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운 일이다. 나는 본디 태어나기를 없이 태어났고 그 때문에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는데, 어쩌다 장군이 되어 영웅놀이 한 번 해본 것으로 부자 행세를 하고 살았으니 말이다. 현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 가난뱅이야.'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나 살 돈이 없었다. 나는 정처 없이 밖을 돌아다니며 걷다가 바닥에 꽁초가 보이면 그것을 줏어다 피웠다. 후지기로 유명한 우리 집 골목은 인적이 드물고 그 탓에 담배꽁초 구경하기가 귀했다. 겨우 하나 발견하면 집는 순간 바스러지는 삭은 것들 뿐이었고. 나는 꽁초를 줍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주변으로는 술집과 여관이 많아서 가끔씩 장초를 주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꽁초를 찾느라 고개 한 번을 못 들고 걸었다. 하루 종일 시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걷다 보면 어떤 날은 빈 담뱃갑도 더러 보였는데, 진짜 운 좋은 날은 그 안에 연초가 절반 이상 들어있는 것도 있었다. 술 먹고 취해서 비틀비틀 걷던 이가 흘린 것들이었다. 금아시장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고려병원이 보였다. 나는 꽁초 줍기에 심취하여 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새 고려병원 앞까지 다다랐다.
해가 지고 있었다. 다리는 부어 아프고, 돌아갈 길은 멀다. 나는 잠시 병원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주홍빛 석양이 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내 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연히 아름다운 빛깔의 하늘이었다. 거리 위의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걸었고, 병원 앞 횡단보도 맞은편으로는 포장마차 영업을 준비하는 아줌마가 있었다. 아줌마는 포장마차 천막 위에 돌을 얹어 그것을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려는지 큰 돌을 옮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힘에 부쳐 보였고, 허리가 아파서인지 몇 번이나 하다 말다 하며 어물쩍댔다. 나는 병원 계단에 멍청히 앉아 분주한 아줌마의 움직임을 뜻 없이 보고 있었고 그 탓에 우리는 자꾸 눈이 마주쳤다. 아줌마는 그런 나를 힐끔힐끔 살피다 내게 건너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야. 너 할 일 없으면 거기 돌 좀 들어갖고 여기 좀 놔봐."
나는 무거운 돌을 들어다 아줌마가 놓으라는 곳에 놓아주었다. 큰 양념통 같은 것을 옮기라기에 옮겨 주었고, 재료 포장을 뜯으라기에 뜯어주었다. 시키는 일이 많아지기에 슬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보기 드물게 큰 키와 덩치를 가진 아재 한 명이 포장마차로 왔다. 그는 나를 한번 슬쩍 보고 아줌마에게 물었다.
"얘 누구야?"
"몰라."
그러자 그는 내게 물었다.
"너 집 나왔냐?"
"아유 여기 앞에서 어슬렁거리길래 내가 그냥 불러서 일 좀 시켰어. 야 고맙다. 라면이라도 먹고 갈래?"
나는 라면보다는 우동이 좋다고 말하려는데, 아재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병원 앞에 해장국 잘하는 집 있어. 밥 먹고 가라."
나는 그날 태어나 뼈다귀 해장국을 처음 먹었다. 맛있었다. 그는 내가 잘 먹는 것을 보고는 한 그릇 더 시켜줄까 물었고,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초면인 그에게 뼈다귀 해장국 두 그릇을 얻어먹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돈이 많았을 때에도 짜장면이나 사 먹으면 잘 사 먹는 건 줄 알았다. 내 가난은 시시때때로 나를 우둔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재의 이름은 영소였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나는 그를 영소형이라 불렀다.
영소형은 밥을 먹으며 내게 말했다.
"야. 정학이라고 내 사촌동생 꼴통새끼 한 명 있는데, 걔하고 니하고 동갑이야. 너 이 동네 아는 사람 없댔지. 나중에 정학이랑 커피나 한잔 마시자."
