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소형을 만나려면 정학이의 둘째 형네 부부가 운영하는 포장마차로 가야 했다. 그가 낮이고 밤이고 포장마차 사업을 돕는 일로 바빴기 때문이다. 나는 영소형이 보고 싶을 때면 포장마차로 가 여분의 간이의자에 앉아서 영소형을 기다렸다. 영소형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거리구경을 했다. 저녁시간의 포장마차는 늘 붐볐다. 바쁘게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음식 냄새와 소란한 분위기가 캄캄해진 하늘과 대조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손님은 연이어 끊이지 않았고, 돈통엔 현금이 두둑이 쌓여갔다. 정학이의 둘째 형네 부부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에도 힘든 줄을 모르고 내내 웃었다. 문득 나는 그들의 자리에 서있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호탕히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쌓여가는 돈을 셀 틈도 없이 바쁘게 음식을 만들어 나르고, 떠나는 손님의 등 뒤로 깍듯이 인사를 보내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성공한 젊은 사장이었다. 놀고먹는 백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그러자고 별 볼 일 없는 공장 직원으로 평생을 살 수도 없다. 그만한 생각에 다다르자 결심이 섰다. 포장마차를 해야겠다.
나는 가장 먼저 정학이에게 내 결심에 대해 이야기했고, 정학이는 나의 결심을 기꺼이 지지해 주었다.
"석규야. 좋은 생각이네. 포장마차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내 친구 중에 상호라고 2년째 금아시장에서 포장마차 하는 놈 있거든. 자리 만들어줄 테니 같이 한 번 보자."
상호는 내게 포장마차 일을 알려줄 테니 2주간 자신에게로 와서 일을 도우며 배우라 했다. 나는 동이 트기 전 새벽부터 상호와 시장에서 미리 식재료 장을 같이 보았고, 장 봐온 각종 재료들을 손질하는 법을 배웠다. 멍게는 껍질을 갈라 내장을 제거한 뒤 물기를 빼내야 하고, 오징어는 내장과 먹물주머니를 없애고 몸통의 투명한 뼈대를 제거한 후 다리 빨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 이외에도 고갈비 굽는 법과 쓰일 양념의 레시피를 터득했다. 나는 2주간 상호의 포장마차에서 일을 도우며 운영의 전반적인 것들을 배웠다. 2주가 지나고 나니 막연한 꿈처럼 멀리 있던 포장마차 사업이 곁으로 가까이 와있었다.
나는 당장 금례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내가 이렇게 평생 놀고먹고 할 순 없잖아. 오래 생각을 해봤는데 사업을 한 번 해보려고."
"사업? 뭘 하려고."
"나 포장마차 할 거야."
"갑자기 무슨 포장마차를 어떻게 해."
"엄마, 내가 좋은 친구를 만나 가지고 금아시장에서 포장마차 오래 한 친구한테 다 배웠어. 근데 문제는 자금이 없어. 나 포장마차 하나만 차려줘."
금례엄마는 그 친구는 믿을만한 친구냐, 포장마차 일을 얼마간 배웠느냐, 초기 자금이 얼마나 드느냐, 차린 이후에도 추가로 돈을 뜯어낼 요량이냐 등의 불안함이 섞인 질문들을 수십 개씩 해댔다. 나는 금례엄마가 어떤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잘 아는 사람이다. 엄마는 나를 이토록 못 미더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은 사람 또한 나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나는 교묘한 말재주로 엄마를 홀리고자 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게 뜨거운 진심이었다.
"엄마, 초기자금만 도와주면 이 이후로 절대 엄마한테 손 안 벌려. 내가 놀고먹고 지낸 지가 몇 달짼데... 엄마도 잘 알잖아.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산거 아니야. 계속 포장마차하는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일도 배웠고, 나 잘할 수 있어. 나 이걸로 성공해서 엄마 식모살이 그만두게 할 거야. 믿어봐."
금례엄마는 돈 달라는 사람이 무슨 말을 못해 라고 하면서도 입가로 번지는 미소는 어떻게 참지를 못 했다. 엄마는 갖고 있던 보험을 해약해 내게 포장마차 자금 70만 원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곧 금아시장 부근으로 터를 잡았다. 열여덟에 학교를 그만두고 열아홉의 여름에 나는, 포장마차 사장이 되어 있었다.
