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아줌마와 함께한 호사

2020.7 동네책방탐방기 제 4화 - 생각을 담는집

by 박모니카

<시골책방입니다>를 만나기 전, 블로그에 울리는 글소리만으로 책방의 주인 모습을 생각했다. 올려주는 독후평을 읽을 때마다 왠지 감사의 댓글을 달고 싶고, 추천도서를 꼭 사서 읽어보면 보약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즘 동네책방이란 문구에 필이 꽂혀서 가보고 싶은 매력을 가진 책방을 찾아보는 여행기획, 소위 ‘길 위의 동네책방’에 남편이 동참했다. 시간이 된다면 꼭 한번 가봐야지 하던 곳이 바로 ‘생각을 담는 집’이었다.


‘생각을 담는집’은 열린 공간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책방 주인이나 독서가들의 고정된 생각을 담은집이 아니라 이 집을 찾는이, 보는이, 듣는이 누구든지 생각을 던지면 그 안에 담겨져서 순환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생각 그 자체만이 만이 아니라 생각을 장식해주는 느낌과 분위기 역시 자연의 아름다운 공기들과 함께 들고나는 공간이었다.


우리부부는 올해부터 새로운 여행테마를 정했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이 주거지가 서울로 결정되면서, 오며가며 다른 지역의 동네책방을 들러 소위 독서힐링을 하자는 의견을 모았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량이 많아 상식이 풍부한 남편을 둔 덕에, 나는 늘 공짜로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 어딜가나 그 고장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재를 들려주는 재미는 나에게 큰 덕이다.


“당신, 한달 후 용인의 어떤 책방으로 여행가게요. 클래식 무대도 있고, 1박하면서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인데 가보게요. 산속에 있다하니 더 가고 싶네. 그 집 주인장이 이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해. 시골에 책방을 내면서 소소한 일상의 얘기를 글로 썼네. 재밌어요.”


한 달이 훌쩍 지나, 지난 주말, 드디어 남편과 여행이 시작됐다.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으로.

한 달전 ‘생각을 담는집’의 블로그에 ‘수클래식과 함께하는 코로나 극복 음악회’라는 공지를 보고 곧장 1박의 북스테이를 신청했었다. <시골책방입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그 곳의 분위기가 가늠은 되지만, 우리 부부 역시 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일상에 매여 있었던 터라 무조건 여행지로 결정하니 남편 역시 순순히 동의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상경길은 언제나 가볍고 기쁨을 준다. 아마도 내 삶에 있어서 윗 지방으로의 상경길은 신기루의 꿈을 쫒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그 꿈은 이루지 못했어도, 서울에서 남편을 처음 만나고, 첫 직장도 가져 10여년을 살면서 섬 처녀가 도시여자로 살았었던 도회적 추억이 간혹 기쁨으로 생각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군산보다 더 작은 곳에서 사는 것이 편안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지만 젊은시절엔 서울에 있는 내가 좋았었다.


고속도로의 휴게소에서 마시는 그윽한 커피 한잔의 맛과 깔끔한 화장실문화는 세 시간이 넘는 멀고먼 여정을 언제나 가뿐하게 만들어준다. 네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에도 길 맹치는 아니어서 이곳저곳 잘도 찾아다녔다. 이제는 네비덕분에 세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 역시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생각을 담은집’에 도착하기 전, 저수지를 둘러싼 강태공들의 작은 산들을 보며 시원한 풍경도 즐겼다. 콘서트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정도 빨리 도착했다. 블로그에서 글로만 만났던 책방주인 임후남님. 생각보다 밝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행사준비에 매우 분주한 모습. 그래도 인사를 해야지 하며 말을 건네니 환하게 환대해 주었다. 숲속의 작은 동네 책방이라고 하기엔 4층짜리 건물이 낯설어보였다. 그러나 책방 주변 산책길을 걷고자 몇 발자국 떨어져서 다시 보니 부러움이 생겼다.


며칠 비가 온 덕에 괄괄하고 시원스레 내려오는 계곡물소리와 뒤 안의 병풍으로 자리 잡은 우람한 육송의 풍채가 딱딱한 책방 건물 외형을 감싸주고 있었다. 아, 이런 풍경 때문에 라도 이곳을 선택했겠구나 싶었다. 1박을 할 방으로 안내되어 가보니, 든든한 소나무 기둥으로 만든 천장을 중심으로 한옥풍 실내디자인이 정갈했다.


