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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리얼 Sireal Sep 16. 2022

ESTJ 남자친구의 프로포즈 성공기

폭풍눈물

이 글은 제가 프로포즈 어떻게 했는지 물어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답변서입니다.




사랑스러운 여친에게 프로포즈를 해보자


여자 친구와 결혼 얘기를 스리슬쩍 꺼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얘기는

나는 프로포즈 안 받으면 결혼 준비 안 할 거야

였다.


프로포즈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 결혼식 몇 달 전에 깜짝 이벤트를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닌가 보다. 그렇게 프로포즈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길 어언 두 달. 프로포즈에는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그렇게 반지, 편지 정도만 준비해서 다른 지인들에게 물어봤다. 세게 욕을 먹고 나서야 제대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내 프로포즈의 준비물은 아래와 같다.

1. 반지
2. 호텔
3. 레스토랑(레터링)
4. 풍선 장식
5. 꽃다발
6. 포토 카드
7. 현수막
8. 영상 편지
9. 원피스
10. 액세서리
11. 잠옷
12. 구두
13. 질문 카드
14. 핫팩
15. 수면 안대
16. 이벤트 영상
+
17. 여자친구가 마음에 들어했던 옷
18. 여자친구가 좋아했던 머리 스타일


정리를 해보니 꽤 많은데, 어떻게 준비했고, 프로포즈했는지 풀어내 보자.





프로포즈 D - 20

   프로포즈 20일 전쯤에는 미리 반지(1)를 구매했다. 일단 아무런 생각이 없었고, 반지를 갖고 있으면 언제든 프로포즈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지를 구매한 이후 갑자기 SNS에 프로포즈에 관련된 영상들이 많이 뜨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호텔 프로포즈가 대세란 소식을 들었다. 마침 지인에게 추천받은 호텔이 있어서 해당 호텔을 예약(2)했다. 호텔 일정이 평일을 끼고 있어서 휴가를 쓰게 만들어야 했는데, 연휴기간과 겹쳐 다른 곳에 놀러 가자며 꼬시기 편했다. 그렇게 호텔 일정 기간만큼 휴가를 약속받고 일주일이 흘렀다.


프로포즈 D - 14

   반지와 호텔을 준비했으니 이제 꽃다발과 편지만 있으면 되겠지 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던 와중 지인들에게 프로포즈 얘기를 꺼냈다. 지금껏 준비한 내용을 말하자 지인들이 그렇게 프로포즈하면 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며 정신을 일깨워주었다(?). 그래서 뭐가 부족한가? 다시 한번 고민하다가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3)했다. 그 후 다시 찾아보니 요즘엔 영상 편지를 많이 한다는 걸 보게 되었다. 그래서 프로포즈 영상을 만들어주는 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프로포즈 D - 7

  프로포즈 영상을 제작해줄 업체를 물색하며 지인들에게도 물었더니 내가 유튜브를 하니까 영상을 직접 만들어보는 게 어떻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만들던 영상보다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그냥 무시하고 넘겼지만 프로포즈 날이 가까워질수록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올라갔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우선 추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을 모두 수집했고, 원하는 순서로 배치하고 배경음악을 깔았다. 그리고 파이널 컷에 있는 기본 트렌지션을 넣었더니 그럴싸한 프로포즈 영상이 완성되었다. 준비해두었던 편지 형식의 멘트를 녹음했더니 국어책을 읽는 느낌이 났다. 진심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녹음했다. 그럴싸하게 나와서 넘어갔다.

   호텔을 예약했는데 그냥 들어가면 뭔가 아쉬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프로포즈 세팅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있을 것 같아서 검색했더니 방을 대신 꾸며주는 업체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고민 없이 문의했다. 풍선형, 생화형 등 다양한 상품이 있었는데, 내 프로포즈의 메인은 호텔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기본 상품인 풍선 장식(4)을 선택했다. 그리고 당일에 몰래 가져갈 수 없는 꽃다발(5)포토 카드(6), 현수막(7) 등을 주문했다.

  이전에 만들어둔 영상 편지를 다시 꺼내봤는데,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다 갈아엎었다. 새롭게 사진과 멘트를 녹음하고, 이번엔 계획된 멘트가 아니라 이전부터 고민해왔던 내용을 편집 없이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사진과 노래로 마무리했다. 드디어 영상 편지(8)를 만들었다.


