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2)

by 시진


여름방학이다. 숨 막히는 학교생활의 절반이 지났다는 뜻이다. 당분간 이춘근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 이렇듯 사람이 내내 죽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이춘근은 피했는데 한여름의 자비 없는 날씨는 못 피했다. 아무래도 이놈의 날씨가 나를 찜 쩌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니 몸에서 쉰내가 나는 듯하여 나는 하루에 세 번씩 등목을 해야 했다. 날이 더우니 생선가게 비린내는 더욱 짙어져 시장 안의 공기를 온통 메우고, 모기 때려잡는 파리채 소리에 짝짝거리는 소음은 하루가 멀다 하게 시끄럽고, 하루 종일 미어터지는 사람들로 복잡한 시장통에 시장 안은 유독 더 더워서 뭔 짓을 해도 가시지 않는 더위로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원일, 창진과 함께 시장통 대신 스카이궁전을 내 집 드나들듯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스카이궁전에서 예쁜 여자애들과 같이 어울려 놀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여자들 앞에만 서면 멍청해져 버리는 숙맥이었다. 나는 쓸데없이 스테이지에서 춤만 추었고, 원일과 창진은 힘없는 남자애들 주변에서 괜히 시비나 걸며 얼쩡거리다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나는 이제 춤도 출 만큼 추었고, 더 이상 춤으로는 스테이지에서 주목받지 못하여서 원일과 창진이 나 대신 무엇이라도 해보길 기대했지만 그들이나 나나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 친구는 끼리끼리라 하지 않는가. 우리 셋으로는 답이 없었다.


그러다 구본희를 만났다. 내가 본희를 처음 본 날은 스카이궁전에 사람이 가장 많은 토요일 저녁 시간이었다. 스테이지 위에는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테이블은 빈자리가 한 곳도 없었으며 곳곳에 서있는 사람들로도 북적여 발 디딜 공간이 적었다. 음악소리는 귓가를 때리듯 크고, 번쩍이는 조명에 눈은 어지럽고, 원일과 창진이 옆에서 무어라 하는데 도통 들리지 않기에 온갖 인상을 써가며 '뭐라고?', '안 들려.', '뭐라는 거야.'라고 하다가 이내 소통하기를 포기하고, 벽에 기대어 스테이지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때 보았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단번에 내 눈에 들어오는 본희를. 본희는 테이블과 스테이지 사이의 통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아니, 춤을 추고 있었다. 아니, 걷고 있었다. 마치 모델이 런웨이에서 자신의 차림새를 뽐내듯 워킹하면서. 허리춤에 양손을 받쳐 올리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예쁜 여자애들에게 쉴 틈 없이 윙크를 해대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걷고 있었다.


나는 저렇듯 신선한 미친놈이 다 있었나 하여 넋을 놓고 그를 뚫어져라 한참을 보았다. 본희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였다. 분명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까지 보고 잠시 눈을 돌렸는데, 돌아가보면 본희는 어느새 네 번째 테이블에 가 앉아 예쁜 여자애들과 시시덕 거리고 있었다. 그는 예쁜 여자애들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 찾아가 무작정 치근덕거리고 보았는데, 물론 갈 때마다 성공하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그를 재밌어하고 신기해하며 같이 합석을 해주었다. 그러자 나는 구본희에게 관심이 생겼다. 원일과 창진에게 쟤 어디서 뭐 하는 놈이냐 물어보니, 우리 학교 기계과 2학년이라 하였다.


본희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싸움을 잘한다거나 서클활동을 하는 일진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찐따들과 어울리는 쪽이었는데 그것은 학교에서나 그렇고, 스카이궁전에서는 그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타였다.


멀리서 유심히 지켜만 보던 본희와 직접 마주한 것은 어느 날의 스카이궁전 화장실에서였다. 본희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왔을 터인데 나를 보자 슬슬 뒷걸음질을 치더니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나는 급히 그를 붙잡았다.

