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엎드려 누워있었다. 매 맞은 엉덩이와 허벅지의 피부가 벗겨지면서 진물과 피가 흘러 똑바로 누울 수 없는 탓이었다. 옷을 입으면 상처부위가 맞닿아 쓰라리고 따가워 티셔츠만 입고 팬티는 벌거벗은 괴이한 차림으로 엎드려 있어야 했다. 그때 금례엄마가 집에 왔다. 그저 주말이 되어 나를 보러 온 날이었다.
금례엄마는 양손 가득 무겁게 반찬거리를 들고 들어왔다가 처참히 발가벗겨진 나의 하체를 보고 순식간에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서 내 옆에 쓰러지듯 앉았다. 감히 만지지도 못하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눈을 하고서. 분명히 걱정인데 또 어쩐지 화가 섞인 목소리였다.
"너 꼴이 왜 이래. 누가 이랬어. 석규야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다 일단 병원부터 가자. 당장 옷 입어. 일어나."
나는 금례엄마 손에 이끌려 근처 병원으로 갔다. 작고 작은 금례엄마 품에 안기듯 기대어 절뚝거리면서. 그 가까운 길을 그리도 오래 걸었으니 참으로 멀었다. 이상도 하다. 이춘근에게 매를 맞고, 교무실에 자퇴서를 내던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에 나는 피가 질질 새어 흐르는 엉덩이와 허벅지가 아픈 줄을 모르고 그토록 화난 걸음으로 집까지 재빠르게 걸어갔는데, 금례엄마가 곁에 있으니 어째 한 발자국 떼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의지할 나의 울타리가 생기니 나는 한없이 유약해졌다. 어쩌면 병태의 유약함이 내게 설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온 금례엄마는 내게 물었고, 나는 그제야 털어놓았다.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그만두는 것을 결정한 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매 맞은 일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자 금례엄마는 당장 학교로 찾아가 이렇게 만든 이에게 따져야겠으니 너는 가만히 있어라 하였지만, 나는 금례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면서 사정했다. 제발 다 끝났으니 그만두라고.
자퇴 소식을 전해 들은 막내누나는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한다. 이춘근과 통화를 끝낸 누나가 금례엄마 몰래 집으로 와 내게 돈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야. 너 그 돈 다 어쨌어. 조금이라도 남았으면 당장 돌려줘. 네가 돈 뜯었다고 자백한 것 때문에 너 잘못하면 소년원 들어가야 할 수도 있어."
"아 진짜 다 썼어. 그리고 누나 학교에서 이야기하는 700만 원 그거 한참 튀겨진 금액이야. 나는 240만 원 뜯었다고."
"야 이 새끼야. 240만 원이면 괜찮고!? 어쩌다 이런 게 태어났냐.. 너 어디 가서 내 동생이라 하지 마."
누나가 말하길 학교에서는 이 사건을 공론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순순히 자백한 탓에 자퇴하고 마는 것만으로 사건을 무마할 수 없어서 경찰은 피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계속 조사 중이라 했고, 나도 며칠 후 경찰서 출석 요구를 받았다. 나는 경찰서에 가 다시 한번 말했다.
"자꾸 피해자가 전교생이라고 하시는데, 저는 전교생을 상대로 돈을 뜯은 적은 없어요. 그냥 친한 놈들 몇몇 한테 돈 좀 빌려달라고 한 거예요. 한 명씩 다 데려다 앉혀놓고 물어보세요. 제가 걔들한테 직접 돈 뜯은 적이 있는지를요."
경찰은 실제로 1, 2학년 전교생을 상대로 심문을 했고, 그 과정에서 돈을 직접 전달받은 이가 내가 아님을 쉽게 알게 되었다. 원일과 창진이 중간에서 내가 할당을 주었던 통들을 모아다 석규가 돈을 빌린 것으로 합의를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들은 고맙게도 나를 돕겠다 하였다 한다. 경찰은 이 모든 과정의 끝이 나인줄을 알면서도 증명할 방법이 사라졌고, 나는 자퇴를 하였으며, 학교 측에서도 사건화하고 싶지 않음을 강경하게 밝혔기에 개인 간의 금전문제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는 늘 하루라도 빨리 소년의 티를 벗고 진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무지한 소년일 때는 몰랐다. 어른의 태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것이 또 얼마나 쓰고 고달픈 일인지를. 학교를 그만둔 나는 열여덟에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당장 삶의 현장에 투입되어 스스로의 쓰임을 보여야 했다. 학교를 그만두었으니 더 이상 성광시장에 살 수 없었고, 나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막내누나와 금례엄마가 있는 작은 근교 도시로 이사를 가야 했다. 막내누나는 신혼집에 매형과 둘이 살고 있고, 금례엄마는 식모살이 중이니 둘 중 누구의 집에도 얹혀살 수 없는 노릇이다. 막내누나는 금례엄마와 누나의 집에서 크게 멀지 않은 동네의 마치 학고방(판잣집이나 볼품없이 작은 집) 같은 오래된 집의 누추한 달세방 하나를 얻어주었다. 따지고 보면 성광시장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인상은 아주 많이 달랐다. 우리 집은 이 동네의 초등학교 뒤로 난 골목 안에 있었다. 골목 안에서도 가장 끝의 집이었다. 현관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 문짝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수도와 연탄아궁이가 있고, 거기서 또 작은 쪽문을 열면 내가 먹고 자고 할 허름한 방이 나온다. 후미지고 어두웠으며 내일 당장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날아가 사라질 것만 같은 집이었다. 내가 이 집이 유독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는 누추하고 오래된 빈민가의 집이어서가 아니라, 속옷 만국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채색의 칙칙함이 싫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빛깔의 반짝이고 살랑이는 속옷이 넘치게 늘어져있던 성광시장 집의 마당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천 쪼가리들이 무어라고 고단한 학교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위로가 됐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가장 먼저 색을 잃었다.
