해서. 아이들과 운동을 하러. 책을 보고 싶어서. 노을이 드리는 것을 보고 싶어서. 샌드위치를 사고 싶어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그저 걷고 싶어서. 참 많은 이유로 그렇게 걷는다.


산책을 하다 보면 “눈”이 가장 바쁘다. 나는 산책과 함께 바라보는 일을 한다. 두 다리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갈 때마다 나는 관찰을 한다. 산책길에 만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롭게 생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잎 하나 없이 앙상하던 나무들이 어느 가지부터 잎이 돋아나는가 보고 어떤 꽃들이 먼저 피는지 살핀다. 학교 운동장에 심어져 있는 보랏빛 가지가 얼마나 자랐는지 살피고, 꼭지만 남은 줄기에 올망졸망 자란 토마토를 누군가 수확해갔나 짐작도 해본다.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었던 개오동 나무가 왼쪽으로 기울어 잎을 드리운 것을 보고 그 각도가 20도 정도 되겠다 혼자 생각해보고, 배롱나무의 분홍꽃들이 모여 피는 것에 감탄도 해본다. 그리고 그 꽃이 며칠 동안 피어있는지 속으로 셈도 해본다. 새로 생긴 생과일주스 가게에서 땡모반을 파는 것을 눈여겨보았다가 어느 일요일 아침에 사다 먹기도 한다.(작년 치앙마이에서 매일 사 먹었던 수박주스 파는 곳이 생겨 무척 반가웠더랬죠.) 그렇게 이어진 산책길을 따라 공원에 들어서면 오늘도 공원에서 여유를 만나는 사람들을 본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수변에 앉아있는 사람들, 러닝을 하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각자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본다. 저마다 공원을 즐기는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여기 모인 것 같다.


뛰는 듯 산책하는 아이들에게 물을 사주러 편의점에 들어가면 이곳 편의점이 러버덕과 강변이 제일 잘 보이는 뷰 맛집이라고 혼자 선정해본다. 강변에 모여 다니는 물오리들이 일광욕을 할 땐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모를 만큼 저들도 햇빛을 사랑하는구나 깨닫고, 그 식구들이 세 마리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가장 작은 물오리 한 마리가 늘 잠수를 하며 물결 위를 날듯이 미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알아본다. 호기심이 상당한 오리일 것이다. 호기심이 많기로는 우리 둘째 아들이도 빠지지 않지. 잠자리를 쫓는 아이들 뒤로 걷다 보면 새삼 아이들의 키가 커진 걸 안다.


땅에 떨어진 꽃송이를 잠시 들어봅니다

“눈”으로 관찰하는 것에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는 것 외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실도 있다. 무성하던 잎사귀가 어떤 가지부터 잎을 비워내는지 살피고, 꽃도 마찬가지. 어느 꽃가지에서 꽃잎들이 떨어져내리는지도 본다. 꽃들 중에는 꽃 한 송이가 통째로 떨어지기도 한다. 채 피지도 못하고 찬 바람에, 세찬 비에 떨어진 꽃들도 있다. 그들을 보면 잠시 슬픈 생각이 든다. 어디 꽃뿐일까. 산책길에 한 때 자주 들렀던 카페가 문을 닫았을 때도 있었다. 커피의 향도 좋았지만 직접 코바늘로 뜬 차받침을 내주던 곳이라 온기가 느껴졌던 곳인데 어떤 일로 문을 닫게 된 것일까. 연유를 알지 못한 채 아쉽고 헛헛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럴 땐 좀 더 걷다가 들어간다. 사라지는 것들은 참 아쉽기만 하다. 꽃과 나무와 익숙한 가게들 뿐만 아니라 부쩍 자란 아이들의 뒷모습에도 사라진 것들이 보인다. 한창 귀엽던 아이들의 꼬마 시절, 지금도 사랑스럽지만 아주 작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언뜻언뜻 그리워질 때가 있다. 못 잡는 곤충이 없을 정도로 꽤나 개구지던 탐험가였던 모습들이. 우리 첫째 딸에게 그 꼬마는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해준다.

내 안에 있어요.

사라진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쩌면 우리 안에 남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잊지만 않는다면. 유난히 아름다웠던 배롱나무 꽃가지들을, 커피 한 잔에 담긴 그때의 정성들을, 떨어졌지만 한 때 찬란했을 꽃송이들을. 계절은 지나가지만 무성했던 그해의 나뭇잎들을. 호탕하게 웃던 그 작은 꼬마들을.


한편으로는 내가 여유가 없어 놓쳤던 것들을 보기도 한다. 집 옆에 수국이 피어있었던 걸 수국이 지고 나서야 알게 될 때가 있었다. 모든 수국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때 나는 그걸 보지 못하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지나간 시간을 잠시 들여다본다. 그러다 다시 꽃을 본다. 마지막 수국 한 송이가 남아 부드러운 여름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그리고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산책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건강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들”이라고 한다. 내가 산책길에 오가며 나의 눈으로 관찰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진정 나를 위로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요즘같이 코로나로 인해 여행도, 모임도 힘든 때 집 주변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걷는 일이 삶을 견디게 하고 힘을 주는 것이 아닐지. 그런저런 이유들로 별일 없는 휴일이면 나는 꼭 산책을 한다. 천천히 걷는 일들을.



늦게 남아있던 수국 덕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