"야."

"응?"

"오줌 싸러 온 거 아니냐?"

"아... 이따 와도 돼."

"참을걸 참아."

본희는 엉거주춤 걸어가 최대한 나와 떨어진 변기에 서서 볼일을 보았다. 오줌 누는 폼이 그토록 어색한 것이 퍽 우스웠다. 마치 소변기를 처음 사용해 보던 어린 시절의 나 같았다. 나는 그런 본희를 쳐다보며 서있었다. 어색한 공기 속에 본희의 오줌 누는 소리만 졸졸 흘렀다.

"나.. 나한테 뭐 볼일 있나?"

"야. 너 내가 여기 올 때마다 항상 있던데. 너 되게 잘 놀더라? 너 또 여기 언제 오냐?"

"나는 금요일 토요일은 무조건 와."

"그래? 내일이 토요일이지? 내일 너 몇 시에 오냐? 너 내일은 우리랑 같이 놀자."


다음날 약속한 시간에 와보니 본희가 스카이궁전 입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일과 창진은 내게 왜 저런 찐따랑 같이 놀아야 하냐며 면이 안 선다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본희의 끼를 다분히 보았다. 우리는 그날 스카이궁전에 입장했던 수많은 날들 중 아마도 가장 찬란한 시간을 보냈다. 가장 예쁜 여자애들 무리의 테이블에 짝을 맞춰 앉아 같이 콜라를 나눠 마셨고,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했고, 어색해질 만하면 본희가 분위기를 바꾸고, 이야기 소재가 떨어져 침묵이라도 있을라 하면 본희가 광대 노릇을 자처하는 덕분에 그날의 시간은 빠르고도 느리게 흘렀다.


나는 본희에게 어쩐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곧장 본희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했다.

내가 아는 본희는 쪽팔린 게 무언지 모르는 애 같았다. 서클한테 놀림을 받아도 그게 놀림인지 모르는 애였다. 또 본희는 고정적으로 서클에 돈을 뜯겼는데, 내가 그것이 힘들지 않냐 묻자 속도 없는지 실실 웃다가 '어제는 꼼수를 써서 천 원 덜 뜯겼어.' 라거나 '얼굴만 안 때렸으면 좋겠어. 얼굴을 줘 터지면 윙크할 때 숭해.' 하는 애였다.


나는 스카이궁전에서 우연히 2학년 기계과의 통을 만난 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야. 너 구본희 알지."

"구본희? 아 그 새끼 알지. 웃긴 놈."

"앞으로 구본희는 건드리지 마."


본희의 학교생활이 전보다 좋아지기 시작했다. 본희는 넘치게 고마워하고 연신 감격스러워했다. 그 이후로도 내내 나를 우러러보았고. 그러다 어느 날 본희가 내게 부탁 하나를 해도 되겠냐 물었다.


"석규 니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동궁고에 내 친구 영재라고 있는데 걔 진짜 착한 놈이거든. 나랑 다르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부모님한테도 정말 잘하는 놈인데... 걔가 동궁고 애들한테 맨날 괴롭힘을 당해서. 석규 네가 한 번만 도와줄 수 있나?"


동궁고라면 내가 패싸움에서 선방으로 나가 이겨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준 역사의 그 상대 학교가 아니던가. 그 학교의 2학년 장군 놈은 나만 보면 내가 휘둘렀던 자전거 체인 생각이 나서인지 지레 겁을 먹는 놈이라 내겐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본희 친구 영재라는 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우연히 마주친 적도 없기에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는 몰라도 본희의 친구라고 하니 대충 알 것 같아 도와주기로 하였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나는 동궁고 장군을 찾아가 말했다.

"니네 학교에 조영재라고 있어. 걔는 건드리지 마."


나는 그들을 도울 때마다 병태의 얼굴과 그의 인생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임을 잘 알기에 깊이 사색에 빠져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움직이고 싶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인간인 것이다.


