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4 이문재 <오래된 기도>
일상으로의 복귀는 빠를수록 좋지요. 아무리 즐거웠던 여행일지라도 과거라는 한 점에 불과하니까요. 부산에서 오송을 거쳐 익산으로, 또 다시 군산으로... 피곤할텐데 언제 또 대중교통으로 집에까지 오냐고 말하던 후배가 뜻하지 않게 마중을 나왔더군요. 무지무지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학원생들과 조카들에게 줄 먹거리 선물 조금 샀는데, 덩치만 컸지, 별것도 아닌 것이 저희 부부의 두 손을 다 차지해버려서, 가방들고 대중교통 이용하러 걸어가기까지 못내 걱정했거든요.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합니다.
학원에 먼저 들러야 하는데, 그래도 집에 있는 복실이를 먼저 반기고, 빨래하고 집청소 한다고 남은 하루를 보냈네요. 여행때 썼던 일지와 비용 등도 확인하고, 과자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고자, 분담하여 나누고나니, 정말 피곤이 몰려왔답니다. 그래도 맘이 상쾌하고 가벼운 피곤이어서 두고두고 참 잘 다녀온 여행이라고 자화자찬했어요.
이번 여행은 분명 비행기 여행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무릎한번 못펴고 먼거리를 가야하는 비행기나 차량여행에 비해, 대형 선박, 크루즈는 제 나이에 참 편한 교통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여행기간 내내, 잠자리와 먹거리를 고민하지 않아서 좋았구요. 가장 큰 횡재는, 명사들과 함께 한 재미난 갖가지 강연과 공연이었답니다. 다양한 행사들을 통하여 듣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고, 또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과 인연도 맺고요. 저의 아침편지에서 전해지는 여행기를 읽고 많은 분들이 크루즈여행을 궁금해하시네요. 사실 어떤 일을 하든 매사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저의 성격도 양념이 되었겠지요.^^
일주일동안 학생들 수업을 못했는데, 바로 설날이 이어지니, 수업보충이 줄줄이 서 있네요. 학생들과 학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설날 바로 전까지 수업일정을 잡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인사 드려야 할 어른들 목록도 챙기고 책방에도 올라가서 안부도 전하고요. 어제의 저는 어느새 사라지고 글로만 남을뿐, 후다닥 오늘로 찾아와서 엄마와의 목욕동행으로 새벽을 엽니다. 모두 행복하세요. 며칠째 쉬었던 논어구절, 오늘은 약실지선(約失之鮮) - 단순한 삶을 살면 실수가 적다, 이인편23 –입니다.
이문재시인의 <오래된 기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