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5.5 사랑하는 시숙부부와 고군산군도를 여행하다
“아주버님, 우리도 어린이날 놀러갈까요. 형님이랑 군산으로 건너오시면 제가 좋은 곳 모시고 갈께요. 아무리 바빠도 오늘은 쉬면서 우리 두 부부들 눈에 풍경도 담고 담소도 나누시게요.두 형제들 사진도 잘 찍어서 애들한테도 보여주구요. 우리가 자주 만나야 훗날 사촌형제들이 할말이 많아지는 거예요. 너무 일만 하지 마시구요. 꼭 건너오세요.”
이번 주말에는 시부모님의 묘를 이장하는 날이다. 몇 년 전부터 시숙은 형제들의 족보도 다시 손보고, 부모님의 묘 이장에 대한 생각을 밝혀왔다. 우리 부부는 무조건 형이 내리는 결정에 동의하고 따르겠다고 했다. 큰일을 앞두고 시숙의 맘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짧은 여행을 기획했다.
‘군산의 고군산군도 아름다운 풍경과 벗삼아’
고군산군도는 이제는 유명관광지가 되어서 가까이 살아도 휴일만 되면 교통혼잡을 감수해야 한다. 배를 타고 섬을 들락거려야 운치가 있는 거라고 우겼던 나도 이제는 차로 편하게 다니면서 각 섬들을 유랑하는 재미를 느낀다. 비응도 야미도 신시도를 거쳐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까지 가다보면 섬들이 안고 있는 전설은 날을 넘겨도 다 듣지 못할만큼 재밌다.
어부였던 친정아빠가 보고 싶을 때, 새들이 보고 싶을 때, 바닷바람을 맞고 싶을 때 단골 방문지가 고군산군도다. 육지로 연결된 장자도까지의 추억을 쌓았지만 가장 끝에 있는 관리도 와 방축도는 남편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명색이 새만금생태조사단장인 남편은 얼마 전 동료들과 탐사조사를 갔어야 하는데 바쁜 나로 인해 차량이 없어서 기회를 놓쳤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내 일정표에 오늘의 여행을 기록했다. 또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가고 시숙과 남편의 모습도 달라지니 함께 가서 두 형제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20여년 전 처음 만난 시댁식구들. 대학동창생 며느리라고 치켜세워준 시아버님, 배려의 화신 시어머님, 포근한 선배같은 시숙, 그리고 시동생 다섯모두 언제나 나를 존중했다. 시댁가족들의 품격있는 언어와 행동은 늘 나를 감동시켰고, 그중 시숙은 늘 모범이었다.
결혼 3년만에 시어머니의 별세(당시 예순넷)는 시댁의 가족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시어머니의 정서를 가장 많이 닮은 남편의 슬픔은 컸다. 남편은 어머님 발병 후 1년동안 무직으로 병간호를 했고 바로 이은 시아버님의 발병에 따른 간호는 시숙부부가 했다. 효자들이었다.
남편보다 두 살 많은 형인 시숙이 얼마 전 심장질환으로 병원신세를 졌는데 내 동생 나이인 큰동서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서 수다도 떨고 여행도 자주 다니자고 했다. 바쁜 내 일정만 맞추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언니같은 동서(나를 지칭)가 있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
남편과 시숙 모두 비슷한 질환으로 아프고나니 가족력의 한계에 늘 걱정이 앞선다. 특히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은 친정가족에 대해 내가 장녀로서 느끼는 일종의 책무의식과 맞닿아 있어서 절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 시숙이 주말 부모의 이장을 앞두고 맘이 무거울 것 같았다.
아침일찍부터 서둘러서 도착한 장자도 선착장엔 여행객들이 많았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표가 있는데, 휴일이라서 남아 있는 표가 단, 2장. 시숙부부는 매일 일만하는 나를 생각해서 장자도에서 기다리겠다고 우리부부를 배에 승선시켰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남편과 나는 다시 내렸다. 장자도와 대장도를 즐겨보는 쪽으로 여행코스를 선회했다.