영소형은 정학이의 둘째 형 부부 집에 얹혀살고 있다고 했고, 포장마차는 둘째 형네 부부의 것이다. 영소형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그들의 집에 얹혀살며 포장마차 사업을 함께 돕는다 했다. 나는 영소형을 따라 정학이가 일하고 있다는 시내의 보석다방으로 갔다. 정학이는 보석다방의 주방장이었는데 급할 땐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도 종종 한다 했다.
정학이는 영소형과 많이 닮아있었다. 큰 키의 다부진 덩치를 가졌고, 진한 구레나룻과 까맣게 그을린 피부가 눈에 띄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돼버린 나와는 다르게 정학이는 원래 어른이었던 남자 같았다. 정학이의 인사와 말투엔 거침이나 주저함이 없었고, 어른의 여유와 능글맞음이 껴있었다. 정학이는 나를 보자마자 화통하게 웃으며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그의 거칠고 두툼한 손에 감싸이듯 포개어진 나의 뽀얗고 매끈한 손이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친구야. 반갑다. 나는 이정학이다."
"어 반갑다. 나는 송석규."
정학이는 내게 잠시 기다리라 하고 주방장으로 사라졌다가 금세 나타나서는 방금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떡과 커피를 내어주었다. 나는 가장 가난하고 취약해져 심약한 시기에 그들을 만났다. 신께서 그런 나를 돕고자 보낸 귀인들이 아닐까 상상하자 나는 그들의 다부진 덩치 뒤로 슬며시 밝히는 햇살 같은 것을 애써 보기도 한 것 같았다.
"석규야 니 내일 뭐하노."
"나? 할 일 없지 뭐."
"야. 그러면 우리 다방이 8시면 문 여니까 아침에 와서 여기서 놀아라."
나는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그의 다방으로 갔다. 가장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오토바이로 배달 가는 누나들 태워주는 것을 돕고, 필요한 식재료 사는 일도 한 번씩 도왔다. 나는 그렇게 정학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내일은 나 다방 쉬는 날이라 우리 집에서 놀자."
나는 정학이가 혼자 사는 집이라기에 우리 집과 같은 모습을 떠올렸다. 후진 골목 어귀 끝에 다다르면 그제야 나타나는 찌그러진 지붕과 녹이 슬어 칠이 다 벗겨진 벽면, 개구멍 같은 현관과 그곳을 따라 이어진 쿰쿰하고 어두운 실내를 말이다.
이불 하나를 바닥에 깔면 그곳은 자는 곳이 되었다가, 반찬 통을 꺼내 올려두면 식탁이 되고, 서류를 갖다 얹으면 책상이 되는 개코딱지만 한 방 안에서 주방이랄지, 침실이랄지의 구분이 없는 그런 집 말이다. 열여덟의 사내가 혼자 사는 집이라면 자고로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학이의 집은 달랐다. 아니, 틀렸다. 그의 집은 햇살이 내리쬐는 주택가에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엔 꽃집이 있었고, 반찬가게도 있었다. 정학이의 집은 큰 길가의 코너를 돌아 골목 초입에 있었는데, 신식 빌라들이 죽 늘어선 거리의 가장 첫 번째 집의 1층이었다. 번듯하고 깨끗하고 튼튼하기까지 한 대문을 가진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을 중심으로 분리된 공간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거실엔 테레비가 있었고, 그 밑으로 비디오 플레이어가 연결된 것이 보였다. 거실과 이어진 곳으로는 주방이 있었는데 그곳엔 냉장고와 냉동고가 있었다. 벽면에 닫힌 문을 열면 침실이었다. 성인 두 명이 누워 잘 수 있을 만큼 큰 사이즈의 더블 침대가 있었고, 침대보는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자 우리 집이 떠올랐다. 이불 한 채와 밥솥 하나가 전부인 내 초라한 방이 있다. 밥솥이라면 금례엄마가 원강상사에서 직원들 밥 해먹일 때 쓰던 대용량 밥솥이라 족히 30인분은 만들 수 있는 괴물 밥솥이었다. 혼자 사는 내가 먹기 위해 1~2인분 쌀을 안치면 취사 자체가 되질 않을 정도의 용량이란 말이다. 그게 밥이 되게 하려면 혼자 삼시세끼 다 먹는다 가정했을 때 일주일은 먹을 양을 해야 하는데, 냉장고가 없는 나는 그만한 밥을 해놓을 수가 없다. 