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갱년기 없었어? 요즘 사는 게 너무 답답하고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거려. 언니는 어떻게 감정 조절하는지 궁금하다. 언니는 에너자이저 잖아. " 어느 날 50대를 코앞에 둔 후배가 말했다. 큰 아이 3살, 작은 아이 1살 때 남편고향이 아닌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와 어느새 귀향 18년차다.
결혼 3년 만에 남편은 명예퇴직이란 이름을 얻었고, 나는 회사의 생리를 몰랐다. 모르는 게 약이 된 듯 곧 남편이 다른 직장을 얻는 줄 알았다. 단지 서울 아닌 고향에서 어디든지 일 할 곳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계셔서 편한 맘으로 지금의 군산을 선택했다.
시댁과의 거리는 약 30여분, 시댁과 친정이 가까이 있어서 좋았고, 내려오자마자 시댁의 포도과수원이 왠지 내 것인 것 같은 풍요로움과 낭만이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그해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소위 백수가 된 남편은 일년동안 효자노릇을 잘 했다. 다음해 시아버님이 발병하시자, 남편은 포도과수원 농사꾼으로 변모, 아버지의 아들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러니, 정작 자신의 일터를 찾아볼 여유가 없이 나이 40세를 맞이했다.
삶을 매우 능동적으로 살아온 나는 남편가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착한 고향에서 어린 내 아이들의 친구들을 맺어주었다. “제가 영어동화책 읽어주기를 조금 하는데요, 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세요. 비슷한 나이의 어린이들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그때 모여든 가족들이 고향 정착기에 큰 대들보가 되어주었고, 지금도 그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갱년기를 언급했던 후배는 나와 10살 차이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들은 내 아이보다 한 살 더 많았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교육을 위해서라면 이 세상 어디든지 갈 것 같았던 젊고 통통 튀었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후배는 나의 영향을 받아서 영어를 재 전공했고 지금도 기간제교사로 일하고 있다. 나의 전공을 따라온 진정한 인생의 후배가 된 것이다.
“나라고 어찌 갱년기가 없겠니. 매일이 갱년기이지. 단 표현 하는 방식이 다를뿐이야.”라고 대답했다. 폐경이후 갑자기 늘어난 체중에 무릎에 통증이 오고, 스스로 창피를 느낄 만큼 체형이 변화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지역에서 봉사활동가로서, 학원장으로서 보여지는 이미지는 늘 나를 긴장시킨다. 감정의 파동을 스스로 가두어놓아 생기는 스트레스 역시 늘 존재한다.
이런 내게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독서와 글쓰기이다. 독서 후 소소하게 나의 생각을 쓰고 저장하는 블로그 운영도 내겐 큰 힘이 되었다. 후배의 고민에 내가 제안을 했다. "우리 매일 시 한수씩 필사해볼까? 영미시도 좋고 맘 편하게 한글 시도 좋도. 나이 들수록 중고등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뭔가 싱싱하고 풋풋했던 소녀감성이 떠오르잖아. 늘 푸른 바다색 같은 호르몬이 나올 것 같지 않니?"
그렇게 시작한 '매일 쓰는 시 필사'가 오늘로서 만 석 달이 되었다. 오늘 아침 필사 시 91호를 쓰고 운영밴드 ‘시선(詩線)’에 올렸다. 이 팀에는 원숙한 나이, 40대말 에서 50대초의 후배들 4인이 동참했다. 우리 5인방의 필사 시를 모두 합하면 최소 400호를 넘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새벽기상이 저절로 오고 이 시간의 고요 속에 만나는 '시인과 시'는 하루를 건강하게 하는 최애음식이 되었다. 후배들 역시 마음의 모양이 크게 변했다. 처음엔 “시는 너무 어려워. 시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야. 누구 시를 쓰지?” 라고 했었다.
매일 필사에서 나온 감정이 이입되었는지 이제는 말한다. “나도 언젠가는 내 시를 써 보고 싶다.”라고. 후배들은 매일 시인이 된다. 다른 이의 필사에 댓글로서 표현하는 감성을 읽노라면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미 그들은 시인이 되어 있었다. 멋진 후배들 덕분에 나도 역시 매일 긍정의 호르몬을 저축한다.
며칠 전 새벽에는 쏟아지는 소나기를 보며 '안도현 시인의 '빗소리'를 읽으며 필사했다.
저녁 먹기 직전인데 마당이 왁자지껄하다
문 열어보니 빗줄기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와서 진을 치고 있다
둥근 투구를 쓴 군사들의 발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다
부엌에서 밥 끓는 냄새가 툇마루로 기어올라온다
왜 빗소리는 와서 저녁을 이리도 걸게 한상 차렸는가
나는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마당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둔다
그리고 낮에 본 무릎 꺾인 어린 방아깨비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나도 역시 시인처럼 빗소리가 섭섭하지 않게 창가 쪽으로 오래 귀를 열어두었다.
어제는 갑자기 친정 아빠가 생각나서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란 시를 읽고 밴드에 올리니 후배들의 찐 한 감정의 눈물이 들려왔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 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인연들, 5인방의 필사 시들이 언젠가 5인방의 이름을 걸고 걸어나오는 그런 행운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