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31 이채 <한 해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올 한해 편지를 받아주신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살기에는 너무 큰 울분과 숱한 사연들이 덩그렇게 우뚝한 무덤을 만들었지만, 이름없는 한 사람으로 살기에는 더 없이 평화로웠습니다. 정월부터 동짓달까지, 달이면 달마다, 날이면 날마다 갖가지 이름표를 매달고 살아온 삼백예순다섯날, 365가지 모습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기까지는, 진한 영양분이 들어있는 당신의 사랑이 특효약이었지요.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학원도 오늘부터 며칠간 방학을 합니다. 예전과 달라서 요즘 교과과정은 봄방학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학교 방학식이 1월인 경우가 많더군요. 그래도 한 해를 보내는 오늘 만큼은 가족과 함께 토담거리는 시간이 필요할 듯 싶어서 학원방학을 공지했지요. 너무 큰 사고 소식에 어디라도 멀리가고 싶은 맘은 이내 접고 가는 해도 보고 오는 해도 볼 수 있는 가까운 장소를 물색중입니다. 새해에 떠오르는 태양맞이도 좋지만, 저무는 한 해를 안아주는 노을바다를 보며 석별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 싶네요.
금주간은 제주항공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의 시간이 있는데요, 군산에서도 추모광장이 세워졌으니, 생각나시거든 들러보심도 권하고 싶고요. 올해가 간다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새해가 온다고 너무 환대하지도 말고,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일보다 오늘이 얼마나 사랑 그 자체인지를 제 가슴속에 손을 얹고 서약하는 오늘이기를 소망합니다. 이채시인의 <한 해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한해 당신때문에 행복했습니다 – 이채
오늘이 무거워 고개를 떨구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햇님처럼 웃어주던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꼭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꼭 하고 싶은 일도 망설이고 있을 때
'힘내'라는 당신의 따듯한 한마디는
용기없는 나를 새롭게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어떤 시련도
우리에겐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할 수 있어' 라는 자신감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몰아내는
가장 단단한 무기임을 배웠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누구를 원망하고 비난했을 때
너그러운 당신의 마음은
이해심이 부족한 나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봄볕에 새싹이 돋듯
다시 태어나는 나를 기대하며
소망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슬기로운 당신의 가르침 덕분이 아니겠는지요.
하루하루 은혜의 별들이
내 작은 가슴에서 은하수처럼 빛날 때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보석 같은 사랑
당신의 고귀한 그 사랑 때문에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