금례엄마는 원강상사에서 일꾼들 식재료를 사러 금아시장 쪽으로 하루에 한 번씩 와야 했다. 수십 명의 직원들 해먹일 밥을 해야 하니 장볼거리가 많았다. 회사에서 장 보고 오는 길을 버스로 이용하라고 교통비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엄마는 그 무거운 장바구니를 양손 가득 짊어진 채 버스비는 주머니에 욱여넣고 무작정 걷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금례엄마는 우리 집에 들렀다. 주로 멸치볶음이나 장아찌와 같은 밑반찬들을 챙겨 와서 주었는데, 회사에서 모르게 반찬을 훔쳐오는 탓에 멸치볶음은 멸치볶음대로, 장아찌는 장아찌대로 담아서 온 것이 아니라 큰 비닐봉지에 모든 반찬을 다 모아 넣고 가져와 밥솥 통에 뒤섞어 다 부어버리곤 했다. 갖가지의 밑반찬들이 한데 섞여 알 수 없는 맛을 냈지만, 나는 그곳에 흰밥을 때려 넣고 섞어 먹었다. 내 삶은 그랬다. 열여덟의 사내는 다 이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단 말이다.
정학이는 비디오를 빌려보자고 했다. 비디오방에 가 각자 보고 싶은 것을 골라오기로 했고 나는 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 딱 한 편을 고르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 우물쭈물 대고 있을 때, 정학이는 이것도 보았고 저것도 보았다고 비디오가게 주인장에게 새로 나온 것이 없냐고 투덜거려 댔다. 이어서 양손에 두세 개의 비디오들을 들고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정학이는 내가 들고 있던 그 모든 비디오를 몽땅 빌려주었다. 정학이는 내게 여분의 집 열쇠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내일 나 출근하면 집에 와서 비디오 보고 놀다 가라."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다 설쳤다. 정학이 집에 빌려놓고 온 비디오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어떤 작품을 시작으로 어떻게 끝을 낼지 그 모든 순서를 정해놓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만족할만한 미소를 지은 나는 얼른 어두운 밤이 지나길 기다렸었다.
정학이는 실로 고마운 친구였다. 덧붙일 말 없이 완벽했다. 그는 내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비디오를 빌려주고, 자신의 집 열쇠를 공유했다. 정학이는 내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 없었으니 나는 그저 정학이와 친구이기만 하면 되었는데 왜인지 그의 앞에만 서면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졌다. 나는 쓸데없는 과거의 행적들에 대해 떠들었다. 중학교 때 한 서클활동, 고등학교시절 장군이었던 이야기, 패싸움에서 선방으로 이긴 이야기 등 하등 쓸모없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로 입방정을 떨었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후회를 했지만, 다음날 정학이를 만나면 나는 또 어제의 일은 새카맣게 잊고 떠들고 있었다. 마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삶의 전부인 사람처럼.
돈을 벌고 싶다. 정확히는 돈을 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오늘 짜장면 한 그릇을 사 먹고, 내일 답배 한 갑 살 돈을 만들기 위해 궁리하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내가 아니라, 번듯한 일자리와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입을 가진 진짜 어른이 되야겠다. 나는 본디 태어나기를 없이 태어났으니 일생을 까불어도 부자의 턱 밑 언저리까지도 못 갈지 모른다. 그러나 뭐든 해봐야겠다. 앞으로의 날들을 이토록 어두침침한 판잣집에서만 보낼 수는 없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