수클래식 멤버는 총5인, 테너 진세헌과 소프라노 임미령, 바리톤 안준원, 피아노 이고은, 그리고 바이롤린 박수경 님이라고 소개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 중의 하나가 바로 문화예술인들이라고 했다. 지역에서 음악을 하는 가까운 지인도 이 어려움을 토로한바가 있어서 심히 고개를 끄떡거렸다. 콘서트는 노래마다 테너의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클래식에 문외한이 나는 적잖이 괜찮은 청중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책방주인은 말했다. “이런 호사를 어디서 누리나요. 저 혼자라도 누리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이 먼 곳까지 찾아와서 함께 즐기니 정말 행복하죠.”

나와 남편 역시도 호사 중의 호사를 누리러 갔다. 책이 가져오는 호사도 좋은데, 음악과 바람과 물과 그리고 맑고도 오묘한 밤 하늘까지 누리는 겹겹호사를 누렸다.


첫 곡으로 바이올린연주 ‘아베마리아’를 시작으로 소프라노의 오페라쟌니스키키 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노래와 설명은 기대되는 콘서트의 서막이었다. 풋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나오는 ‘네순도르마Nessun dorma'의 우리말 해석이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기 보다는 ’아무도 잠들지마라‘가 더 적확하다는 테너의 세세한 설명과 노래는 가히 최고였다. 요즘 성악을 배우고 있는 “울 아들에게 극심한 다이어트를 요청하면 안 되겠구나, 저 테너의 울림통이 장난 아니야” 라고 남편에게 속삭이면서 멋진 테너의 노래를 만끽했다.


저녁을 먹고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남편은 용인에 대한 여러 얘기를 알려주었다. 그 중 이 곳 원삼면에 조선시대 문인이자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가묘가 있다, 그 신분을 재 평가 해야한다, 그의 동생이 여류시인 허난설원이다 등의 얘기를 했다. 귀는 쫑긋하고 들었지만 내 상식의 한계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응 응’하며 말을 끝냈다. 정말 용한 사람이다. 어딜가나 그 많은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건지. 이곳에 온다고 미리 찾아본건지, 혼자서 속으로만 물어봤다. 남편에게.


산책 후 들어가니, 심야책방에 숙박하는 몇몇 손님들이 책을 보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야 놓여있는 책들을 보면서 책방주인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시집 코너에 가서 지역 시인의 시집과 책방주인의 시집을 읽으니 갖고 싶어졌다. 작가의 싸인까지 받을 수 있는 횡재를 놓치지 않고, 시집‘ 내 몸에 길 하나 생긴 후’를 얻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이 생각나서 ‘아들과 클래식을 듣다’에도 작가의 친필을 부탁했다.


“나는 뭐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아요. 책방으로 지역공동체가 살아나고, 뭐 이런거 몰라요. 단지 내가 즐겁고 내가 행복한 것이 최고죠. 책 속에 있고 글을 쓰는 내가 좋아서 책방을 열었어요. 혼자 즐기다보니, 여럿이 즐기게 되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다른 행복을 느끼죠. 처음에 이 곳에 집을 보러 왔을 때, 저 뒤에 있는 소나무를 보고 바로 결정했죠. 내가 살 곳이 이곳이다 라고. 하루종일 사람 하나 오지 않을 때도 있지요. 그래도 바빠요. 둘러보면 내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요. 책과 책방, 나무와 꽃, 텃밭채소, 잔디 등등. 작가라는 이름도 있지만 지금 이순간은 단지 책방아줌마예요. 동네 책방에 책을 파는 책방아줌마”


짧았지만 즐거웠던 심야 토크를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홰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 시골이구나. 맞다. 시골책방입니다 라고 했지.“ 눈을 뜨니 더 멋진 관경이 바로 코 앞에 있었다.

나의 잠자리가 산 중턱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3층 높이에서 바라본 앞 산의 꼭지점 바로 밑자락 능선이 바로 방안의 중앙으로 뻗어있었다. 마치 내가 산중턱에서 자고 일어난 듯했다. 밤새 시원한 공기가 방안을 돌고 돌은 듯, 산의 정기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책방아줌마가 만든 깔끔한 샌드위치와 구수한 커피 한잔으로 아침밥을 먹고 여행지를 떠났다.

사람의 인연이 어느새 SNS를 통해서 만나는 세상, 글로서 만났어도 늘 얼굴 보며 만났던 것 같은 세상 속에서 귀한 인연을 만들었다.

“인생 선배들의 자취만 잘 보아도 분명 노후가 즐거울거네” 라고 말하자 “우리도 그렇게 될 걸세. 당신이 누군데. 잘 할거야.” 남편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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