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20
산말랭이는 역시 바람이 가장 당돌한 손님이다. 아래지역에서는 유순했던 녀석들도 슬금슬금 위로 올라오면서 저항어린 모습으로 돌변한다. 오랜만에 서울친구들도 보고 독일어 시험도 보고 오겠다고 나선 딸의 옷차림에 봄이 완연했다. 춘삼월인데 서울엔 눈이 온단다. 옷 따뜻하게 입으라는 나의 충고에 ‘걱정마요’ 하며 손 흔들며 버스에 올랐다. 청춘이다.
책방을 연지 이 주일째다. 사실 책방 일을 보느라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매일 보고되는 코로나확진 덕분에 금주만 해도 나는 코를 4번이나 쑤셨다. 간호사마다 기술이 달라서인지 눈물 꽤나 쏙 빼는 이도 있고 부드럽게 하는 이도 있었다. 남편과 학원선생들도 확진, 학부모와 학생들의 확진이 연속이었다. 이제는 확진이 아닌 내가 이상할 정도로 코로나의 위세가 최고조에 이르는 듯하다. 이럴 바엔 이번 주에 모두 다 걸려서 아프고 쉬었다가 공부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오는 주말 아침, 손님이 있을까 싶어 책방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일상으로 자리잡은 책방지기인 내가 보이지 않게 할 일이 쌓였다. 오전에는 책방에서 오후에는 학원에서 양쪽 일을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내 몸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처음이야 무엇이든 힘들어. 세상일 힘들지 않은게 어딨어. 마음이란 그릇을 키워내면 되지. 내가 시작의 그릇을 키워서 언덕을 만들면 누군가가 조금은 덜 힘들게 시작할 수 있으니.’
밤새 내린 비로 창문에 그려져있던 소녀와 꽃그림들이 아스라이 빛을 잃었다. 그려줬던 안나샘이 슬퍼하겠다 싶어 오늘은 나오지 마시라고, 날도 차가우니 집에서 쉬시라고 전화했다. 커피 한잔을 내리고 노트북을 열어 싱어게인의 스타인 모 가수의 허스키한 노래를 틀어놓았다. 촉촉이 내리는 비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바람의 노고와 닮은 그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금주에는 어떤 책들이 팔렸을까.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을까를 써 놓은 노트를 보았다. 오후에 책방지기를 자처한 지인들의 소담스런 포스트잇 노트가 사랑스럽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각자의 시간에 있었던 일을 메모로 남기는 그들의 각기 다른 개성에 혼자 웃었다.
책 공급을 받기위해 계약한 모 총판사에서는 택배비가 많이 나가니까 이왕이면 주문을 모았다가 해달라고 했다. 급할 때는 지역의 큰 서점에서 일단 샀다. 내 책방을 찾아준 고객들에게 신속한 전달과 이곳까지 올라와 준 그들의 발걸음에 믿음을 주고 싶어서였다.
군산 신흥동 말랭이 마을에 문화예술인이 입주했다는 소문이 돌긴 도나 보다 싶게 방문객들이 한 팀 이상으로 찾는다. 책을 팔기보다는 이 마을을 설명하기에 시간을 더 쓴다.
‘말랭이가 무슨 뜻이예요?’ ‘지역의 방언으로 산봉우리라는 뜻이예요.’
‘여기 탈렌트 전원일기 김수미씨의 집이 어디예요?’ ‘저기 세모난지붕 바로 옆길이예요.’
‘다른 작가들은 무슨 일을 해요?’‘미술가 도예가 마술사 등 이 오셨어요.’
‘마을에 음식점이나 편의점 없어요? 너무 먹을것이 없네요.’‘아쉽지요? 제가 차 드릴께요.’
책 정리를 하다보니 바깥이 소란스럽다. 여전히 비가 오는데 20여명의 사람들이 문을 두드렸다. 워낙 작은 방에다 손님을 모시기가 어려워 바깥에서 마중했다. 지역의 모 대학관계자들이 이 마을의 소문을 듣고 왔단다. 이곳에 책방이 있는 자체로 아름다운 마을이 되겠다고 칭찬했다. 명함을 주고받으니 작가와 함께 기념사진 한 장 부탁한다고 말해서 쑥스럽게 응했다.
<봄날의 산책>에서 파는 주된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주저없이 시와 에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과연 내가 읽은 시는 몇 편이나 될까, 몇 명의 시인들을 알고 있을까. 어떤 시로 감명받아서 눈물 훔쳤을까. 어떤 시로 희망을 품어 타인과 공유했을까. 고백하건대 대답하자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기껏해야 한두 편으로 시를 좋아하고 시를 읽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나가자고 말할 수 있을까.
지인의 소개로 다음 주에 시인 이병률씨가 잠시 말랭이마을에 와서 차 한잔하고 싶다고 해서 책방으로 초대했다. 책방에 비치한 시인의 시집과 에세이를 다시 보았다. 지인들에게 잠시 책 구매 희망 시 신청해달라는 메시지를 띄우면서 시인과의 만남도 함께하자고 했다.
잠시 음악을 듣고 있자니 중년의 아줌마 둘이 창밖에서 소곤거렸다. 냉큼 일어나 들어오셔서 따뜻한 차 한잔 하시자고 권하니 역시 아줌마 모드로 들어와서 좋았다. 바로 앞 전경에 나의 모교인 군산여고를 보더니 나보다 선배임을 밝혀 더욱더 분위기가 편해졌다. 작은 책방들을 여러 곳 다녔는데, 이 정도면 작은 것이 아니라고 보기 좋다고 격려했다. 단지 주인장의 특색있는 이미지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브로치라도, 스카프라도 하나 하고 있으면 기억에 더 남을 거라는 예쁜 충고도 해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이제 며칠 되지 않았지만 책방주인인 나의 모습은 학원장인 모습은 크게 다르다. 책방은 주로 글로서, 학원은 말로서 사람과 소통한다. 책방은 주로 내 안의 내가, 학원은 내 밖의 내가 나온다. 책방은 수동적으로 나를 표현하고 학원은 능동적으로 나를 선전한다. 하루종일 일 만하고 어떻게 사냐고, 왜 그 나이에 일을 벌려서 사서 고생하냐는 첫째 동생의 걱정어린 문자에 답했다.
“걱정마라. 편하게 잘사는 것이 뭐 특별하다냐. 맘속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팔이라도 한번 내밀어봐야 하지 않냐. 그래야 그 팔이 아픈지 싫어하는지 알 것 아니냐. 이번 기회에 너도 한 달에 한 권씩 시집 보내주마. 꼭 읽어보고 단 한 줄이라도 네 맘에 심어지면 얼마나 좋냐.”
단체 톡을 보고 있던 다른 동생들이 이모티몬으로 한숨도 쉬고 하트도 보내줬다.
비가 그친 줄도 모르고 창밖을 보니 햇살이 가득하다. 얼마 전 선거 후유증으로 샀던 꽃기린도 살랑거리는 미소를 보낸다. 이제 우리 주인장이 진짜 책방지기로 변화하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