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봄날아침편지255

2024.12.29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by 박모니카

지극히 아름답고 기품있는 사람은 신성해질 수 있을까요. 하늘이 허락하는 눈송이가 되어 이 땅, 무수한 어둠을 하얗게 밝힐 수 있을까요. 어느 자리에서나 시 한수 정도를 뚝딱 낭송하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흰 눈송이 같이 보이던 시간. 동시에 한강작가의 글 한 구절도 생각났습니다.

-차갑고 적대적인 것, 연약하여 사라지는 것, 그러면서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 흰 눈-


시낭송예술원 선생님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마음소리로 남다른 송년자리를 마련하더군요. 사람이 간직한 고유의 태생적 문양에는 얼마나 많은 모습들이 있을지... 시를 읽고, 암기하고, 낭송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쌓여져 갔을 당신들의 숨어있던 아름다운 문양. 아마도 매번 놀랐을 것입니다. 그러니 관찰자로서만 지켜보는 저는 화들짝 놀라 절로 감동의 박수가 나올수 밖에요.


곽재구시인 <사평역에서> <겨울의 춤>, 이근배시인 <겨울행>, 박노해시인 <새해 새 아침에> <사랑은 끝이 없다네>, 양광모시인 <가장 넓은 길>, 정지용시인 <향수>, 김소엽시인 <향기를 위하여>, 천양희시인 <나를 살게하는 말들>을 낭송했던 회원들에게 아마도 시인들이 만복을 축원하는 인사 한마디쯤 보내지 않을까요...


올해 마지막 주일이네요. 각자의 믿음으로 두 손과 마음을 모아서 더 특별한 감사인사를 하는 날이겠네요. 생각해보면 기도하는 두 손을 바라보면 저절로 제 몸이 신성한 공간으로 바꿔지는 듯하니, 혹자의 말씀대로 몸이 성당이요, 절이요, 교회가 되는 성전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성전에 성심이 가득 담기도록 마음을 정갈하고 고요하게 미리 청소도 하고 싶네요. 박노해 시인의 <사랑은 끝이 없다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랑은 끝이 없다네 -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 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겨울 새벽길에

하얗게 쓰러진 나를 어루만지던

너의 눈물

너의 기도

너의 입맞춤

눈보라 얼음산을 함께 떨며 넘었던

뜨거운 그 숨결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오늘도 길 없는 길로 나를 밀어 가는데

어떻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시린 별로 타오른 우리의 사랑을

이제 너는 잊었다 해도

이제 너는 지워버렸다 해도

내 가슴에 그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그 얼굴 그 눈물의 너까지는

어찌 지금의 네 것이겠는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가만히 눈감으면

상처 난 내 가슴은 금세 따뜻해지고

지친 내 안에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은 소년의 까치걸음이 날 울리는데

이렇게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내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사랑은 끝이 없다네

다시 길 떠나는 이 걸음도

절망으로 밀어온 이 희망도

슬픔으로 길어 올린 이 투혼도

나이가 들고 눈물이 마르고

다시 내 앞에 죽음이 온다 해도

사랑은 끝이 없다네

월명공원 호수길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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