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라 떠들어댔다. 새순이 올라오는 파릇한 풍경 위로 서늘하고 날 선 바람이 불었다. 기묘한 날씨라 생각했다. 나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땅을 보며 걸었다.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2학년 개학일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했다. 잔인도 하다. 비켜갈 수도 없고 지나칠 수도 없다. 나는 그 외나무다리 위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원수를 밀어 나무에서 떨어트려야 할까. 그러나 떨어지는 이가 내가 될 수도 있다. 회유를 할까. 그도 아니면 화해를 할까. 멍청한 생각이다. 회유와 화해가 가능한 관계였다면 일찌감치 원수가 될 일도 없었을 일이다.
그와의 세 번째 만남은 2학년 교실에서 이루어졌다. 일전의 복도에서 마주한 싸늘했던 두 번째 만남 이후로 나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를 선생과 제자로 만나는 일만은 없기를 아마도 간절히 바랐다.
교실 문이 열리며 끝내 바라지 않던 그가 등장했을 때, 나는 마치 발밑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앉은자리를 비추던 햇살은 길을 옮겨갔고 햇살이 거두어간 내 시야로 금세 어두운 먹빛이 들어섰다. 인간은 한 치 앞을 모르고, 하기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간절히 바라는 일은 꼭 반대로 이루어진다. 인생 참 요망하다.
그는 느긋한 걸음을 옮겨 교탁 앞에 섰다. 교실은 어수선한 이들의 웅성거리는 말소리로 온통 부산스러웠다. 그는 말없이 교탁에 출석부를 가지런히 내려놓고, 겨드랑이에 끼워두었던 지휘봉을 오른손으로 옮겨 교탁을 향해 세 번 내리쳤다. 둔탁한 소리에 웅성거림이 멈추자 교실은 일시에 그를 주목했다. 그는 교실 전체를 천천히 훑어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이상 시선을 옮기지 않고 내게 멈춘 채 나를 오래 응시했다. 익숙한 눈이었다. 경찰서에서 나를 날카롭게 쏘아보던 그 서늘한 시선과 같았다. 긴장하여 빳빳해진 몸이 어째 자꾸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황급히 그의 눈길을 피해 도망쳤다. 도망쳐 갈피를 잃은 눈동자가 앞자리에 앉은 놈의 교복 옷깃에 내려앉았다. 그 위로 하얗게 떨어진 비듬의 개수를 새면서. 아마도 버티고 있었다. 그는 이내 말없이 뒤를 돌아 커다란 칠판에 하얀 분필을 들고 거침없이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갔고, 이름 끝에 마침표를 붙임과 동시에 똑하고 부러져 두 동강 난 분필이 바닥으로 떨어져 교탁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분필 굴러가는 소리가 그토록 소란스러울 줄이야. 그의 이름, 이춘근이었다.
나는 토목과이고, 토목과 2학년이 되면 측량을 배운다. 토목 측량은 자연 지형이나 넓은 부지를 대상으로 한 기반시설 공사를 위해 수행이 되는 작업인데, 보통 기다란 삼각대 기둥 끝에 망원경 같은 것이 달려 있는 도구를 이용해 그것을 들여다보며 공간정보를 잰다. 측량을 배우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계산기가 필요하고, 우리 토목과에서는 일제 카시오 계산기가 가장 유명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휴대하기 편했고 전자계산기라 곱하기, 나누기등의 다양한 계산법을 자동으로 해주어 쓰기에 매우 편리했다. 유일한 단점은 비싸다는 거였는데 카시오 계산기 하나 값으로 3~4만 원 하였으니 말 다 했지 뭐.
개학하고 고작 열흘이 지났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추위도 가시지 않아 내내 찬 기운이 맴도는 교실이다. 점심시간의 어수선한 틈을 이용해 누군가 도둑질을 했다. 피해자는 우리 반 학생이었는데 카시오 계산기를 사려고 가방에 돈을 넣어왔는데 점심시간 지나고 자리에 와보니 그 돈이 홀랑 사라졌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진 그놈은 담임 이춘근을 찾아갔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첫 수업 하나를 끝낸 쉬는 시간이었다. 책상 위로 교과서 몇 개를 두툼하게 쌓아 베개로 삼고 자리에 엎드려 졸고 있었는데, 교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떠들썩한 소음을 산산이 부수는 소리였다. 이춘근이었다. 그는 잔뜩 성이 난 얼굴로 교실에 들어왔다.