영업 첫날, 나는 시장 봐온 것을 전부 다 팔았다. 손님은 단 한 팀이었다. 정확히는 정학이와 정학이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었다. 나는 정학이의 둘째 형네 부부의 포장마차와 상호의 포장마차에서 보았던 돈통에 가득 쌓인 현금 무더기를 오픈 첫날에 보았다. 돈통을 가슴 깊숙이 안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벅차도록 행복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돈을 세고 또 세었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그렸다. 온몸에 금붙이를 두르고 활짝 웃고 있는 금례엄마와 고급 세단을 운전하는 나, 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한 내가 사는 신식 빌라, 그 창문 너머로 예쁜 아내가 보인다. 그녀는 빨래를 널고 있고, 그 옆으로는 토끼 같은 자식이 칭얼대고 있다. 나는 장사를 준비하느라 오늘 하루 끼니도 다 걸렀고, 찬란한 미래를 그리느라 밤잠도 설쳤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고 잠도 쉬이 오지 않았다. 가득 찬 돈통 그게 뭐라고.
여름 무더위에 땀이 줄줄 흘러 끈적대는 몸이 찝찝해 잠에서 깼다. 나는 등목을 하고 개운해진 몸으로 장 볼 돈을 챙겨 시장으로 향했다. 새벽 시장은 인산인해였다. 어제 완판을 했으니 오늘은 재료를 좀 넉넉히 준비하기로 하고 잔뜩 장을 봐왔다. 낮시간 동안 장 봐온 재료 손질을 끝내고 저녁이 되어 영업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불안한 마음의 끝이 늘 그렇듯 결국 마감 시간이 되기까지 나는 단 한 테이블의 손님도 받지 못했다.
더운 날씨와 빈 돈통에 맥이 빠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잔뜩 장 봐온 멍게와 해삼은 얼음에 재어놔도 소용없이 다 상해 버려야 했다. 그나마 쓸 수 있을 오징어와 다른 해물들은 각얼음을 넣어둔 스티로폼 박스 안에 보관해 두었지만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었다. 어제 버렸던 재료는 오늘 혹시라도 쓰게 될지 모르니 다시 사야만 했다. 일찍이 새벽 장을 봐왔지만 나는 영업 3일째에도 단 한 팀을 받지 못했다. 중간에 라면 한 그릇은 팔았던 것도 같다.
결국 3일째 영업을 마감하던 날, 나는 첫날부터 장 봐온 모든 재료들까지 다 버려야 했다. 밤잠까지 설쳐가며 그렸던 찬란한 미래가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돌아갈 집은 역시나 캄캄하고 쿰쿰한 달동네 판잣집이었다. 나는 결국 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영업 4일 차 아침, 한껏 작아진 손으로 소심하게 장을 보자 거래처 사장님들은 어제 장사가 영 시원찮았나 보다며 농담 몇 마디를 던졌는데, 그것이 뭐라고 그토록 화가 났으니 말 다했다.
포장마차 문을 열어 영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자 상수와 명수가 포장마차에 들렀다. 상수는 상호의 동생이고, 명수는 상수의 친구였다. 상수는 포장마차 장사가 잘 되고 있나 궁금하여 명수와 함께 들렀다 했다. 그들은 식전이라 했다. 나는 어차피 오늘도 재료를 버리게 될 것이 뻔하니 밥이나 먹고 가라고 앉혀 놓고 오늘이 지나면 버려야 할 아까운 재료들로 이것저것을 만들어 주었다. 상수와 명수는 내가 차린 상을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포장마차 앞으로 여자애들 세 명이 지나가자 명수가 별안간 그들에게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다.
"니들 이 동네서 뭐 하냐."
"오빠, 우리 집 나왔어. 갈데없어서 그냥 돌아다녀. 근데 여기서 뭐 먹어? 우리도 좀 사주면 안 돼? 너무 배고파."
명수가 내게 와 말했다.
"형. 얘들 우리 동네 사는 동생들인데 집 나오고 쫄쫄 굶어서 배고프다네요. 뭐 좀 줘도 돼요?"
나는 어차피 오늘도 공칠 장사, 재료 버리는 것보다 해 먹이는 게 나으니 데리고 오라 하였다.
그들은 상수, 명수와 자리를 잡고 앉아 신나게 먹고 떠들며 놀고 있었고, 나는 화구 앞에 멍청히 앉아 거리에 사람 지나가는 것만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그때 포장마차 앞으로 공장 작업복을 입은 아재 무리들이 우르르 지나가면서 내 포장마차를 힐끔힐끔 쳐다보자 여자애들 중 한 명인 미진이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 여기 포장마차 고갈비 진짜 맛있어요. 먹고 가세요."
그러자 아재 무리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쭈뼛쭈뼛하는 듯하더니 포장마차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얼떨떨하여 인사도 못하고 서있었는데, 상수와 명수는 상호 포장마차에서 일을 도운 경력이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자리로 안내를 하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명수와 함께 안주 준비를 했고, 상수는 서빙을 하고, 여자애들은 아재 무리들과 같이 섞여 앉아 '이것도 시켜주세요.', '저것도 시켜주세요.' 하며 자기들이 먹고 싶은 것을 시키도록 주문하였다. 아재들은 미진이 일행에 홀렸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시켜달라는 대로 다 시켜주고, 맥주에 소주까지 주문하더니 거나하게 취해서 놀다가 마지막 골뱅이 한 접시 추가로 자리를 파했다.
