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by 시진


주말이 되면 나를 보러 금례엄마가 집에 왔다. 엄마는 매주 늙어있었다. 그을려 보잘것없는 얼굴에 자리한 주름은 매주 그 깊이를 더해갔다. 금례엄마의 손과 발은 험상궂었다. 손가락 관절 마디는 모질게 부은 탓인지 사납게 굵어 울퉁불퉁했고, 발에는 굳은살로 척박하게 거칠었다.

엄마는 내 안부를 물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집은 지낼 만 한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를. 저번 주에도 물었던 것을 이번 주에 오면 까맣게 잊고 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주말 밤이 되면 나는 금례엄마와 나란히 누워 잠에 들었다. 금례엄마는 밤이 새도록 투박한 손으로 내 뺨과 머리를 쓰다듬어댔다. 잠도 없냐고 타박을 주면 엄마는 잠드는 것이 아깝다 했다. 금례엄마는 일요일 오후면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에는 꼭 내게 용돈을 쥐어 주었다. 꼬깃한 푼돈이었다.


나는 그 꼬깃한 푼돈 위에 정갈히 모은 돈을 두툼히 얹어 다시 금례엄마 손에 쥐어 주었다. 금례엄마는 움찔하였다. 그 낯빛은 눈에 띄게 불안하였고, 곧 돈의 출처를 물었다. 나는 금례엄마 손을 잡고 대문을 넘어 시장에 들어서 태총형님을 소개했다. 나는 태총형님의 구루마에서 가끔씩 일을 도와주고 용돈을 받는다 했다. 짜장면과 탕수육도 사주고, 더러는 삼겹살도 사주는 좋은 삼촌이라 소개했다.


그럼에도 금례엄마의 불안한 낯빛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돈 벌 생각일랑 그만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당부를 재차 했으며 자꾸만 이사를 권했다. 나는 돈을 벌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했다. 또 나는 이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 했다. 물도 잘 나오고, 화장실도 바로 옆이라 편하고, 아랫목도 뜨뜻하다 했다. 나는 금례엄마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고 있었다.


금례엄마는 평생 부지런했지만 가난했다. 나는 아주 일찌감치 깨달았다. 부지런함은 돈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알맹이 없는 부지런함 대신 실속 있는 속옷 경매와 카세트테이프 사업 등으로 돈을 벌었다. 사정이 풍족해지니 나는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었고 우스운 것은 많아졌다. 성실함, 부지런함과 같은 아무래도 가장 힘없고 무의미한 것들이 특히 우스웠다.


보통의 나는 원일, 창진과 거의 매일같이 우리 집에서 놀았다. 테레비를 보다가 라디오를 듣고, 심심하면 시장구경이나 하며 만두와 어묵을 사 먹는 재미로 충분히 즐거웠다. 어느 날, 원일이 말했다.

"석규야 니 나이트 안 가봤제. 우리 함 가볼래."

"나이트? 나 춤출 줄 모르는데."

"야 거기 춤추러 가는 거 아니고 여자애들 보러 가는 거다."

그렇다면 나는 좋다 했다. 금요일 저녁, 우리는 주로 고등학생들이 가는 나이트클럽 스카이궁전에 갔다. 태어나 처음 경험한 나이트클럽은 내게 생경한 천국과도 같았다. 눈앞으로 쉴 틈없이 플래시를 터트려대는 사이키 조명과 귓가를 묵직하게 때리는 음악소리에 나는 눈도 귀도 혼란스러웠지만 뇌는 이다지 황홀하다 착각했다.


스카이궁전은 입장하면 기본으로 1인당 콜라 한 병씩을 주었다. 우리는 콜라 한 병을 손에 들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춤을 출 줄 몰라 늘 뻣뻣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스카이궁전에는 소문대로 정말 예쁜 여자애들이 많았다. 나는 그 애들을 살폈다. 그 예쁜 애들은 언제나 스테이지를 주목했다. 그러자 나는 갑자기 춤을 잘 추고 싶어졌다. 예쁜 그 애들의 눈에 띄고 싶다. 누군가 지금 당장의 내 꿈을 묻는다면 나는 스카이궁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 말하겠다.


나는 다음날 곧장 학교에 가서 춤을 잘 추기로 유명한 놈 한 명을 수배했다. 그리고 그에게 춤 과외를 부탁했다. 나는 나이트클럽 춤을 열심히 배우기 시작했다. 원일과 창진에게는 춤을 다 배울 때까지 스카이궁전에 출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둘은 그런 나의 뜻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춤을 배우는데 전념하였다.