선의는 선의로 돌아와 주었다. 본희는 본희였고, 영재도 영재였다. 그들은 나아진 일상에 감사해했다. 본희는 여전히 광대를 자처했고, 영재는 여전히 공부를 열심히 한다 했다.

나의 열여덟 여름방학이 지나고 있었다.

가을이 온다.


오지 않기만을 바라던 2학기 개학일이다. 이춘근이 나를 마치 바퀴벌레 대하듯 보는 것이 싫어 나는 최대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편을 택했고, 조용히 학교를 다녔으며, 그 어떤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기대할 것 하나 없던 학교생활의 기대 하나가 생겼다. 바로 수학여행이었다. 2박 3일로 경포대와 설악산이 있는 강릉으로 간다.


나는 수학여행을 고대했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강릉의 경포대와 설악산이 기대되었고, 2박 3일간 친구들과 보낼 밤을 기대했다. 그러자 근사한 옷을 사 입고 싶어 졌다. 그러나 이춘근과의 관계 때문에 몸을 사리느라 한동안 카세트테이프 사업도, 교모 돌리는 일도 하지 못해서 수중에 돈이 없었던 나는 고심을 하다 수학여행을 위해 딱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 돈을 뜯기로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일이었다. 나는 1학년, 2학년 각 반의 통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할당을 주었다. 수학여행 가기 일주일 전까지 각 반마다 10만 원씩 맞춰 가져오라 하였다. 나는 이렇듯 직접적으로 돈을 뜯는 일은 머릿속에 그림만 그려보았지 실제로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얘들아.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협조를 구하고 싶다. 앞으로 이럴 일은 없을 거다. 못하겠는 놈은 지금 손 들어라."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1학년이 열두 반, 2학년이 열두 반으로 일주일 뒤 나는 각 반의 통들을 통해 돈을 전달받았고, 그 액수가 무려 240만 원이었다. 막내누나가 큰누나 공장에서 한달 바짝 일하면 받는 봉급이 20만원이었다. 나는 막내누나의 1년치 연봉을 이렇듯 쉽게 가졌다. 나는 그 돈으로 수학여행 가기 전 새 옷을 사 입고 새 신발도 사신었다. 나는 원일과 창진에게도 새 옷을 한 벌씩 사주었고, 주말에 나를 보러 온 금례엄마에게 오랜만에 용돈도 쥐어드렸다.


수학여행은 고대한 만큼으로 즐거웠다. 나는 수학여행에 가서도 신나게 돈을 썼다. 맛있는 것을 잔뜩 사 먹었고, 특별히 우리 반 애들에게만 콜라를 한 병씩 사 돌리기도 했다. 밤중엔 이춘근 몰래 도망을 나가 술을 사들고 들어와서 애들과 새벽 중 몰래 술잔치를 벌였다. 꿈같았던 수학여행 2박 3일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고작 며칠이 지났다. 여독도 안 풀릴 시간이었다. 그 틈에 경찰이 학교에 들이닥쳤다. 경찰 한 명, 교육청에서 한 명이 와서 각 반마다 돌아다니며 설문조사지를 나눠주며 작성하라 했다. 교육청에 투서가 하나 들어왔다 했는데, 내용은 학교에서 수학여행 가기 전 아들이 집에서 현금을 훔쳤고 부모가 그 돈을 어디에 썼냐 추궁하니 같은 반 누구에게 상납을 했다는 것이다. 부모는 그 돈이 적지 않은 돈이라 여겨 교육청에 신고를 했다.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가 돌린 그 설문조사지에는 이번 수학여행 때 뜯긴 금액과 그것을 누구에게 상납하였는지를 묻고 있었다. 조사는 익명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그 설문지를 받아 들자 뜨끔하여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교실을 둘러보자 모두가 설문지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으며 더러는 슬쩍슬쩍 고개를 뒤로 돌려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그 설문조사지는 각 반마다 조사하여 수거되었고 교육청 관계자 한 명과 경찰 한 명이 그것을 챙겨 학교를 떠났다. 나는 그날 꼬박 밤을 새웠다. 잠이 한숨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이 오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조사지에서 묻는 모든 질문에 '없음'이나 '모름'으로 답하였으나 그렇게 제출한 이가 왠지 나 하나일 것 같았다. 나는 이미 조사지에 내 이름이 다수 출연했을 것임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오늘일까. 오늘이 무사히 지나자 내일일까 하였다. 조사가 끝나고 3일째 되던 날의 오후 시간이었다. 이춘근이 수업시간 도중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신경질적으로 불러내었다. 내내 내려놓고 싶었던 시한폭탄이 그 순간 터졌다. 오늘이구나.