매형은 내게 첫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자동차 내장재를 만드는 회사라 했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이니 가서 잘해보라는 신신당부를 지겹게 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처음으로 일을 하여 직접 돈을 번다는 것에 조금은 설렜던 것 같기도 하다. 그토록 바라던 어른이 되어있음을 실감하던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약속대로 다음 날 전달받은 시간에 맞춰 출근을 했다. 회사라 하기에 나는 꽤 번듯한 사무실을 상상했고, 가진 옷들 중 가장 단정한 차림의 옷을 꺼내 입었다.
도착해 보니 공장이었다. 내게 일을 가르쳐줄 사수는 나를 보자마자 내게 방진복과 방진마스크, 그리고 물안경처럼 생긴 고글 하나를 건네주었다. 단정한 옷차림이 필요 없을 장비였다. 그리고 나를 꼭 비닐하우스처럼 생긴 터널과 같은 또 다른 공장에 데려다주고 안에 있는 이들에게 일을 배우라 하고는 이내 사라졌다.
나는 방진복과 방진마스크, 물안경처럼 생긴 고글을 쓰고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공장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공장 내부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 같은 것들이 끝도 없이 길게 설치되어 있었고, 희뿌옇게 날리는 먼지들에 눈앞이 희미해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흩날리는 먼지를 뚫고 가장 먼저 눈에 띈 이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면 되냐 물었고, 그는 내게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바로 할 일만을 배당해 주었다.
그는 나를 버려진 이불과 옷가지들을 산처럼 쌓아놓은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옷과 이불 무더기들을 양팔로 가득 안아 담아 가져다 내 앞에 던져주고는 앉아서 단추나 쇠로 된 지퍼등을 찾아 남김없이 가위로 오려내고 천만 모아다 벨트로 가져오라 하였다. 나는 눈이 빠지게 단추와 지퍼 등의 부자재 장식들을 찾아 없앴다. 한가득 쌓인 천을 모아다 벨트로 가져가니 이번엔 그것을 기계 안에 던져 넣으라 한다. 천 무더기를 기계 안에 집어던지면 기계 내부의 톱날이 원을 그려가며 돌아가면서 천 무더기를 갈기갈기 조각을 낸다. 그다음 벨트로 넘어가면 좀 더 촘촘하게 조각을 내고, 또 다음 벨트로 가면 그것보다 더 촘촘한 조각을 낸다. 대충 5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기계의 마지막 벨트에 다다르면 한때 이불이었던 천은 원래의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겨 솜이 되어 나온다. 그러면 그 솜을 들어다가 압축 프레스를 찍고, 그렇게 나온 자재는 자동차 내장재로 쓰이는 내장재 틀로 재창조되어 세상에 나온다.
나는 그제야 방진복과 방진마스크, 고글의 존재 이유를 깨달았다. 천 무더기를 기계에 넣으면 톱날이 그것을 갈면서 엄청난 양의 먼지를 만들어냈다. 먼지 때문에 앞이 안 보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먼지의 양에 그곳에 잠깐 있는 것만으로도 폐에 먼지가 가득히 쌓이는 기분이었다. 쉴 틈 없이 재채기가 나왔고, 눈에 꼭 맞는 고글이 답답해 잠깐이라도 벗고자 하면 그 잠시도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찰나에 고글을 쓰지 않으면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었고, 다음 날이면 실명이라도 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유년시절 세 번째 새아버지 집의 담배농사를 돕던 날이 생각났다. 담뱃잎 냄새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서 담배나무 열대를 부러트린 그날 말이다. 돌이켜보니 그 일은 약과였다. 나는 공장에서 아마도 한 시간가량을 버텼는데, 그 이상 버텼다가는 실명을 하든 폐가 먼지로 가득 차 호흡이 멈추든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죽을 것만 같아 화장실 가는 척하며 공장을 빠져나와 담을 넘고서 곧장 집으로 튀어버렸다.
