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태

by 시진


우리 지역의 최고 부잣집이라 불리는 맨션에 사는 놈이 있었다. 우리 반 병태였다. 병태 아버지는 강소기업 대표인 데다가 지역 내에서 갑부로 유명했다. 병태는 핏기 없이 하얀 피부 때문인지 얼굴엔 생기가 없었고, 작은 키에 몸은 빼빼 말라서 부잣집 아들이라기엔 터무니없도록 볼품없는 외양이었는데, 겉치레만은 삐까뻔쩍했다. 병태는 찐따였다. 서클에게 돈 뜯기기로는 일등이었고, 성적은 매번 꼴등이었다. 이토록 애매하게 극단적인 캐릭터는 찾기 힘들어 귀하다.


나는 태총형님의 카세트테이프도 팔고 있고, 토요일 교모의 상속자이며, 이전엔 속옷을 팔아서 큰돈을 한몫 챙겼기에 대놓고 애들 돈 뜯는 일은 체면이 안 살아 못 한다. 못 할 뿐이지 하기 싫은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나는 1학년 장군이지 않은가. 내놓으라 말 떨어지기 무섭게 척척 가져다줄 것을 잘 알기에 더욱 아쉽다.


소란한 점심시간이었다. 도시락을 꺼내 먹으려는데 옆반 애들 몇몇이 우리 반에 찾아와 또 병태를 괴롭히고 돈을 뜯어 갔다. 나는 도시락을 먹으며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병태는 텅 빈 바지 주머니를 머쓱하게 툴툴 털고는 자리로 돌아가 귀한 반찬이 가득 든 도시락을 꺼내 그토록 맛없게 먹었다. 나는 그날 오후 어느 쉬는 시간이 되어 옆반을 찾아갔다. 병태 돈을 뜯어간 놈들을 불러다 앞으로 우리 반에 찾아와서 돈 뜯지 말라 일렀고, 그들은 내게 즉각 사과했다.


원일과 창진은 서클 모임에 갔고, 나는 홀로 하교를 하는데 내 뒤꽁무니를 따라 종종걸음을 걷는 발자국 소리가 귀에 거슬려왔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딱 병태였다.

"왜."

"고.. 고마워.."

"뭐가."

"나 다 들었어. 돈도 돌려받았고.."

"돈 돌려주라고까진 안 했는데."

"아.."

"야. 너 한 달에 용돈을 얼마씩 받냐?"

"나? 따로 정해진 것은 없고 그냥 얘기하는 대로 줘."

"야. 짜장면 한 그릇에 대충 천 원이니까, 열 그릇이면 얼마냐. 만원이지? 내가 한 달에 스무 그릇은 족히 사 먹으니까 한 달에 이만 원씩 내면 앞으로 애들이 너 못 괴롭히게 해 줄게. 너 그렇게 할래?"

"정말? 나는 그래주면 좋지."


시작은 선심이었다. 병신처럼 맨날 처맞고 다니는 것을 보는 게 유쾌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 처음 전학 와서 다마네기로 불리던 중학교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였다. 그도 그렇고 명색이 내가 장군이지 않은가. 감히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점심시간에, 내가 보는 앞에서, 우리 반 애들 돈을 뜯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장군으로서 기강을 잡고 싶었고, 병태는 보기에 좋은 핑계였다.


아마 앞으로 병태는 하교하는 길에 학교 뒷골목으로 끌려가 서클에게 돈을 뜯길 것이다. 어차피 힘없이 뜯길 돈이라면 내가 가져야겠다. 물론 나는 그 돈의 값어치를 지불하기로 하였으니 그들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다음날 병태는 내게 약속한 이만 원을 가져왔고, 나는 약속한 대로 병태를 지켰다. 어딜 가든 그를 데리고 다녔고, 원일과 창진을 소개해주었다. 나는 병태를 가르쳤다. 찐따처럼 보이지 않을 방법, 싸움이 붙었을 때 가장 먼저 어디를 때리면 이기기 수월한지, 티가 안 나서 무어라 입 대기도 애매한 반칙 같은 것들을 가르쳤다.