나는 이춘근 뒤에 서서 이춘근의 발 뒤꿈치만을 보며 따라 걸었다. 교무실에는 일전에 보았던 교육청 관계자와 경찰이 와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내게 물었다.

"네가 송석규야?"

"예."

"네가 돈을 상납받은 게 맞아?"

나는 아주 잠시 주저하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이춘근은 내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귀때기를 내리쳤다. 순간 경찰이 이춘근과 나 사이를 가로막아서는 바람에 다행히 더 이상의 매질은 없었다. 그들은 내게 총 피해금액이 700만 원이라 했다. 나는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한껏 커진 눈으로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그것은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240만 원이에요! 700만 원은 말이 안 됩니다. 제가 똑바로 말씀드릴게요. 1학년 열두 반, 2학년 열두 반 각 반마다 10만 원씩. 해서 총 240 받았습니다. 그게 어떻게 갑자기 700만 원이 됩니까.."

돈 뜯겨서 억울했던 놈들이 잘됐다 싶었는지 피해금액을 훨씬 부풀려서 적었나 보다. 금액이 금액인지라 교육청도 경찰도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난리가 났다 한다. 고등학교 2학년 생이 700만 원 상당의 돈을 뜯을 수가 있다고 보는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다. 그렇지만 경찰들은 늘 내게는 무어라 질문이 없고 금례엄마와 혹은 다른 어른들과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종결이 되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촉법소년이 아닌 것이다. 경찰들은 내게 많은 것들을 물었다. 돈을 어떤 방식으로 뜯어냈으며, 그것을 어디에 썼는지, 혹시 금액이 남았는지, 남았다면 돌려줄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었다. 그들은 조사한 것과 실제로 내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금액의 차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물었다.


"진짜 240만 원 받았어요. 그리고 남김없이 다 썼어요."

"어디에 썼어."

"몰라요. 그냥 여기저기 다 썼어요. 여행 간다고 옷도 좀 사 입고, 친구 옷도 한 벌 사주고, 강릉 갔을 때 맛있는 게 많길래 보이면 수시로 사 먹었고요. 애들한테 콜라도 한 병씩 사서 돌렸어요. 아 엄마한테 용돈도 좀 드렸고요."

나는 잠시 이춘근의 눈치를 보다가 곧 대답을 이어갔다.

"밤엔 밖에 나가서 소주 몇 병이랑 안주거리 사 와서 애들이랑 새벽에 잔치 벌이고 놀았어요. 그렇게 쓰고 나니까 남는 거 없든데요."


