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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봄날아침편지256

2024.12.30 김소엽 <향기를 위하여>

by 박모니카

-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중 일부) -

12월에 둘러쌓인 두려움, 결국 제주항공 비행기사고로 대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어찌 이런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요. 세월호가 가라앉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다시 보는 듯 했습니다. 하루종일 큰소리로 울리는 징과 꽹과리 소리 속에서 사는 듯, 도저히 손에 잡히는 일이 없었지요. 12월 들어와 계속해서 듣는 무서운 소리들이 일상을 지배해버리고, 죽음의 소리가 끝없이 더해지는, 정말 이상한 나라, 흉몽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다가는 그 어떤 공포와 두려움의 소리에도 무감각해지는 것은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마음깊이 제주항공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했는데, 하루 아침에 마음이 바뀝니다. ‘갈 세월이면 어서가거라. 올해 모든 나쁜일 다 가지고 어서가거라’ 라는 말만 되뇌입니다.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는 일에 이토록 많은 연습이 필요한 해가 있을까 할 정도로 사람들의 느끼는 부정적 스트레스는 극도에 다다랗습니다. 매일 새벽 일어나자 마자 뉴스를 켰는데, 오늘은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을 정도, 이러다가 무감각이라는 병이 생기겠다 싶습니다.


2차 세계대전속에 살았던 작가 슈바이크의 마지막 작품 <마지막 수업> 중, <세느강의 낚시꾼>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도 그런 무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또 다른 슬픔이 전해옵니다. 제발 오늘과 내일 만이라도 통각이 죽어있지 않기를, 너무 육감에만 의존하지 않길 바랍니다. 세모 끝자락에 서서 날카롭게 지나가는 바람 한 점이라도 붙잡고 울고 싶은 마음을 가진 모든 이에게 제 마음도 한 줌 보태고 싶습니다.


향기(香氣)를 위하여 - 김소엽

향기는

요란을 피우지 않는다

다만

바람의 등을 타고

살며시 날아갈 뿐이다

향기가 지나는 곳마다

메마른 가슴에

꽃을 피우고 싶다

꽃의 영혼인

향기는

살아있는 동안

그 진액을 퍼 올리고

일생 사랑의 헌사(獻士)가 되어

그대가 외롭고 지쳐있을 때

형체도 없이 그대 곁에 다가와

그대를 위로하고

말없이 떠날 뿐이다

꽃의 소망은

향기로 남는 것뿐이다

내가 이렇게 덧없이 시들어가도

슬프지 않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으나

한 자락 향기로 떠돌다가

그대 가슴 서글퍼지는 황혼 녘에

어느 날 문득 그대 입가에 앳돤 미소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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