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24
-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 (중략) -
<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입영열차지만 나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인 군대를 가는 청년들의 맘에 눈물을 맺게하는 노래이지요. 어디 아들만 눈물을 흘리던가요. 애지중지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에도 더 없는 눈물방울이 흐르겠지요. 생전 처음으로 논산 입영심사대 현장에 다녀왔네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기간제 교사로 6개월의 근무를 마친 아들이 오늘 입소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로 일찍 집 떠난 자식이어서 막상 입영을 한다 했어도 무덤덤했지요. 대부분의 청년들이 스물 한두 살에 군 입대를 결정하는데 나이 많은 사회 선배가 되어 군을 선택하는 것이 다소 마음에 걸리긴 했지요.
며칠 전부터 친척들이 안부를 물어오고, 갖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제 할 일만 묵묵히 하다 들어갈 아들에게 딱히 말해 줄 것, 준비해 줄 것도 없었답니다. 요즘은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친절을 베푸는 글들이 올라와 있어서 더욱 느긋했지요.
20대 딸과 아들을 두고 있는 저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가 보여주는 양극단의 젠더갈등을 늘 걱정스럽게 바라봅니다. 특히 지난 대선 때부터 두드러진 20대 남성들의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사고의 증가를 매스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많이 봤지요. 이런 사회적 편향성에 대해 20대인 아들 딸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극히 조심스럽습니다.
의무 징병제 군인체계에 대한 생각에도 확실히 요즘 세대는 달랐습니다. 엄마로서 어떻게 여동생을 군대를 보낼 수 있느냐 물으면 ‘그건 마땅히 본인의 자유의지다’ 라고 답하던 아들이 야속하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여성은 사회적 약자의 계층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음을 공감해주어서 고마웠던 기억이 있네요.
이렇게 특별한 사고와 행동을 요청받는 ‘군입대’는 모든 개인과 가정에게도 유별난 감정을 갖게 합니다. 약 한달여 전부터 소위 ‘군대가는 아들’에게 마음의 포용이 드리워지고, 일상의 게으름에 한 발자국 먼저 용서의 혜량이 베풀어집니다. 저도 역시 그랬답니다.
입대 하루 전, 아들은 가족에게 맛있는 점심과 티 타임을 제시했어요. 그리고 캐리어를 요청하더니, 이런저런 상비품을 챙겨넣고 미용실로 가겠다고 하더군요. 노래 가사처럼 내 자식의 어색해진 짧은 머리가 어떤 모양일까 궁금했답니다. 잠시 후 나타난 아들의 머리. 정말 가슴 한쪽이 살짝 꿈틀거릴 정도로 어색하더군요. 일부러 둥근 머리를 만지며 웃었습니다.
입영날, 책방손님들에게 보내는 아침편지 소재로 군대가는 아들 얘기를 살짝 했더니 많은 분들이 격려의 답장을 보내왔더군요. 아들을 군대 보냈던 경험이 있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혹시나 눈물 많이 쏟지 마세요. 다 잘 훈련받고 돌아옵니다. 걱정마세요.’ 라구요.
엄마인 저보다 더 감동적으로 아들에게 격려멘트를 보내준 지인들이 고마웠습니다.
아들 셋을 둔 친정엄마는 옛날을 떠올리며, 아들들의 입대시절을 회상했구요, 그 중 둘째 남동생은 전주에서 군산간 50여 킬로 행진을 하면서 혹독한 여름날의 상처를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절 군대문화가 지금도 여전한 줄 아시고, 손자인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비추며 훈련 잘 받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답니다.
‘요즘 군대도 군대냐?‘ 라고 말하면 ’가보질 않았으면 말을 하덜 말어‘라고 응대하는 속내에는 타인의 맘을 배려하지 않는 서운함이 가득하지요. 또 뉴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예상치못한 많은 사고들로 인해 정작 입영을 앞둔 청년들의 마음은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입영하고 군 의무를 마치는 순간까지 최대한 마음의 예를 갖추는 것이 마땅합니다.
논산 입영훈련소를 1km정도 앞두고 차량이 줄을 지어 지체되었습니다. 막판까지도 준비물을 확인하던 차에 손목시계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말에 동행한 삼촌왈, ’국방부 시계는 안 봐도 돌아가니까 아예 시계를 안보는 것도 괜찮아‘라고 했습니다. 길거리에는 입영하는 청년들을 위해 준비물을 파는 상점들이 가득하고 호객을 하는 사람도 있었구요.
훈련소 내에 주차를 하고 이정표를 따라 가보니, 이미 수 많은 가족들이 와 있었어요. 청년들은 각 지역별로 운동장에서 모둠을 만들어 서 있었고, 가족들은 경기장 관람석 내에 줄줄이 앉아서 자식들, 형제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바빴습니다. 저도 역시 아들 뒤를 따라가며 계속해서 셔터 소리를 내고, 아들의 모습 한번 담으려고 불러보고를 연신 해댔습니다.
정각 2시, 연병장에 모인 청년들을 구령하는 현직 군인들의 소리에 숨을 죽이고 애국가 제창 등 일련의 의례행사를 했습니다. 뒤늦게 온 어떤 청년은 같이 온 아버지와 함께 달리기를 하고, 엄마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추는 등 다양한 모습이 눈이 보였지요.
어느 대열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아들을 찾느라 까치발로 종종거리며 이리저리 계단을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비단 저만의 모습이 아니었지요.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하늘에선 소나기가 쏟아지고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군대 왔네‘가 실감났지요. 행사 30여분을 쫄딱 그 비를 다 맞고 서 있으니, 참말로 그때서야 눈물이 나더군요. 안경 쓴 아들의 불편한 심사를 고도근시 안경잽이인 제가 어찌 모를까요.
’행사가 끝났으니, 부모 친척분들은 빨리 돌아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군인들의 목소리와 운동장을 돌아 경기장 의자로 일렬정대하며 앉는 청년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저도 빗속을 걸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 나라가 통일될까. 정말 통일은 될까. 초등학생인 내 조카들은 의무군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등 갖가지 사념을 달고 물러 나왔답니다.
뉴스를 열면 매일 혼잡한 이슈가 가득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일본 오염수 해양방류‘소식이 또 맘을 멍울을 달아주었습니다. 저절로 욕이 나오고, 다음번에 꼭 바꿔야지 하는 푸념이 차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제 어부의 딸인 저와 가족들, 그리고 수많은 국민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를 고민하면서 하루를 접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