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30 텃밭이야기 3화
10년 넘도록 수요일은 레지오활동에 참여했다. 코로나로 인해 처음으로 두달째 모임이 없다.
요가수업도 사라져서, 아침운동으로 은파호수를 걸을까 했다가 맘을 바꿨다.
주말에 비소식도 있고, 지금이 적정시기라 해서 감자를 심기로 결정했다.
텃밭농부 3년차이지만 여전히 미숙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여 남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당신, 일어나보세요. 오늘 감자 심는 날이야. 오늘 꼭 해야되."
"누구랑 만나기로 약속했어? 토요일에 하지."
"누구랑 약속한게 아니고 내가 나랑 약속했어. 꼭 오늘 해야될 것 같아."
뭘 하겠다고 정하면 거의 규칙맨처럼 움직이는 내 성격을 아는지라 남편은 따라 나섰다.
"대야 5일장에 가보세" 라며 남편이 차 방향을 돌렸다.
"하긴 오늘이 25이니까 대야장 열렸겠다."
도착하니 썰렁. 왠일인가 물어보니, 대야장은 날의 끝자리가 1일과 6일에만 열린다했다.
그래도 간 김에, 강원도산 씨감자와 고추대 묶을 실타래 등을 샀다.
일반적으로 감자심기는 2월부터 4월사이, 씨 감자의 싹을 다치지 않게 서너조각으로 잘라서 건조시킨후 심는단다. 그런데 오늘 산 씨감자는 이미 싹이 제법 자라서 그대로 심으면 된다고 농약상 사장님이 알려주었다.
오던 길에 가경이네 한테 멀칭용 비닐과 선물로 딸기쨈을 받았다.
갑자기 멀칭이 영어인가 궁금해서 검색하니 mulching.
'농작물 재배시 흙이 마르는 것 방지, 잡초생성방지를 목적으로 땅의 표면을 지푸라기나 비닐로 덮어주는 일'이라고 써있다. 난 무조건 비닐을 덮는 건줄 알았는데.
그러고보니 옆집 정아씨네는 지푸라기들이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왠지 내 밭보다 더 찰지고 기름져 수확량이 더 많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먼저, 다시 한번 고랑 옆 흙을 갈퀴로 올려 도톰하게 두럭을 만들었다.
남편은 갈퀴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어찌, 해마다 해도 기억을 못하는가. 어슷하게 흙을 길어올려야 힘도 안들고 두럭도 잘 만들어지지." 어쿠, 또 잔소리. 해마다 잘 기억하면 내가 농사꾼 마누라하지. 속으로만 대답했다.
두 두럭 만드는데 땀이 비오듯했다.
어제 급식봉사활동에서 흘린 땀이 일년치는 쏟은 듯 한데, 오늘것은 십년치 땀을 싸잡아 흘렸다.
이제, 멀칭할 시간. 비닐통 속에 철사를 이용해 손잡이를 만들어왔다.
남편은 앞에서 가장자리 흙을 파서 비닐위에 덮고, 나는 뒷걸음질 치면서 비닐을 끌고.
마치 밀레의 그림 '이삭줍는 사람' 속의 사람들 처럼 느껴졌다.
멀칭 후, 심을 씨감자를 세어보니, 한 두럭 이상이 나올 양이었다.
씨 감자 하나에 보통 5개 이상의 감자가 달린다하니 12000원 씨감자 한 박스는 몇 박스의 결실을 보여줄 것 인가.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미 감자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온 것처럼.
심기만 해서 되는 일이라면 당연지사겠지. 하하하
남편은 장대로 멀칭 위에 구멍을 내고, 나는 쪼그리고 앉아 씨감자를 깊이 묻기를 반복했다.
오금이 저리고, 땀은 여름날 찌질찌질 내리는 빗방울이 되어 내 얼굴은 이미 땀범벅이 되었다.
"아이고, 우리 각시 데리고 농사 짓기가 이렇게 힘드네. 천천히 하세. 숨도 쉬고."
"안돼~~~. 빨리 끝내야되. 끝장 내야되. 오늘 내 계획이야."
20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우린 극과 극의 평행선을 달렸다.
다 심었다. 심고보니, 두럭의 모양이 약간 삐뚤어졌네.
옆 밭 가경이네 멀칭된 두럭은 단정하니 반듯하네. 주인이 반듯해서 그런가.
나도 한 반듯 하단 소릴 듣는데. 그러면 어떤가. 감자들이 그 속에서 자리만 잘 잡아주면 되지.
아마도 내 감자들이 내 소리를 분명 들었을테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바로 기다림이야.
너의 얘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지. 길고긴 태양아래, 하지날 만나자"
바람이 불어왔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팀 로빈슨이 자유를 갈망하는 감옥내 죄수들에게 들려준 음악.
모짜르트의 곡 피가로의 결혼 중 '저녁산들바람 부드럽게'(편지의 이중창)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