"송석규. 너 이 새끼 이리 와봐."
교실에 있던 이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어기적 일어나 애꿎은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천천히 이춘근에게로 걸어갔다. 이춘근은 내가 가까이 오자 돌연 예고도 없이 손을 들어 올려 내 귀때기를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내가 너 이 새끼. 이럴 줄 알았다. 네 새끼가 돈 가져갔지? 감히 네가 내 교실에서 도둑직을 해?"
나는 멍청하게 맞고만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좋을 뻔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냐고, 왜 때리냐고, 도둑질 같은 건 한적 없다고 소리쳤지만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 새끼가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엎드려뻗쳐."
세차게 내려친 매운 매질에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고, 피부 위로 뜨거운 열감이 느껴졌다. 나는 억울하여 분통이 났다.
"저 돈 훔친 적 없어요. 왜 앞뒤 상황 알아보지도 않고 때리세요? 제가 아니면 어쩌시려고요."
"엎드려뻗치랬지. 이 새끼가 미쳤나.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나는 빳빳이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이춘근은 다시 내 귀때기를 사정없이 내려치다가 그의 말을 듣지 않는 내가 괘씸해서였는지 뾰족한 구두 앞코로 내 정강이를 힘껏 걷어차 강제로 무릎을 꿇리고서 혼신의 힘을 다해 내 구석구석을 때리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코를 때려 맞아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머리채를 움켜 잡아 바닥에 몇 번씩 찧어 박아댄 탓에 머리통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발로 내 배를 세게 걷어찼고, 나는 아픈 배를 움켜잡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가혹한 매질 소리에 같은 복도를 쓰는 교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밖으로 나와 내가 매 맞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다음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림에도 이춘근은 멈추지 않았다. 체벌이 아니었다. 폭력이었다.
다음 수업시간의 담당 선생님이 교실로 올라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내게서 이춘근을 황급히 떼어내었다. 이춘근은 흐트러진 자신의 옷차림을 말끔히 다듬고 바닥에 떨어진 출석부와 지휘봉을 챙겼다. 그는 그럼에도 분이 안 풀렸는지 복도에 진열된 신발장을 손에 든 지휘봉으로 연속해 내려치며 복도를 떠났다.
눈치도 없이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나는 쉬이 진정되지 않는 전신을 안간힘을 다해 붙잡아야 했다. 선생님은 내게 양호실에 가서 치료를 받고 오라 했지만, 오기가 아니라 양호실을 찾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교실의 모두가 이춘근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수치스럽고 억울하고 분통하여 눈물이 나려는 것을 갖은 힘을 다해 참아냈다. 눈물을 참아낸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이었다.
수업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은 반쯤 나갔고, 전신은 통제가 안되어 긴 시간을 내리 떨었다. 맞은 곳은 따갑고 아리고 욱신거렸다. 머리를 세게 맞은 탓이었는지 귓가에서는 웅웅대는 이명이 들려왔다. 머릿속엔 한 가지 질문만이 지겹게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나를 왜 이토록 싫어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막상 교무실 문 앞에 다다르니 이춘근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망연히 서서 교무실 문고리만을 바라보고 서 있었는데,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이춘근이 내 눈앞으로 나타났다.
"뭐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들어와."
나는 이춘근을 따라 그의 자리로 가 섰다. 그는 자신의 의자에 그토록 나태하고 귀찮은 자세로 앉아 책상에 쌓인 서류더미들을 성의 없이 정리하는 시늉을 하며 내게 자신을 보러 온 것이냐 물었다.
"선생님, 저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이춘근은 대답이 없었다.
"저는 교실에서 도둑질한 적이 없습니다."
"야 이 새끼야. 도둑질할 새끼가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선생님 생각이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돈 훔친 적 없어요. 그냥 제가 싫으신 거잖아요."
"그래. 나는 네 놈이 치가 떨리도록 싫어."
그의 대답은 우습게도 내게 상처가 됐다.
"네놈 새끼가 착한 경혜를 다 배려놨어. 네 새끼 건달새끼들이랑 어울린다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그러니 그 착한 애가 갑자기 바람이 들어 집을 나가지. 그때 우리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
"저 건달 아닙니다."
