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연애 후 우린 결혼했어요.
결혼한 지 3년 차. 사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어요.
길죠. 그동안 우리가 함께 본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같이 먹은 끼니는 셀 수나 있을까요.
지난하고 뜨거웠던 서로의 시간을 위로하고 또 축하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갔을 때였어요.
나는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남편은 작고 둥그런 의자에 애처롭게 앉아 또 작고 둥그런 티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고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어요.
편지를 건네더라고요. 익숙하게 못난 글씨체였어요.
편지에는요. 다음 생에도 나를 만나겠대요. 못 이기는 척 다시 사랑에 빠져달래요. 남자는 가장 능력 없고 초라한 순간에 평생을 함께하고 싶지만, 그래서 차마 잡을 수 없는 여자를 만나고, 여자는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기다리지 못할 남자를 만난다는데 시험에 빠질 그 시기의 위기를 극복하고 백만분의 일로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어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요.
나는 활짝 웃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 쓴 일기에 나는 결혼 연차가 쌓일수록사랑이 더 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나 잘 살고 있는 거죠.라고 적었어요. 나는 평생을 연애하듯 살고 싶었는데, 가치 있는 결혼생활은 연애하듯 살기보다는 진짜 가족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라 친구 관계에서 깊은 우정을 나누지 못해 왔어요. 뭐 친구도 별로 없을뿐더러요. 상대방의 작은 실수나 단점이 크게 와닿기라도 하면 좋았던 감정이 차게 식으면서 멀어지고 싶거든요. 사람한테 잘 질려해요.
10년 동안 그의 단점과 실수는 얼마나 많았겠어요.
지독하게 싸웠던 시간도 있어요.
근데 질리지가 않아요.
멀어진다 생각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슬프고요.
확실하게 사랑이에요.
나는 임신과 출산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어요. 어느 인류학자는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아이를 낳는 일은 어리석고 멍청한 짓이다.라고 말했다는데, 나는 그 말에 적극 동의하는 염세적인 사람이었어요. 딩크는 아니었지만 가능한 최대한 멀리 미뤄두고 싶은 일이었어요.
편지를 읽고, 집에 돌아와 또 읽고, 일기를 쓰다 또 읽었어요. 그 순간, 나는 다 이뤘다는 생각에 다다랐어요. 무엇이든지요. 그리고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이제부터 내 꿈은 당신을 닮은 아이를 낳는 거야.
편지가 뭐라고요. 그 글이 뭐라고요.
말에는 힘이 있다는데, 글은 더 해요.
그러니 사랑을 글로 전하세요.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이의 마음을 글로 설득하세요.
결혼 5년 차. 현재 저는 아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들을 느껴요. 근데 이게 과연 사랑이 맞는 걸까. 헷갈릴 때가 많아요. 나는 아기를 키우는 게 힘이 들어서 웃기보다 자주 울었고, 다정하기보다 화가 많았어요. 때에 따라 어느 날은 우울했다가 또 어느 날은 스스로 좋은 엄마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으스대기도 합니다.
이 모든 제 감정을 기록해 둬요.
서툴러서 어지러웠던 엄마로서의 일상을 언젠가 딸에게 보여주려고요. 그녀가 커서 읽을 나의 솔직하고 편집 없을 편지에도 그런 힘이 있었으면 합니다.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