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노년을 꿈꾸며
2020.8.29 매일쓰는 브런치1
- 요양보호사시험을 통해 바라본 노년의 단상-
3년 전 남편의 뇌졸중 발병을 계기로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인터넷 강의를 통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얻었다. 그 즈음 공교롭게도 거리를 지나가면 눈에 띄는 간판들의 공통분모가 보였다. 바로 ‘100세 노인유치원’ ‘노인주간보호센터’ ‘재가요양센터’ 등, 노인 복지관련 단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설립되었다.
나와는 무관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 3월, 한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사회복지사 있으니, 요양보호사 공부 같이하시게요. 형부도 아프고 친정엄마도 연로해지니, 언니도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일은 모르잖아요. 언제 어떤 일이 소용될지.” 선뜻 그 말에 동감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원경기가 감소세 이다보니, 마음이 늘 불안했었다. 뭔가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 와서 아픈 남편이 일터로 나갈 수도 없고. 아이 둘은 이제 대학생 되었는데, 앞으로 들어갈 돈은 만만찮은데. 지금부터라도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거리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요동을 쳤다. 그래서 2개월간의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현장실습과 자격시험을 기다렸다.
작년까지 학생들과 함께 요양병원 봉사활동을 5년 동안 했지만, 병원 내에 있는 분들의 직위나 자격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의사 선생님, 간호사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내의 상당수가 요양보호사 라는 자격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학생들이 노인들의 손과 발을 맛사지 할 때나, 어깨를 주무를 때도 옆에 서서 학생들도 격려하고, 노인들의 마음도 지지해주던 그분들이 요양보호사였다. 그 외에도 수 많은 형태의 역할을 하며, 병원과 가정, 노인복지관을 포함한 많은 노인관련장소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어린이 인구 감소세로 기초 교육의 산실이었던 유치원, 어린이집이 어느새 노인복지센터로 변경되어 알고 지낸 원장과 선생들이 이미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늘은 요양보호사 자격시험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상반기에 있을 시험이 몇 번 취소되고 오늘에야 시행하게 되어서 응시자들이 대거 몰렸다고 했다. 방역지침대로 사람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며, 마스크와 소독제 사용은 물론이고 혹여나 집단모임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조심해야 된다” 는 웅성거림이 가득 했다. 검사를 마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90분동안 80문항의 시험지를 받기 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의 반에 들어온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내 나이를 넘어 선 듯한 외모였고 의외로 남자 분들이 몇 명 있었다. 불현 듯 생각이 달리 들었다. ‘이 사람들이 요양보호사를 할 것인가, 요양보호를 받을 것인가‘ 갑자기 세상이 무거워 짐을 느꼈다. 요양보호를 하든, 받든 분명한 것은 우리 세상이 늙어가고 있구나.
며칠 전 뉴스에서 올 하반기 경로우대제도 개편 논의에 착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사회가 급속도로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현재 적용되는 노인 연령시작점과, 그에 따른 각종 혜택 등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었다고 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올해를 고령화사회, 2025년을 초고령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엄청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백세를 지향하는 삶의 궤도에 올라서길 희망하는 요즘, 우리 사회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노인 기준 연령을 65세로 시작한다. 많은 직장에서의 은퇴시기, 각 교통이용의 할인혜택, 공공시설의 무료이용 등의 경로우대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데 노인인구의 증가는 경로우대로 인한 비용에 많은 손실을 가져와서 경로에 대한 나이 기준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세우고 있다.
사실, 나는 사회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니니, 경로우대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늙어가는지 모른다. 더욱이 초고령 사회가 와서 우리의 삶의 질이 어떻게 하락 될지 더더욱 모를 수밖에 없다. 단지, 내가 이 현실에 슬픔과 무거움을 느끼는 것은 분리된 너와 나, 별거하는 젊음과 늙음, 불평등한 세대 간 빈부이다.
노인의 연령기준을 65세로 할 것이냐, 70세로 할 것이냐를 논하기에 앞서 사람이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사회는 사람의 존재와 가치에 그 중심을 두어야 한다. 65세가 되어야만 신청 할 수 있는 장기요양보험의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사람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 까지 나라와 사회는 따뜻한 언덕배기를 내어주어야 한다.
며칠전에도 급식센터에서 봉사를 하면서 내가 맡은 일 중의 하나는 체온계로 그곳에 온 모든 사람들의 체온을 채는 거였다. 거의 250명이 넘었고, 체온을 재는 나도, 머리를 대주는 그 사람들도 접촉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모두 힘들었다. 지난주 우리 지역에서도 코로나 확진자가 무려 3명이나 나온 터라 나름 긴장하는 분위기였다. 확진자 한사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더욱더 조심해야 했다. 밥 짓고 반찬 만드는 것 보다 더 힘든 경우였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점심 한 끼를 무료로 먹겠다고 매일 찾아오는 취약계층이라는 이 사람들도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의료혜택이 무엇인지 문화향유가 무엇인지 한번쯤은 혜택받고 즐기고 가야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코로나로 인해 공공기관 가는 곳 마다 넘치는 비대면 열 감지기, 이런 사람들도 구경하고 측정 받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봉사하는 사람들도 밥을 먹는 사람들도 대접받는 세상이라고 신이 나지 않겠는가.
요양보호사 시험은 나에게 어떤 잣대를 보여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단순히, 친정엄마와 남편의 발병을 대비해서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뭐 그리 힘든 일을 하려고 해. 내가 다시 아프면 다른 사람이 와서 도와주게 하면 되지. 그 일 아니래도 당신은 더 멋지게 살아야 할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남편, 하지만 그는 이미 나의 맘을 알고 있다. 노년을 준비하는 내가 어떤 부분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지를.
오늘 하루 참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