"건달 새끼랑은 상종 안 한다."
"건달 아니라고요."
"두 번 말 안 한다."
"저 건달 아니라고요.."
"꺼져 이 새끼야."
"건달 아니라고요! 아니라고요!"
이춘근은 정말 내가 건달이라고 믿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내가 건달이기를 바랐던 걸까. 그는 다시 내게 손을 올렸다. 이미 쥐어터져 피떡이 된 얼굴 위로 이춘근의 두툼한 손이 또다시 따갑게 내려앉았다. 살 부딪히는 소리가 교무실 전체를 따갑게 채웠다. 교무실에 있던 모든 선생님들이 다가와 이춘근을 말리려 했지만 그는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폭주했다.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는 이미 나를 양아치 건달 조폭에, 아무것도 모르고 착하기만 한 경혜를 꼬셔 가출을 하게 하고, 다른 이의 돈을 훔치는 도둑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도대체 그 첫 만남이 뭐라고. 그 섣부른 단정이 무자비하게 매정하지 않은가.
"씨발. 좆같은 거. 나 건달 아니라는데 왜 자꾸 건달 취급하냐고!"
그는 마치 내가 분노하기만을 기다렸던 사람 같았다. 내 입에서 상스러운 욕이 나오자 입가에 비릿한 조소(嘲笑)를 만연히 띄우며 손목에 시계를 풀고 셔츠 소매를 둘둘 말아 걷어 올렸다. 나를 본격적으로 때려죽일 기세였다. 나는 그가 벗어둔 손목시계를 집어 들고 바닥에 거칠게 집어던진 후 말했다.
"좆같은 학교 안 다니고 말랍니다."
나는 교무실을 뛰쳐나오면서 교무실 유리창을 팔꿈치로 있는 힘껏 쳐 깨 부수고 교실로 뛰어가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달아났다. 팔꿈치로 새어 나온 피가 교복과 맞부딪혀 엉겨 붙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얼굴에 닿는 찬 바람 위로 피떡이 된 얼굴이 쓰라리게 아파왔다. 쫓기듯 집으로 들어온 나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와 창문까지 모조리 걸어 잠갔다. 두꺼운 겨울 이불을 꺼냈다. 나는 이불 안으로 몸을 웅크리고 들어가 앉아 그제야 서러운 울음을 쏟아내며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이춘근이 무서웠다.
금례엄마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을 혼자 보내야 하는 게 안쓰럽다고, 이불이라도 든든한 것 덮고 자라며 고르고 골라 가장 따스운 솜이불을 보냈을 것이라. 짜봤자 똥밖에 안 나올 거라던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남의 집 식모를 살며 한 푼 두 푼 모은 쓰지도 못할 그 돈을 모아다 내 솜이불에는 아낌없이 썼다. 나는 그 폭닥하고 따스한 기운을 품은 이불을 금례엄마 삼아 가득히 끌어안았다. 새하얀 솜 위로 짠내 나는 눈물과 비릿한 핏자국이 얼룩졌다.
나는 꼬박 이틀을 집에서 꼼짝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이춘근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이틀이 지나고 원일과 창진이 우리 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석규야. 무단결석 3일 이상이면 정학이란다. 열흘 이상 넘어가면 퇴학당할 수도 있다. 그만하고 학교 가자." 나는 처음으로 원일과 창진의 앞에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그들은 나를 가슴 깊숙이 끌어안고 함께 울어주었다.
정학이든 퇴학이든 안되었다. 나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는 몰랐어도 그놈의 학교는 나가야 했다. 금례엄마가 그것만큼은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엄마의 표현을 빌려 못해먹을 자취도, 모진 식모살이도 다 내 공부 때문이라 했다. 나는 학교를 다녀야 했다.
깡촌 시골에 살 때 많이도 봤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을 말이다. 소 죽인 놈이 할 말은 아니다만 나는 그제야 그때의 그 소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어땠을까. 도살장에 끌려가서 죽느니 농약 먹고 죽는 편이 나으려나... 학교 가는 길의 내 기분이 딱 그랬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였다. 죽을 일만 앞두었다 이 말이다.