병태는 들떠있었다.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밥도 잘 먹었고, 더 이상 종종걸음으로 걷지 않았으며, 말도 더듬지 않았다. 금세 한 달이 흘렀다.

"석규야. 아버지가 너 한번 만나고 싶다 하시는데 오늘 괜찮으면 학교 마치고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


병태네 집은 실로 대단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거실이라는 공간을 보았는데, 그 거실에는 둥근 곡선으로 다듬어진 나무틀의 빛에 따라 은은하게 광이 맴도는 가죽으로 둘러싸인 4인용 소파가 있었고 중앙에는 소파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거실과 이어져있지만 완벽히 분리된 그곳은 주방이었다. 주방에는 테레비에서나 보던 거대한 대리석 식탁과 뚱뚱한 쿠션감을 자랑하는 화려한 모습의 똑같은 의자 6개가 식탁 주변으로 가지런하게 자리해 있었다. 식탁 위 음식은 덧붙일 것 없이 풍성했다.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진 밥상이라는 문장을 피부로 실감한 날이었다. 그보다 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병태 엄마였다. 나는 이리도 아름다운 아줌마는 태어나 본 적이 없다.


나는 까닭 모르게 그 집의 기세에 눌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자세를 곧쳐 세우고 무릎을 바로 모아 그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얹었다. 병태 아버지가 상석에 앉고 차례로 병태 엄마, 병태와 내가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병태 아버지는 내게 딱히 시선을 주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병태 엄마가 내게 왜 먹지 않냐고 입에 맞는 반찬이 없냐 묻기에 나는 먼저 수저를 드셔야 제가 식사를 하지요 하니 병태 엄마의 입가에 꽃다운 미소가 퍼졌다.


근데 이 집은 밥 먹을 때 말 한마디 안 하고 먹는 것이 식사 예절이라 배웠는지 가족들끼리 일절 대화가 없다. 나는 어색한 적막 속에 치아 부딪히는 소리만 딱딱 울리는 것이 견디기 어려워 쓸데없는 말들로 분위기를 바꿔보려 떠들었다.

"어머니, 혹시 미스코리아 출신이세요? 이렇게 아름다우신 아줌마는 태어나 처음 봐요."

병태 엄마는 큰 소리로 웃고는 이내 수줍어했다.


식사가 끝나고 병태 아버지가 거실의 소파로 가 앉았다.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여전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병태 아버지가 내게 이리 와 가까이 앉아보라 하였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병태 아버지 옆자리로 가 앉았다. 곧이어 병태 엄마가 후식으로 과일을 내왔다. 예쁜 접시에 가지런히 담긴 과일이 보기에 탐스러웠다. 비스킷과 따뜻한 코코아차도 함께였다. 병태 아버지는 후식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과일도 비스킷도 코코아차도 당장 먹고 싶은데, 먼저 포크를 안 드시니 먹을 수가 없다. 내 시선은 온통 소파 테이블 위 후식에 향해 있었다.


"내가 니를 왜 불렀냐, 네놈 얼굴이 하도 궁금해서 불렀다. 병태 이놈이 언젠가부터 변했어. 원래 애가 늘 웃지도 않고, 맨날 찌그러져서 기운도 없이 축 처져있었다고. 내가 사업에는 성공했는데 자식농사는 실패했다 생각했거든. 근데 최근 들어 병태 이놈이 생기가 돌아. 너 무슨 일 있냐 물으니 지가 하는 말이 우리 반에 이런 애가 있는데 걔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 그러대. 그래서 너는 걔한테 뭘 해주냐 하니 사실 지가 지금까지 학교 애들한테 돈을 뜯겨왔는데 어느 날 돈 뜯기는 걸 걔가 도와주기에 고맙다 인사하니 한 달에 이만 원씩 돈을 주면 앞으로도 보호해 주겠다 했다, 그래서 이만 원씩 주고 보호받고 있다는 거야.