술값만 해도 엄청났다. 거기에 안주 값까지 하니, 고작 한 팀 받은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금액을 벌었다. 나는 3일간 포장마차 영업을 하는 동안 쫄딱 망했구나 하여 암담한 앞날에 수심만 한가득이었는데, 4일 차에 그만 기적이 일어나 버린 것이다. 상수는 상호 포장마차에 일을 도우러 가야 해서 일찌감치 떠났고 나는 남은 명수, 미진,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마감까지 같이 하였다. 마감 후 각자 떠나려고 인사하는 길에 나는 그들을 잠시 불러 세웠다.
"역 앞에 24시간 야식 파는 식당 있어. 오늘 고생했으니까 야식까지 먹고 가."
야식은 핑계였다. 나는 그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다른 것이 있었다.
나는 챙겨 온 돈통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그 안에 든 현금을 가득 꺼내 그들에게 보였다.
"이거 오늘 하루 번 돈이야. 아까 미진이가 데려온 공장 아재들 한 팀 불러서 번 돈이라고."
애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못 잡고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다 내가 돈 자랑을 하는 것인가 생각했는지 그저 우와하고 말았다.
"니네 돈 안 벌고 싶어? 나랑 이거 같이 하자고."
"뭘 같이 해요?"
"포장마차 사업 같이 하자고. 아까 미진이 잘하던데. 여자애들 너희가 오늘처럼 호객행위 해서 손님 끌어다 주면, 명수 네가 음식하고 운영도 해. 매출은 재료비 빼고 4,3,3으로 가자. 어때?"
여자애들은 집을 나와 할 일이 없는데 끼니 때우면서 돈도 벌 일이 생겼으니 잘됐다 했고, 명수도 백수였던 터라 좋다고 하였다. 다음날 나는 명수와 함께 시장을 보러 가서 장을 함께 봤다. 명수는 상호 포장마차에서 오래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존의 내 거래처는 비싸게 받는다며 새로운 거래처들을 소개해주었고, 훨씬 싼 금액에 재료를 구할 수 있어서 큰 이득이었다. 5일째 영업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는 시장에 가서 파라솔을 두 개나 더 샀다. 손님이 미어터져 자리가 부족해서였다.
미진이는 세 명이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자기가 아는 가출청소년 친구들을 여럿 데려다 모아 왔다. 그 친구들은 정식으로 출근을 한 것은 아니고, 포장마차 열 때쯤 되면 파라솔에 와서 앉아있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그들에게 착 달라붙어 '아저씨 나 배고픈데 이것 좀 시켜주면 안 돼요?' 하는 것이다. 미진은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고 쫄쫄 굶다가 슈퍼에서 훔친 빵 하나를 여럿이서 나눠먹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고 말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내 포장마차는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장사라는 것이 운영의 전반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서 모두 번영하는 것이 아니고, 그 틈으로도 머리를 잘 써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내 인생은 얼떨결에 이루어진 일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김없이 잘 풀렸다. 내 포장마차는 입소문까지 타서 먼 동네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생겨났다.
영업을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나자 상호가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상호 포장마차는 손님이 드문드문 있거나 어떤 날은 파리만 날리는 날도 있었는데, 내 포장마차는 밖으로 파라솔까지 완비하여 모든 좌석이 바글바글 대니 질투가 난 셈이다. 상호가 그랬다는 증거는 없지만 심증이 그랬다. 누군가 한 번씩 구청에 찌르는 탓에 포장마차 영업을 못하게 단속이 나오기도 했는데, 의심할만한 인물이 상호밖에 없었다. 사정을 들은 정학이가 상호를 찾아가서 잘 타일러 보겠다고 했고, 그가 상호를 만나고 돌아온 날 내게 포장마차 자리를 옮기던지, 쉬었다 하던지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상호가 미성년자 애들 데리고 장사하는 걸로 트집을 잡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가 되면 훨씬 심각한 일이 될 것이기에 나는 곧 포장마차 영업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포장마차 정리 전에 가장 먼저 금례엄마에게 초기 자금을 갚았다. 받았던 70만 원에 30만 원을 더해 100만 원을 쥐어주었다. 엄마는 크게 놀라고 감격스러워했다. 나는 상수와 명수, 정학이를 통해 포장마차를 정리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흘렸고, 그 소문이 상호에게까지 흘러가기를 기다렸다.
곧 언제쯤 정리하면 좋을지 시기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서부터 건너편 길목에서 내 포장마차를 유심히 살펴보는 아저씨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주변에서 들어오는 신고와 외압에 잔뜩 예민해진 나는 그 아저씨에게 다가가 따지듯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