밤낮으로 춤을 추었다. 그동안 몇 주가 흘렀다. 거울 속에 비친 춤추는 내 모습이 썩 괜찮아 보인다. 이쯤 하면 되었다. 나는 그날 스카이궁전에 비장하게 입장했고, 무대 중앙의 스테이지로 등장했다. 모두가 환호하는 굼베이댄스밴드의 엘도라도 음악이 나올 때였다. 나는 발끝으로 음악을 쪼개어 스텝을 밟고, 마치 중력과 대화를 나누듯 선과 호흡으로 시공간을 멈추게 하는 댄스를 선보였다. 정말이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나는 그날에 이뤘다. 스카이궁전의 주인공이 되겠다던 꿈 말이다.


나는 일시에 많은 예쁜 여자애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그날 경혜를 만났다.

경혜는 여고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진이라 하였다. 그렇게 보였다. 치마단은 일부러 튿어 박음질이 다 보이도록 길게 내려 입었고, 엉덩이 부분은 따로 줄여 꼭 맞아 터질 듯했다. 얼굴엔 어울리지도 않는 화장을 서툴게 그려 놓았고, 머리엔 당최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보기에 아주 난감했다. 나는 경혜보다는 경혜 옆에 있던 친구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경혜가 내게 너무 적극적이라 달리 무엇을 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원일과 창진, 경혜와 그의 친구들과 같이 모여 놀았다. 경혜는 이미 내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했다. 패싸움하면 선방에 서서 한방에 이기는 애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런 애가 춤까지 잘 출 줄은 몰랐다며 듣기 민망한 칭찬과 느끼한 눈빛을 내게 지속적으로 보냈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경혜의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다. 얼떨결이었다. 어쩐지 내 교제는 항상 이런 식이다.


서클이니 일진이니 하는 애들 사이에서 어느 날부터 가출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경혜도 그랬다. 늘 언젠가 가출을 하겠다는 결심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애 같았다. 경혜는 자신의 집안이 대대로 교육자 집안인 탓에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며, 집은 늘 숨 막히는 곳이라 도망치고 싶다 했다. 경혜는 내게 같이 집을 나가자 졸라댔지만 나는 이미 혼자 살고 있기에 가출을 할 필요가 없다. 두어 번 거절하자 경혜는 삐쳤는지 만나면 툴툴대고 혼자서라도 가출을 하겠다는 둥, 가출을 해서 무슨 일이 생겨도 자신을 찾지 말라는 둥의 협박을 하며 매사 귀찮게 굴기에 나는 경혜의 고집을 못 이겼다.


경혜는 부모님께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도망쳐 나왔다 했다. 내용은 어디든 가서 잘 살 테니 나를 찾지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한다. 우리는 각자 짐을 싸서 밖에서 만났다. 막상 집을 나오니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거리를 배회하다 가까운 기차역으로 향했다. 열차 행선지를 한참 들여다보던 경혜는 서울에 가고 싶다 하였다. 나는 돈이 많아서 어디든 갈 수 있었고, 경혜와 나는 둘 다 서울에 한 번도 안 가봤으니 이참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하여 서울로 가는 열차표 두 장을 구매했다. 기차를 탄 우리는 삶은 계란을 사서 까먹고, 창밖의 시시때때로 변하는 바깥 풍경을 진득이 감상하였다. 나는 경혜의 조잘대는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깜박 졸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경혜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정신 바짝 차리라며 자꾸만 깨워대는 탓에 나는 다시 한 번 가출 나온 것을 후회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울역에 도착했다.


눈 깜짝할 새에 코 베어간다는 서울이 아니겠는가.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챙겨 온 보따리를 옆구리에 빳빳이 낀 채로 열차표 검표를 기다렸다. 역무원에게 검표를 받고 서울역 출구를 찾아 나가려는데, 출구 앞에 있던 경찰이 경혜와 나를 불러 세웠다. 의연한 척 하였지만 어쩐지 시선에 주눅이 들었다. 경찰은 다가와 옆구리에 기어이 끼워둔 보따리를 무례하게 잡아채며 물었다.

"니들 고등학생이지? 여긴 무슨 일로 왔어. 가출한 거 아니야?"

"아니에요. 그리고 저희 성인이에요."

경혜와 나는 고등학생이 아니라고 잡아떼 보았지만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기에 별 수 없이 들켜 버렸다. 주민등록증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우리의 가출은 서울역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 나가보지도 못한채 싱겁게 끝이 났다. 경혜와 나는 서울역 근방 경찰서로 끌려갔다. 비행청소년들 사이에 가출이 유행하고 있고, 지방 애들이 집을 나가면 죄다 서울로 온다고 하니 마침 서울역에서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집중 단속 중이었다 한다. 알 턱이 없었다. 경혜와 나는 경찰서에서 각자 부모님께 연락을 취했다. 나는 금례엄마와 통화를 했고, 경혜도 경혜 엄마와 통화를 했다.