오늘 네놈을 불러다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나는 이 일을 크게 만들어서 너를 소년범으로 똘똘 말아 소년원에 처넣을 생각이었거든. 내가 네놈 인생쯤이야 일순간에 박살낼만 한 힘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야. 근데 오늘 네놈이 우리 집에 와서 보인 모습을 보고 내가 생각을 고쳤다. 예의 바르고 식사예절도 잘 배운 것이 부모님이 자식 교육 하나는 잘 가르치셨다 싶어.


너. 앞으로 우리 아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고 진짜 친구로 대해라. 네가 우리 아들과 진짜 친구가 된다면 내가 너를 후원하마."


나는 병태 아버지 앞에서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병태와 진짜 친구가 되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 아마도 처음으로 아버지 생각을 했다. 금례엄마와 유년의 나를 두고 일찍이 집을 나가버린 나의 아버지를. 어리고 유약한 나를 지켜줄 강건한 울타리의 부재가 처음으로 사무쳤다. 가슴이 사무치도록 병태가 부러웠다.


다음날 등교하자마자 병태는 내게 와 두툼한 흰 봉투를 건넸다. 봉투 속엔 10만 원이 들어 있었다. 경탄할 액수였다. 나는 병태와 친구가 되는 조건으로 한 달에 한번 병태 아버지를 통해 10만 원의 후원을 받았다. 나는 그날부로 진심을 다해 병태를 친구로 대했다. 학교가 끝나면 원일과 창진, 더불어 병태를 데리고 넷이서 우리 집에 가 테레비를 보고 라디오를 들었다. 심심하면 시장으로 나가 간식을 사 먹었고, 병태의 찐따 같은 스타일을 바꿔주기 위해 옷도 사입혀 주었다. 우리는 스카이궁전에도 함께 갔다. 찐따 같은 외양을 벗고, 더 이상 기죽지 않고 말 더듬지 않는 병태는 여고애들에게 인기도 많아 그 시기엔 여자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병태는 그 기세를 업고 훨훨 날기 시작했다. 매 순간 의기양양해있었다. 그러자 어쩐지 병태는 조금씩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곧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갔고, 병태는 그 세계에 내가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병태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병기는 돈이었다.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그의 돈 말이다. 돈질을 해대니 돈에 목마른 놈들이 줄줄이 그에게 붙기 시작했다. 나는 병태의 의도와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병태 아버지에게 지금껏 후원받은 돈도 있고, 내 등에 비수를 꽃은 것도 아니니 보복을 할 생각도 없었다. 돈은 차치하고 경계 없고 겁 없이 무한정 변해가는 병태의 모습이 씁쓸하여 멀어지는 것이 맞다 여겼다.


병태는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듯 힘없고 약한 놈들만을 상대로 돈을 뜯고 때렸다. 이유 없이, 때로는 심심해서, 어느 때는 눈이 마주쳤다는 핑계로. 병태는 학교에서 무엇을 해보려다가도 나의 존재가 신경이 쓰여 그랬는지 내 눈치를 보는 탓에 무엇이 잘 풀리지 않는 눈치였다. 그러자 병태는 하교 후 시내로 나가 서클 모임을 하며 다른 학교 서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학교에서 서클로 활동 중이던 원일과 창진이 종종 내게 병태의 소식을 전해왔다. 원일과 창진은 병태를 두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이었다. 나는 겨울방학 동안 원일, 창진과 함께 극장을 집 드나들듯 다녔다. 나는 나의 영웅 이소룡 주연의 용쟁호투, 사망유희, 맹룡과광 같은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좋았고, 그를 닮고 싶어 늘 쌍절곤을 손에 들고 다녔다. 내가 휘두르는 쌍절곤에 타격을 입는 이는 늘 나였다. 이소룡이 괜히 이소룡이 아니다.


내가 이소룡에 빠져 쌍절곤을 휘두르던 그 시기에 병태는 본격적으로 다른 학교 서클 모임과 어울렸다. 복잡한 관계로 뒤얽힌 지저분한 패싸움에 참여했고, 여고 애들과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느라 병태의 지갑은 닫힐 틈이 없었다. 병태와 어울리는 이들 모두가 병태의 돈을 노렸고, 병태는 부모님께 받는 용돈으로는 더 이상 모자랐는지 부모님 지갑과 금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쌍절곤을 휘두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고급 세단 한대가 성광시장 입구 앞 대로변에 정차해 있었다. 세단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근사했다. 복작하고 초라한 시장 입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때 세단의 조수석 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고개를 까딱여 슬그머니 운전석 쪽을 바라보았는데, 그곳엔 병태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고, 그는 내게 차에 타라며 문을 열었다.