나는 매형에게 취직을 시켜도 어떻게 그런 곳에 나를 보낼 수 있냐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매형은 참고 하루만 일해보지 그랬냐며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한 자리였는데 아쉽게 되었다는 둥의 헛소리를 해댔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라는 말은 아무래도 거짓부렁이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다음 날 바로 내게 두 번째 일자리를 구해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스프링을 만드는 공장이라 했다. 매형은 스프링 만드는 곳은 먼지 날릴 일도 없고, 눈이 따가울 일도 없으니 걱정 말고 참고 진득이 붙어있어 보라는 신신당부를 재차 하였다. 나는 또 공장인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순순히 따랐다. 공장에 도착하니 이번엔 귀마개를 준다. 이번에도 심상치가 않다.
쇠를 깎아서 철사를 만들면 스프링처럼 배배 꼬아주는 기계에 그것을 넣어야 하는데, 쇠를 깎는 소리가 마치 흑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다. 바로 옆에서 내 귀에 가까이 소리치듯 말해도 그것이 안 들릴 정도의 기함할 소음이었다. 귀마개를 껴도 이 정도인데, 귀마개를 벗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귀가 먹먹 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두통이 따랐다. 이곳에서 일을 했다가는 단언컨대 무조건 귀머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또 결국 한 시간을 못 버티고 도망 나와버렸다. 아니, 도망 나와야 했다. 그것이 살 길이었다.
매형의 지인이 도대체 몇 명인지 가늠이 안 간다. 매형은 내게 또 세 번째 일자리를 구해다 주었다. 세 번째 회사는 제지공장이었다. 박스를 만드는 회사라 했다. 공장에 들어서서 이번엔 어떤 준비물을 주려나 긴장하며 기다렸는데 이번엔 내게 그 무엇도 챙겨주지 않았다. 종이 박스를 만드는 곳이라 하니 종이를 냅다 접어 박스로 만드면 될 일인가 하여 나도 그제야 긴장을 늦추고 약간의 기대를 가졌다.
수월할 줄 알았던 제지공장은 이전의 공장들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의 공포가 뒤따르는 곳이었다. 매우 크고 또 매우 두꺼운 박스를 기계에 넣으면 철커덕 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크기의 칼날이 내려와 박스를 단번에 잘라낸다. 잘리면 두 손을 집어넣어 그 박스를 빼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손을 넣으면 손도 댕강 잘릴 판이다. 칼날이 박스 한 장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두께의 박스를 무려 스물다섯 장을 모아 한 번에 넣으면 그 무시무시하게 크고 날카로운 칼날이 철커덕하는 묵직한 소리를 내며 한 번에 절단을 내버리는데, 손모가지 날아가는 것은 여사도 아닌 것이다. 나는 그 기계 앞에 서자 두 손모가지가 잘려서 갈고리 의수를 차고 살아가는 비참한 나의 노후가 떠오른다. 다리는 후달거리고 두 손은 움직일 생각이 없다. 제지공장에서는 10분도 못 있다 도망 나와 버렸다. 나는 결국 그 어떤 곳에서도 하루를 꼬박 일해본 적이 없었다.
막내누나는 그런 나를 그토록 한심해했고, 매형은 그제야 나를 포기한 것 같았다. 그 지경이 되자 금례엄마는 처음으로 심각하게 내 미래를 걱정하는 쓴소리를 해댔다.
"석규야 너 앞으로 뭐가 될래. 공장에서는 하루도 못 버티고.. 세상 사는 게 쉬운 줄 알아?"
나는 학교가 그리워졌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니 지나치게 사치스러웠다. 자퇴가 그토록 바보 같고 어리석은 선택일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엉덩이 살이 찢어져 너덜거리게 될 한이 있더라도 이춘근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볼 걸 그랬다. 나는 여태껏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금례엄마는 늘 내게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아는 훌륭한 사람들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한마디 했다가 입이 찢어져 죽거나, 일생을 고문당하다 죽거나 했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이 돼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 말이다.
도깨비방망이를 가졌던 학창 시절의 나는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오는 거짓말과도 같은 동화 속에 살았는데, 학교를 나와보니 삶은 지옥이 따로 없다. 사후세계엔 지옥이 아니라 꼭 천국만이 있어야 한다. 삶이 지옥인데 사후에도 지옥이라면 그것은 사후세계의 반칙이자 불공정이다.
시부랄. 고등학교 졸업도 못 했으니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사무실 출근하는 일은 내 평생 꿈도 못 꾼다. 나는 금례엄마가 원망스럽다. 나 어릴 때 훌륭한 사람 소리 말고 돈 많이 버는 부자 되기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훌륭한 사람 타령이나 해대서 내가 공부를 안 했다 하며 금례엄마에게 대들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가슴팍을 세게 내려치며 내가 저 새끼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다며 한탄을 했는데, 한탄은 내가 할 것이지 엄마가 할 것이 아니다. 정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