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제 중 무려 4명이 한여름 가운데와 언저리에서 태어났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 있어서 삼복더위를 살짝 벗어나서 생일을 맞았지만 예년 같으면 엄마의 출산스토리에는 복더위가 정점을 찍었다.
지난 일요일, 집안의 장남이자 내 첫 번째 남동생의 생일 중심으로 나와 둘째 동생의 생일까지 ‘한꺼번에 치룹시다’ 라는 의견이 나왔다. 각자의 아들, 딸과 함께 다 모이자면, 명절에 모이는 것만큼의 자리 불림이 예상되었다.
“5시 반까지 다 모이자. 코로나로 바깥이 위험하다고 엄마가 아침부터 오리 백숙하고 녹두가루 넣고 호박부침개 하신단다.” 라고 가족 단톡에 올렸다. 뒤이어 나온 반응들이 뜨거웠다.
“아니, 이 더위에 엄마는 무슨 밥을 준비하신데. 간단히 식당가서 먹지.”
“요즘에 사회적 거리 지침도 있고 하니, 집에서 배달시켜먹자. 중국음식도 좋고.”
“장남 생일은 엄마가 고생 한 날인데 엄마가 음식을 만든다고? 대한민국은 역시 장남, 크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날도 더운데 오리 백숙하지 말고 주문시키시게요. 애들도 그렇게 하자고 하구요. 엄마 힘들어요.”
“야야, 이 오리도 산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것이니, 어차피 음식해도 나 혼자 못 먹는다. 이번 참에 한약재 넣고 푹 끓이면 몸보신 될 만한 국물이 나온다. 김서방이랑, 핑계김에 나도 한잔 쭉 마시면 좋겄다.”
약속시간에 도착하니 집안에서 오리와 한약재 향기 쫘악 퍼져있었다. 손녀딸과 함께 만들었다는 호박 부침개는 왠 명절음식 만큼의 양으로 소쿠리에 펼쳐있었다. 가자마자, 부침개 한 쪽 귀퉁이를 쭉 찢어서 입에 가져가니, “너는 음식 하나를 먹어도 정갈하게 먹어야지, 자식 있는 자리에서 본을 보여야된다.”라고 또 잔소리를 들었다. “예썰 맘, 오케이 오케이 마미”
형제들이 속속 들어왔다. 오늘따라 생일인 첫째동생의 뒷 태가 영락없이 아버지였다.
“어이, 동상, 생일이라고 파마 했는가? 머리가 달라졌네.”
“누님, 이 나이에 무슨 파마요. 맨날 대머리 하고 다니니, 머리 스타일을 바꿔볼까하고 기르는 중인데, 누가 엄마 자손 아니랄까바 외할머니, 왕꼽슬 머리가 나오네요. 유전인자가 이렇게 무섭다니까요.”
듣고보니 정말 신기했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염색 한번 한 적이 없을 만큼 진한 검정 머리칼에, 대한민국 동네 아줌마의 표상인 곱슬파마가 늘 머리를 장식했었다. 말 그대로 본태성 천연파마머리를 평생 지니고 계셨다. 그래서인지, 우리 오형제들도 약간씩 반곱슬의 머리칼이 섞여 있었고, 어떤 형제는 스트레이트 머리칼을 부러워하곤 했다.
밥상위에 가득 차려진 엄마표 생일상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얘기가 나왔다. 50이 넘은 자식들에게 아직도 열정적으로 잔소리하시는 엄마를 두고, 예전 같으면 ‘또 잔소리’라고 했을 것을 이제는 ‘맞네, 맞아요’라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새 엄마의 말과 마음에 동화되어, 이제는 우리 자식들에게 엄마처럼 잔소리 하는 대물림이 생겼다. 3대가 한꺼번에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으니, 잔소리가 애정어린 사랑표현으로 바꿔짐을 알았다.
얘기 듣던 남편이 갑자기 한 마디를 했다.
“자네 누이가 모국어를 엄청 잘 하는 것을 아는가? 어찌 나이 들수록 진한 모국어로 나를 깜짝 깜짝 놀래킨다네.” 순간 나도 무슨 말인가 했다.
남동생 왈 “아니, 누나가 원래 말도 잘하고 글도 잘쓰잖아요. 모국어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은데, 매형.”
남편은 뒤 이어서 말했다.
“잘 들어봐. 그 모국어가 아니라네. 어느 날 누나가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데, 나는 장모님이 서 계시는 줄 알았네. 통통한 뒷 태도 닮아 가지만, 장모님이 일 하실 때 내는 소리 ‘쉬쉬쉬’ 소리를 내고 있어서 깜짝 놀랐네.”
“뭐라고요, 내가?? 언제? 정말 그렇다면 정신 차려야 겠네.”
섬 바람 맞으며 삶의 시련을 잊고자 입에 달고 살았던 엄마의 ‘쉬쉬쉬’ 소리가 유전 적으로 내 몸에 들어와 있었단 말인가.
남편의 얘기를 듣던 식구들은
“어구, 이제 우리 누나도 늙어가네. 너희들 오리 백숙 그만 먹고 그 진한 국물이랑 모두 네 엄마한테 드려라. 할머니처럼 고생도 안 해 본 네 엄마가 왜 그런 소리를 낸다냐.”라며 우리 애들에게 한 마디씩 했다.
모국어. 내 엄마의 말과 소리.
“당신 그 표현 참 좋네. 그것을 얘기로 남겨 놓아야겠어. 엄마가 안 계셔도 내가 무의식중에 이 소리를 낸다면 우리들이 엄마를 잊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얼마나 좋은 추억이 생기는 거야.”
이런 나의 대응에 엄마는 기분이 밝아지셨다. 그러더니, 또 다시 당신 혼자 큰 아들 날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긴긴 출산 스토리로 우리를 애 닳게 하셨다. 동물도 새끼를 날 때는 주인이 있다는데, 엄마는 오형제 중 무려 3명이나 당신 혼자서 애를 낳았다.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복중 더위에 얼마나 고생 하셨을까를 생각하면 난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아들들은 몰라도 애기를 낳아 본 딸들은 엄마의 그 심정을 알고도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