"네 집이 성광시장이라 했던 것이 기억나서 이리 와 보았는데 내가 잘 찾았구나. 잘 지냈냐."

"예."

"용돈은 잘 쓰고 있냐. 부족하진 않고?"

"안 받은 지 몇 달 되었는데요. 요즘은 병태랑도 거의 만나지 않고요."

"그래? 병태는 매달 나한테서 꼬박꼬박 네 용돈을 받아갔는데."

"병태가 저를 멀리해서요. 안 본 지 꽤 되었습니다."

"요새 병태가 뭘 하고 다니는지는 모르고?"

"잘은 모릅니다. 다른 학교 애들과 어울려 다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 잘 알았다."


나와 병태와의 인연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종종 원일과 창진을 통해 병태의 소식을 간간이 들었지만 매번 지저분하고 졸렬하여 듣기에 반갑지 않았다. 개학을 몇 주 앞둔 겨울방학의 끝자락. 날은 시리도록 추워 집 안에 창문을 꼭 닫고 이불 안에 몸을 숨긴 채 라디오를 들으며 한가로이 누워있었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란한 소리에 귀찮은 몸을 일으켜 어기적 나가보니 창백한 얼굴의 원일과 창진이 서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동시에 말했다.

"야 석규야. 병태가 죽었대."


병태아버지는 나와 나눈 이야기 끝에 매달 병태에게 지급했던 모든 용돈을 일절 끊었다 한다. 지갑 단속을 철저히 했고, 금고의 비밀번호도 바꾸었다. 병태는 돈이 끊기자 불안했다. 친구라 생각했던 이들과 여전히 어울려 놀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돈이 없는 병태는 필요가 없었다. 병태는 한순간에 친구를 잃었다. 사귀던 여자친구는 병태가 더 이상 경양식 레스토랑에 데려가주지 않자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자신의 여자친구가 자신과 어울려 놀던 서클의 우두머리와 교제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치를 참을 수 없었던 병태는 서클 모임에 그를 찾아가 그에게 '거렁뱅이 새끼'라고 했고, 악질이었던 그놈은 자신의 화를 못 이겨 들고 다니던 휴대용 칼로 병태 배를 수차례 찔러 버렸다. 병태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며칠간 의식불명이었다가 유난히 추웠던 그날 오전에 처연히 숨을 거두었다.


병태의 사망사건은 신문에도 실렸고, 지방 라디오에서도 화제로 한동안 떠들썩했다. 입학 후 각 학교에서는 불량서클 대상 단속이 강화되었고, 원일과 창진도 서클 활동을 하였던 탓에 몇 번이나 교무실로 불려 가 수차례의 심문을 받았다.


나는 병태가 죽지 않은 미래를 상상했다. 병태는 공부 못하는 놈들 사이에서도 가장 공부를 못 하는 놈이었으니 대학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고, 아버지가 강소기업 대표이니 아버지 회사에 취직을 하여 일을 배워 회사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병태는 돈이 많은 비슷한 집안의 예쁘고 참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신과 닮은 자식을 낳아 자신처럼 키웠을까. 병태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미래는 좀 달랐을까. 나는 타인의 인생의 깊이 관여하고 삶을 아로새기는 것이 이토록 위험하고 존재의 중심을 흔드는 일임을 무겁게 실감했다. 나는 한동안 정체 모를 우울감에 사로잡혔다. 그의 죽음이 마치 나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병태와 친구였을 때에도, 친구가 아니게 되었을 때에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병태를 기억했다. 나를 뒤따라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던 기죽어있고 순해빠진 찐따 병태를 영원히 기억한다. 돌이켜보니 나는 병태의 그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쓸쓸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었다. 나는 열여덟,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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