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니 온통 붉었다. 그때의 내 모습이나 말, 버릇, 생각,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같은 나를 구성하는 전부를 통틀어서. 붉은 나의 치부를 모두 그러모아 오래되고 텁텁한 이불속에 몽땅 숨겨두었는데 어느 날 들춰보니 퀴퀴한 냄새가 나서 더 이상 그대로 두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이상한 마음. 온갖 미사여구를 문장 앞에 갖다 두고 나를 합리화하며 청소하기 시작했지만, 무엇이 덧붙을수록 지저분함만 더해갔다.
숨기고 싶은 과거 혹은 내 비밀, 그도 아니면 듣는 이에게 뱉은 내가 생각해도 멍청한 말, 또는 끝내하지 못한 말. 진짜 찌질한 내 모습들을 총망라한 나. 찌질한 나.
경험상 그럴 땐 솔직해야 했다. 내가 찌질한 인간인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아득바득 가리려 할 때의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이 보이는지를 알아야 했다. 솔직해져 보기로 한다.
나는 친구가 늘 몇 없었다. 감정선이 복잡하고 싫은 게 많은 사람이라는 탓도 있었고, 사실은 친구가 필요 없기도 했다. 친구랑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는 가족과 함께 하면 되었다. 나는 관계의 불편함을 느끼면 소리 소문 없이 그와 멀어졌다. 그 시절 나는 손절의 여왕이었다.
아기를 낳고 몸이 자주 아팠다. 병원을 집 드나들듯 하였다. 자주 울었다. 그러자 마음의 여력이 없어졌고 위로가 필요했다. 그런데,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내 부모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걱정에 몇 날 며칠 밤잠을 못 이룰 사람들이고, 남편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절실하게 친구가.
진짜 친구가. 필요해졌다.
모임이 있었다. 나는 서서히 그들에게서 소외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것도 없었다. 내 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가 그래왔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 관계를 바로 잡고 싶어 졌다. 나는 소외감을 느낀다 토로했다.
그들은 내게 만나자 하였다.
나는 그들을 보자 눈물이 터졌다.
“나 너무 외롭고 공허해. 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남편한테도 하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생겼어. 자꾸 아팠거든. 몸은 아프고 마음엔 여유가 없으니 나는 신경질 적여지고, 그즈음엔 아기도 온 마음으로 사랑할 수가 없었어.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데 편하게 전화할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닫고 집에서 목놓아 울었어. 내가 우니 아기는 더 서럽게 따라 울었어. 나는 그쳐야 했어. 급히 아기를 달래야 했거든.
근데 나도 위로가 받고 싶은 거야. 괜찮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야. 나 좀 신경 써줘. 관심을 갖고 봐줘. “
그들이 내 눈물 젖은 축축한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속이 후련했다. 갑갑하고 팍팍하게 조이는 옷을 벗어던졌을 때의 느낌이었다. 솔직함의 위력을 다시금 깨달았다.
스치듯 하는 생각, 가진 비밀, 깊은 곳에 숨겨둔 욕망, 절대 들킬 수 없는 마음. 인간이라면 모두가 공평하게 가지는 추잡하고 비합리적이고 적나라한 생각들.
나는 그것을 꽁꽁 감추며 살기 위해 애썼지만 이 글을 읽을 나와 같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내려놓고 가뿐해지자고.
미사여구 없이도 꽤 나이스할 수 있다고.
그로 인한 자유를 얻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