몇 시간이 흘렀다. 격양된 표정의 경혜 엄마와 표정 없이 무뚝뚝한 얼굴의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함께 경혜를 데리러 왔다. 경혜의 작은 아버지는 내게 매우 낯이 익었는데 그를 어디서 보았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경찰들과 이야기를 하고 조서를 작성하는데 내 신상을 들은 경혜의 작은 아버지가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나를 매섭게 쏘아보며 내게 어느 학교 학생이냐 다시금 물었다. 이내 몇 학년 몇 반인지까지도 물었다. 나는 묻기에 순순히 대답하였다. 경혜 작은 아버지는 경멸의 눈초리로 내 온몸 구석구석을 때리듯 훑어 내려갔다. 아팠다. 서늘하도록 폭력적인 눈빛이었다. 그는 곧 경혜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경혜와는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통틀어 나와 가장 악연이었던 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경혜가 경혜 엄마와 작은아버지라는 사람과 떠나고 얼마 안 있어 금례엄마가 경찰서로 들어왔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헥헥거리며 들어와 경찰들에게 박카스 한 병씩을 돌리고 연신 굽실댔다. 아프다고 내내 두드려대던 허리를 그리도 아낌없이 숙여가면서 말이다.


나는 금례엄마 손에 이끌려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이 놈 새끼야. 네가 왜 집을 나오냐. 도대체 집을 나올 이유가 뭐가 있어 혼자 사는 놈이. 내가 미쳤지...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너를 낳고 미역국을 먹었을까..."


이후에도 금례엄마는 이 따위로 살 작정이라면 엄마 따라 당장 이사를 가자는 둥,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어떻게 발랑 까진 애를 골라 사귀냐는 둥 한탄 섞인 넋두리를 줄줄 쏟아냈다. 금례엄마는 경혜 얼굴도 보지 못했고, 그 애가 어떤 애인지도 전혀 모르면서 그 계집애가 착한 나를 버려놨다고, 내게 다시는 그 애를 만나지 마라 하였다. 금례엄마는 아까 경찰서에서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런다.

"우리 애는 너무 착해서 가출을 할 애가 아닌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이렇게 됐어요. 경찰 선생님들 우리 애 한 번만 봐주세요." 이렇게 말이다.


나는 금례엄마에게 경혜가 집 나가 보는 게 소원이라는데, 여자애 혼자 집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따라 나와준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금례엄마는 네가 제일 위험한 놈이라며 헛소리 말라 하였다.


경혜는 집으로 끌려가 부모님께 머리를 빡빡 깎였다 한다. 더불어 외출금지를 당해 한참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경혜가 신경쓰여 몰래 경혜 집 앞으로 가서 창문에 돌멩이도 던져보고, 만나고자 몇 번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경혜는 까까머리가 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그랬는지 창문에 던져지는 돌멩이의 존재가 나인줄을 알면서도 얼굴 한 번을 안 보여줬다. 경혜의 부모님은 경혜를 더 이상 이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 판단했는지, 친척이 있는 깡촌의 시골 학교로 강제 전학을 보내버렸다. 경혜와 나는 아주 짧은 기간 교제하며 함께 대담한 일탈을 감행했지만 시도와 동시에 실패했고, 끝은 씁쓸했다. 서울역 근방 경찰서에서 내내 주눅 들어있던 그 모습이 경혜를 떠올리면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가출 사건 이후로 며칠이 흘렀다. 나는 학교 쉬는 시간에 복도를 지나는데, 복도 건너편으로 매우 낯익은 모습을 한 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어디서 보았더라. 맞다. 경찰서에서 나를 경멸에 찬 눈빛으로 쏘아보던 그 이다. 경혜의 작은 아버지 말이다. 그는 출석부와 지휘봉을 들고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와 대등하여 마주치는 그 순간에야 알았다. 낯이 익다 생각한 이유를 말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경혜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내 인사를 받지도 않을뿐더러 눈길조차 건네주지 않았다. 그는 무엇이 그토록 불쾌했는지 몰라도 티 나게 혀 차는 소리를 내며 인사하는 나를 두고 차갑게 지나쳐 갔다. 다음 해에 2학년이 되면 부디 저 선생님만큼은 절대로 내 담임이 안되었으면 좋겠다 바랐다. 내 다난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악연이었던 이와의 두 번째 만남이 그렇게 저물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