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98

2023.11.8 유창섭 <입동에 피는 꽃>

by 박모니카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들의 옷차림에서 이미 겨울손님을 맞았습니다. "어? 그렇게 추워? 한겨울 옷을 입었네. 어서 들어와..."라고 말하고 보니 아직도 학원 벽엔 선풍기가 달려있더군요. 수업에 들어가서 시험기간을 확인하면서 보니 ‘입동’이란 글자가 보이더군요. 무슨 뜻인줄 아는지 물었더니, 한 학생이 한자어를 알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 “시간이 너무 빨라요. 이제 한달밖에 안 남았어요.” 그래서 저도 말했죠. “어른들 말로는 가는 세월 야속하다 라고 하지.. 그래도 어디냐. 아직도 한 달 이상 남았으니. 일단 기말고사 시험준비 잘하면 또 다른 멋진 일이 있을거야. 홧팅!” 이라구요. 오늘이 입동(立冬)이군요. 오지 말라해도 오는 세월속에 새 옷 입고 찾아온 절기. 이른 새벽 창밖 제 애마의 유리창에 내려앉은 서리도 몇 겹의 옷을 입고 앉아 있을 것 같은 스산함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일단 손님이 오면 환대해야지요. 함께 들어서서 그와 더불어 한 몸이 된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요. 환대하면 떠오르는 ‘맛있는 밥을 짓는 문우’가 생각나네요. 만날 때마다 직접 밥을 해주는 분, 30년 밥장사를 아름다운 보석방으로 환골탈태시킨 분. 어제도 이분이 주신 집밥으로 점심을 먹은 후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배부른 행복이 제 곁을 지켜주었죠. 추워질수록 그리워지는 것은 ‘밥’이라고 하면 너무 순진하죠?^^ 어젯밤 법정 스님의 말씀엔 ‘그리움이 가득해지면 편지를 쓴다’ 하셨는데요... 저는 아침 편지도 쓰고 밥도 맛나게 먹는 입동을 맞이하렵니다. 오늘은 유창섭 시인의 <입동에 피는 꽃>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입동에 피는 꽃 – 유창섭

아득히 먼 발자국 소리

소란스럽던 낙엽 위로

하늘 가득한 은하수 쏟아져 내려 옵니다.

밀폐된 고요와 어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모습

별 하나씩 머리에 꽂고

빨갛게 익은 가슴으로 서성이는 시간들이

서로 부딪치고 있습니다

저 어둠이야 시간이 지나면 걷히겠지만

마음 가득 고여있는 기다림이거나

풀릴 길 없는 그리움이거나

끝내 감출 수 밖에 없는

텅 빈 마음에는

겨울만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세월 지나고

뒤늦게 돌아온 사람의 다 식은 가슴에 안겨

토라진 어느 누구의 마음이

밤 내내 떠돌다가

차가운 기억 감싸 안고 내려와

하얗게 서리꽃 피우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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