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 이생진 <등대지기의 마음>
여행할 때 일등공신을 꼽으라 한다면 아마도 날씨. 남편과의 만남 30년만에 처음으로 크루즈여행을 하는 제게 날씨가 은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어느날, 남편이 제안한 이 여행에서 학원수업을 포함한 여러 잡무로 시간을 덜어내기가 참 어려웠지요. 그런데 6년전 남편에게 찾아온 건강이상 후 해마다 병원신세를 지는 그의 모습과 가정살림을 책임지고 가는 제게 늘 미안해 하는 그의 맘이 제 맘에 걸리기 시작했어요. 더불어서 제 나이 전후한 지인들이 갑자기 건강으로 어려움을 접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 그까짓것. 얼마나 일하고 돈을 번다고...’하며 출발한 여행이었답니다. 7일간의 여행, 오길 참 잘했다 결론 맺습니다.
어제는 나가사끼현의 사세보시를 돌아다녔는데요, 구글맵과 기차로 길 찾아가기에 맛들린 저는 또 사세보의 유명관광지 하우스텐보스까지 기차여행했지요. 일본 최초의 개항지인 나가사끼현에 속한 이곳. 네덜란드풍의 건물형태가 유럽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쇼핑대신 서점에, 비싼 레스토랑 대신, 허름한 옛날가게에 들어가서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어제도 사세보와 나가사키 역사에 대한 대화 나누며 즐거웠네요.
스타벅스와 함께 있는 서점에 들어갔는데, 이왕이면 온김에 일본의 단시 ‘하이쿠 시집’하나를 사고 싶어서 시도한 일본 점원과의 대화. 근 1시간 가까이 그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하이쿠 대표시인 마쓰오바쇼와 료칸 시인들의 시집을 찾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젊은이 들이 한자어를 잘 모르는 것처럼, 그 젊은이도 한자어를 잘 몰랐고, 그럼에도 일본의 옛시인의 자취를 찾아달라는 저의 요청에 엄청난 인내와 친절을 보였답니다.
결국 그 서점에는 옛시인의 시집은 없고, 현대 하이쿠 시집이 있었는데, 저의 끈질긴 질문에 그 청년은 처음으로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만났답니다. 처음에는 어렵다는 표정도 있었지만, 봄(춘)자와 꽃(화)자 중심의 한자어가 혼용된 싯구를 읽어달라는 저를 보면서, 무려 10편 가까이 시를 읽었지요. 그 청년은 난생처음 자기들 고유시를 읽는 기회를 가졌다고 오히려 고마워하는 표정... 아마도 이런 시간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줄거다 라는 확신으로, 가르치기 좋아하는 저는 시집 한권 사서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어요.
이제는 군산으로 가서 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야겠지요. 올해 먹을 지식과 지혜의 양분을 많이 채웠으니 나눠야겠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풍경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싶군요. 아, 하나 더 말씀 드릴까요. 제 아침편지를 받는 분들이 계셔서, 제 얼굴과 이름을 어찌 아는지 아는체 하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더욱더 신뢰있고 꾸준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겠어요. ^^ 오늘은 이생진 시인의 <등대지기의 마음>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등대지기의 마음 - 이생진
어떤 사람은 한 번도 등대를 본 적이 없다며
등대를 봤으면 하데요
그건 외로움을 봤으면 하는 갈망이죠
사람은 희망만 가지고 살 수 없다며
더러는 허망도 있어야 사는 맛이 난다고 하데요
이 절벽에서 생산되는 절망도 봐야
삶의 맛을 안다며
안경을 벗고 날 쳐다보데요
그런 때는 어느 철학 교수보다 멋이 있었어요
그럼 철인도 이곳에 와서 연구를 하더냐고 물었더니
철인은 등대지기뿐이라고 하데요
그는 새벽부터 쓸쓸한 안개를
등대 렌즈에서 떼어낸 다음
라면을 끓여왔다
낮에 찾아왔을 때 당신은 어디 갔었느냐 했더니
갈 데가 어디 있겠느냐고 되묻데요
당신이 어딜 가면 등대가 싫어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냥 웃기만 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