프로포즈 D - 1

  프로포즈 하루 전. 머릿속으로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계속


뭔가 부족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바로 숙박과 레스토랑을 간과한 것이었다.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호텔을 예약했지만 숙박을 한다면 여자들은 화장품이나 속옷, 잠옷 등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또한, 프로포즈를 받고 호텔 레스토랑에 갈 예정인데, 집 앞에 가는 것처럼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가고 싶어 할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인형 옷 입히기를 준비했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자 친구가 좋아하는 옷 브랜드 매장에 갔다. 갖고 있지 않으면서, 예쁘면서, 호텔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원피스(9)를 구매했다. 원피스를 구매하니 목 끝까지 올라오는 형태여서 목이 심심해 보였다. 청바지에 후드티를 대충 입고 나오면 신발도 운동화일 것이기 때문에 점원에게 물어보고 어울리는 귀걸이와 목걸이, 구두를 찾으러 떠났다.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액세서리 브랜드에 가서 해당 색상을 가진 귀걸이, 목걸이 세트 액세서리(10)를 구매했다. 구두를 찾으러 백화점을 돌다가 조식을 먹으러 갈 때 청바지에 후드를 입고 가기엔 또 불편해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잘 때도 입을 수 있고, 앞에 잠깐 나갈 수 있는 잠옷이자 외출복 같은 잠옷(11)을 구매했다. 내가 간 백화점은 원피스에 어울리는 구두가 없어서 다른 동네의 백화점으로 가서 구두(12)를 구매했다. 10시부터 20시까지 총 10시간의 쇼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 이거 어떻게 몰래
아무런 의심 없이 전달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프로포즈를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텔로 가는 길에 이벤트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구두를 사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어떻게 이벤트를 할지 고민했다. 우선 다이소에 들어가 차에서 심심하지 않을 미션 아이템들을 구매했다. 가는 길에 미션 3개를 줄 생각이었는데, 30분 넘게 가는 길이라 시간을 끌어줄 무언가가 필요해 파티 코너에 갔더니 술자리 게임 카드가 있었다. 질문이 52개나 있어서 이거면 되겠다 싶어서 질문 카드(13)를 구매했다. 그다음 핫팩을 배에 붙이는 걸 좋아해 두 번째 미션으로 핫팩(14)을 마지막엔 호텔이란 걸 숨기기 위해 수면 안대(15)를 구매했다.  

  모든 구매를 마치고 이제 집에 돌아와 납치 콘셉트의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Canva에서 어두운 배경을 고르고, 무서워 보이는 이미지를 깔았다. 음성 변조를 검색하니 파이널 컷에서 기본 기능만으로 음성 변조가 가능해 이벤트 영상(16)을 생각보다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프로포즈 D - DAY

  대망의 프로포즈 D-DAY가 되었다. 전날에는 10시부터 20시까지 쇼핑을 하고, 밤 12시까지 이벤트 영상을 편집했는데도 졸리지 않았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이유는 여자 친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차에 미리 이벤트 물건을 숨겨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계획한 대로 실행해보자.


  우선 아침에 일어나 어제 구매한 원피스, 구두, 액세서리, 반지, 질문카드, 핫팩, 수면안대, 잠옷, 내 잠옷, 슬리퍼 등을 모두 챙겼다. 백팩은 물론이고 양손 가득 짐이었다.

  그 후 여자 친구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옷(17)을 입고, 여자 친구가 좋아했던 머리 스타일(18)을 하러 집 근처 헤어숍에 갔다.


  여자 친구와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미리 나와있기라도 하면 여자 친구의 차에 물건을 숨겨둘 수가 없기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이벤트 물건을 숨겨두었다. 이벤트 용품은 글로브 박스, 사이드 브레이크 박스, 문 옆 등에 숨겨두었고, 나머지 물건들은 트렁크에 숨겨 두었다.


이제 출발이다.


  출발 후 10분 간은 평범한 대화를 나누었다. 도착 30분 전, 내 아이패드에 넣어두었던 이벤트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은 주의사항과 함께 세 가지 미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벤트 영상

  미션을 시작하면 10분씩 음악이 재생되는 구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미션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이벤트 용품(질문 카드, 핫팩, 수면 안대)이 활용되는 방법은 위 영상을 참고하시면 된다.

  호텔 도착 5분 전에는 수면 안대를 착용하라고 했다. 이유는 원래 호텔 근처 레스토랑에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고자 수면 안대를 착용하라고 했다. 수면 안대를 쓴 후 오늘은 최고의 날로 예정되어 있는데, 안대를 벗는 순간 최악의 날이 될 거라고 협박(?)했다.

  호텔 주차장에 도착한 후 위 영상의 마지막 부분을 재생한다. 조수석 바로 아래에 있는 액세서리를 전달했다. 그 후 트렁크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가지고 체크인을 했다. 짐이 꽤 많았으며, 물건들을 꺼내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원피스, 잠옷을 구매한 이유, 슬리퍼를 가져온 이유 등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들어오지 마라고 한 다음 내가 먼저 들어가서 준비해온 영상 편지를 세팅했다. TV에서 영상을 바로 재생하도록 USB에 담아 갔고, 호텔 TV가 작동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노트북을 들고 갔다. 다행히 USB가 잘 작동되었고, 프로포즈 업체도 풍선과 꽃다발, 포토 카드를 잘 세팅해주었다.


  이제 여자 친구를 방에 들어오게 한 다음 함께 프로포즈 영상을 감상했다. 여자친구는 프로포즈 영상 보면서 폭풍오열을 하고 나는 영상과 오열 둘 다 감상했다.

  프로포즈 영상을 본 후 내용에 대해 설명한 다음 준비한 원피스, 구두, 액세서리를 모두 입힌 다음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스토랑을 가는 동안에도 너무 좋아했다. 선물을 꽤 많이 받았다. 반지 빼고 17개의 선물을 받았으니 여자 친구는 프로포즈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이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후

  레스토랑을 예약할 때 그날 프로포즈를 할 예정이라고 혹시 호텔 측에서 제공해주는 게 있냐고 여쭤보니 치즈케이크와 레터링 서비스를 제공해준다고 하셨다. 레터링을 주문했다.


  여자 친구와 레스토랑에 도착하여 코스 요리와 샴페인을 맛있게 먹었다. 디저트까지 나온 후 마지막에 레터링 된 치즈케이크가 나오길래 준비해두었던 프로포즈 링을 전달했다. 이렇게 프로포즈 링까지 피날레를 장식하고 내 프로포즈 이벤트는 끝이 났다.




여자 친구는 절대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라고 했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진 나도 정말 행복했다.

끝.


프로포즈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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