고군산군도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장자도리에 가면 먼저 대장봉(140m)에 오르는 것이 우선이다. 그곳에 가야 소위 관광사진에 나오는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내 말을 언제나 웃음으로 따라주는 두 형제의 발걸음을 배경으로 앞장서서 올랐다. 운동화도 없이 얇은 구두를 신고 걷는 나를 보고 ‘우리 제수씨 그러다 큰일 나요’라고 말해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다고 잘 따라오시라고 했다.
대장봉을 오르는 두 갈래 길에서 30여분 더 돌면 남들이 잘 모르는 해안선을 낀 둘레길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오늘 가고자 했던 관리도와 방축도의 모습도 바로 볼 수 있었다. 절반이나 돌았을까, 시숙이 더 가기 힘들다고 좀 쉬었다 내려가겠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칩거가 늘어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고, 근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내가 봐도 그랬다.
산길을 오르는 내내 두 형제의 뒷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는데 자손들에게 전할 목적이었다. 이제는 시아버님의 모습이 두 사람의 등어리에 가득했다. 시숙과 남편에게 느끼는 연민으로 시댁에서의 지난날들을 한줌두줌 주우며 따라갔다. 힘들다고 멈춘 시숙과 남편이 함께 바다를 보고 서 있는 형제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일 단계를 마쳤다.
시숙은 내려가고 남편과 나는 다시 등산길에 올랐다. 남편의 해박한 지식으로 갖가지 꽃이름, 나무이름, 대장봉의 할매바위전설, 장자어화 등의 얘기를 들었다. 정상에 올라서니 짙푸른 바다를 이고 있는 하늘 역시 푸른 빛이 가득하여 누가 누구를 닮아서 푸른지 비견할 수 없었다.
“이곳에 여러번 왔어도 우리 각시랑 대장봉정상에 온 것이 처음이네. 이렇게 좀 서보소. 이쁘게 찍어보게.”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뭐하러 찍어요. 풍경이나 찍어서 애들에게 보내줘요.”
그 와중에 오지랖 넓은 남편은 다른 이들의 사진 찍어주며, 사진 잘 찍는 법을 설명하느라 바쁘고 나는 섬의 더 이쁜 풍경과 남편의 모습을 담느라 온 정성을 쏟았다.
하산후에 기다리는 시숙부부와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섬을 한바퀴 돌며 관광을 시켜주는 배를 탔다. 높은 곳을 싫어해서 아파트역시 5층 이상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승선을 허락하니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섬 출신이라서 그런지 역시 바다는 내 품을 포근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배를 타고 앞섬 뒷섬 옆섬 곳곳이 돌며 곡예를 부리는 선장의 묘기에 환호를 외치니 ‘어린이날인 오늘의 주인공이 여기있었네’ 라며 두 형제가 즐거워했다.
“형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고 언제나 속 깊은 당신이 있어서 고맙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내가 큰딸이니까 장남의 무게를 누구보다도 잘 알지. 동생들이 제아무리 잘나도 형만한 아우 없지. 그래도 당신이 둘째로 창과 방패역할을 잘 하는거예요. 당신이 형을 존경하니 동생들이 또 당신을 존경하잖아. 형 부부의 위신이 깍이지 않도록 우리가 중간역할 잘해야지.”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뒷모습에 눈길이 많이 간다. 아마도 책방을 여는 순간부터 더 그런듯하다. 바람 부는 날 이 말랭이까지 올라왔다가 책방을 기웃거리고 뒤돌아 가는 사람의 뒷모습에 혹여 말못할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닐까. 해맑게 웃으며 이런저런 걸 묻는 이의 마음속에 어떤 꿈이 숨어있을까. 책방 앞 의자에 앉아 저 멀리 월명산의 신록을 바라보는 노년의 뒷모습에 드리워진 회색빛 그리움의 망토를 같이 들어줄까. 나의 오지랖도 정말이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모쪼록 남편과 시숙을 비롯한 시댁 형제들의 건강과 우애를 기도하며 오늘을 내일 속에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