학교는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교장선생님은 내가 하는 진술을 들으며 그토록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꺼지는 한숨이란 자고로 그런 한숨이다. 교감선생님은 학교 차원에서 이 문제가 사건화 되어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자꾸만 강조해 댔다. 다만 피해자가 한 두 명이 아니다. 1학년 전체와 2학년 전체가 피해자인 사건이라 나는 일단 진술 끝에 교실로 돌아왔고, 오후 내내 그들은 나의 사안을 두고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이춘근은 내게 방과 후에 집에 바로 가지 말고 교실에 남아 있으라 했다. 나는 텅 빈 교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이춘근을 기다리고 있자니 왜인지 쓸쓸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왜 하필 외로운 감정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늦게 나타난 이춘근은 내게 자신을 따라오라 하였다. 나는 며칠간 등교하면 조사 때문에 늘 교무실부터 향했어서 당연히 교무실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는 뜬금없이 나를 캄캄히 어둡고 먼지 냄새로 자욱한 자료실로 데려갔다. 그는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거칠게 닫고는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아댔다. 결국 그가 손에 든 것은 삼각 측량기였다. 그는 그 폴대를 허벅지로 가져가 내려쳐 두동강내어 한 손에 잡기 편한 몽둥이로 만들었고, 내게 엎드려뻗치라 했다. 또 나를 때릴 심산이었다. 나는 저항 없이 엎드려뻗쳤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나를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악 소리도 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프면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입을 앙다물었다. 그러면 참아졌다. 그는 그런 내 태도가 심히 못마땅하여 굳이 가슴에 생채기를 낼 악다구니들을 퍼부어댔다.


"이 개만도 못한 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가? 니 같은 건 일찌감치 내가 퇴학시켰어야 했는데. 오늘 회의에서 니 퇴학 이야기가 나온 것은 알고 있나? 네가 퇴학당할지 안 당할지는 내 의견이 가장 중요해 이 새끼야.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너 같은 거 퇴학시켜버려야 한다고 바로 이야기했다고. 네 모가지는 나한테 달려있다 이 말이야. 알아들어?"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더 이상 그에게 맞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나는 이제 형식적으로라도 그의 제자가 아니지 않은가. 힘겹게 몸을 피해 일어났고, 자료실 문을 열고 나가며 나는 이춘근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관둡니다. 살면서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맙시다."

나는 당장에 교무실로 향했다. 그곳엔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빠르게 지나쳐 행정 선생님께로 가 자퇴서를 달라 하였다. 행정 선생님은 적잖이 당황하여 나를 한 번 보았다가,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의 눈치를 보았다가 하며 우물쭈물하고만 있기에 나는 다시 한번 크게 말했다.

"자퇴서 주세요."


나는 선생님의 책상에 올려진 펜을 가져다가 건네받은 자퇴서 위로 자퇴 사유를 성질껏 휘갈겨 쓰고 경찰이 있는 자리로 내던지고는 교무실을 나와 그렇게 학교를 떠났다.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는 던져진 자퇴서를 들어 보이고는 곧 헛웃음을 지었다. 사유는 간략했다.

'좆같은 학교 안 다닐랍니다.'


매 맞은 엉덩이에서 진물과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따갑고 욱신거리고 쓰라리게 아팠다. 그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떠올려보았지만 대충 감도 못 잡겠다. 맞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저 빨리 이 매질이 끝났으면 했다. 그가 나를 퇴학시키겠다고,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이라고, 퇴학을 앞둔 제자에게 그것을 제 모가지라고 표현하는 자로부터 공포를 느꼈다는 표현은 하고 싶지가 않다. 그조차 사치스럽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꼬락서니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 몇몇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금례엄마였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 금례엄마를 황급히 떠나보냈다. 엄마 생각은 나를 유약하게 만든다. 두 번째로 원일과 창진이 떠올랐다. 그들은 내게 진짜였다. 돌아보는 모든 순간에 그들이 있었고, 바로 오늘 아침에도 나를 보는 얼굴 위로 나를 향한 걱정과 근심이 비치는 것을 보았기에 또렷이 알 수 있다.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이는 병태 아버지였다. 왜 그가 하필 지금, 내 머릿속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알고 있다. 자꾸만 사무쳤기 때문이다. 병태를 지키던 그 강건한 울타리가.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할 그 울타리의 부재가 이토록 그리울 줄이야. 결코 쉽게 부서지지 않을 단단한 울타리 속에 품어 안겨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를 그저 상상해 보았다. 과연 오늘 같은 날에 말이다. 그러면 조금 덜 외롭고 덜 쓸쓸했을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