이춘근은 내게 학교 안 나오고 뭐 했냐, 왜 다시 왔냐 와 같은 어떤 인사도 안부도 지적도 없었다. 그는 대체 내가 어느 정도로 싫은 걸까 감도 못 잡을 수준이다. 이춘근은 그 이후에도 우리 교실에 무슨 일만 생기면 앞뒤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나부터 잡고 보았다. 모든 일의 원흉이 내게서 시작된다 믿고 있었다. 앞으로 학교를 이 상태로 다닐 수는 없다. 지긋지긋하게도 아직 춘삼월이다. 나는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내야 했다.
나는 교실에 경비를 세우기로 한다. 매주 돌아가며 애들 몇 명을 뽑아다 쉬는 시간, 체육시간, 점심시간마다 경비를 세웠다. 우리 교실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서는 안되었다. 무엇이든 없어지면 안 되었고, 싸움이 일어서도 안 되었다. 그게 무어든 잘못되면 곧 내 탓이 되니까 말이다.
그날부로 우리 반엔 어떤 사건 사고도 없었다.
"앞으로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갈 놈은 화장실만 갔다가 바로 자리에 와서 착석해라. 나갔다 들어왔다 하지 말고 앉아서 책 봐라. 교실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이춘근에게 처맞겠지만 니들은 나한테 죽는다."
우리 반은 학교 개교 이래 역사에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없을 모범을 보였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보통의 교실은 문장 대신 비속어가 날아다니고, 수학 공식 대신 과자가 굴러다녔으며, 공기는 늘 어수선하고 소란했는데 그 대다수의 교실 중 유일하게 우리 반 애들만 전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선생님들은 복도를 지나는 길에 그 광경이 귀하여 모두 한 발자국씩 들어와 우리를 구경하였다. 그리고 한 마디씩 꼭 던졌다. '니들 도대체 왜 그러냐.'
이춘근은 그 모든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는 나를 불렀다.
"네가 시킨 짓이냐?"
"예. 무슨 문제만 생겼다 하면 나만 잡아 죽이려 드시니까요. "
"이거 완전히 웃기는 놈이네."
"선생님, 저는 이거 하나도 안 웃겨요. 억울해 죽겠어요."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이 새끼야. 빌어먹을 건달새끼."
"유비무환이라 했습니다. 그게 뭐든 미리미리 대처할랍니다."
이춘근은 나를 건드릴 핑계가 사라지자 애꿎은 놈들을 데려다 때렸다. 말도 안 되는 이유들을 타당한 척 가장하여 꾸며낸 폭력이 교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귀때기 맞는 일은 여사였고, 멱살 잡혀 내동댕이 쳐지는 일이 허다했다. 학생들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나는 이춘근이 더 이상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그에게 꼴도 보기 싫은 놈이다. 나는 그에게 단 한순간도 제자였던 적이 없으며, 그는 경찰서에서 본 나와의 첫 만남 이후로 나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잘하든 못하든 나는 이미 경계선 바깥의 있는 놈이었다. 그러니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노력할 것도 없다. 그가 자신의 마음대로 나를 휘두르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춘근과 나의 감정의 골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깊어져만 갔다.
내 인생은 지금까지 꽤 많은 것들이 대부분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내가 장군이 된 일처럼 말이다. 이춘근과의 관계는 학생들에게 나를 더욱더 장군처럼 비추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제 아무리 서클이니 일진이니 하는 애들도 선생님 앞에서는 꿈쩍을 못하는 게 다반사인데, 나는 공포의 이춘근에게도 쫄지 않는 진짜 장군급의 장군인 것이다. 기세가 내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이춘근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읽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나의 말대답에 그가 흠칫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도 내가 무서웠던 것일까. 그는 내가 진짜 사회인 조폭과 어울리는 건달새끼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판도가 뒤집히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있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씌우고, 경혜와의 가출 사건과도 같은 한참도 지난 옛날 일들을 들춰내어 내게 악덕하게 구는 날에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 경고했다.
"선생님, 그만하세요. 이제 저도 가만 안 있습니다."
"네가 이 새끼야.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네 새끼 건달들 불러다 나를 패 죽이기라도 하게?"
나는 다시 한번 내가 건달이라는 소문의 실체가 되어보기로 한다.
"항시 밤길 조심하시죠. 선생님 배에는 칼이 안 들어갈 것 같습니까."
이춘근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만 나를 바퀴벌레 대하듯 했다. 잔뜩 경멸하고 실컷 혐오했다. 그가 나를 보는 그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잊히지 않을 눈빛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