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으로 쓴다는 것

- 결론을 유예하며 사유하기

by AI적허용

논리적으로 쓴다는 것

- 결론을 유예하며 사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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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논리적인 글’을 배워왔을까


우리는 꽤 오랫동안 ‘논리적인 글쓰기’를 배워왔습니다. 학교에서는 논술을 배웠고, 사회에 나와서는 보고서와 기획서를 배웠습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배운 셈이지만, 가끔은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이 논리라는 형식은 정말로 사고를 키우기 위해 존재했던 걸까요.


조금 냉정하게 보면, 논술은 사고의 깊이를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사고를 빠르게 정리하고 처리하기 위한 형식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으로, 정해진 구조를 따라 결론까지 도달하는 능력. 이것은 사유의 상한을 실험하는 일이라기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적정한 사고력을 확인하는 장치에 가까웠습니다.


이 지점에서 수학이 떠오릅니다. 수학 역시 본래는 증명과 이해의 학문이었지만, 교육과 평가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공식과 계산 중심으로 축소되었습니다. 왜 이 공식이 성립하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것보다, 주어진 문제에 빠르게 대입해 정답을 출력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논술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유의 과정은 구조로 환원되었고, 그 구조는 다시 채점 가능한 형식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배워온 ‘논리적인 글쓰기’는 사고를 자유롭게 확장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사고를 관리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오랫동안 꽤 잘 작동해 왔습니다. 적어도 AI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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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술은 사유의 상한선이 아니라, 평균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우리는 흔히 결론이 빠른 글을 논리적이라고 느낍니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본론에서 근거를 제시한 뒤, 결론에서 명확한 답을 내놓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 안심을 줍니다.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고, 구멍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빠른 결론이 항상 더 안전한 사고를 의미하는지는 조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을 빨리 내려야 하는 구조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전제가 슬그머니 넘어가기도 하고, 불편한 모순은 자연스럽게 생략되기도 합니다. 사고가 얕아서라기보다, 닫아야 할 시간이 너무 이르기 때문입니다.


논술이 만들어온 사고력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뛰어난 사유를 끌어내기보다는,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고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 다시 말해 논술은 사유의 상한선을 확장하는 기술이라기보다, 사고의 평균치를 끌어올리는 기술에 가까웠습니다.


이 점에서 논술은 나쁜 도구가 아닙니다. 생각을 문장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훈련, 전제와 결론의 관계를 인식하는 훈련, 최소한의 자기모순을 점검하는 훈련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만 문제는 이 형식이 오랫동안 사고의 도착점처럼 오해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논술은 충분조건이었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AI는 이 논술 형식을 너무 쉽게 만들어냅니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논술로 도달할 수 있는 사고의 영역 너머에는 과연 아무것도 없는 걸까요. 아마 이 질문에서부터, 논술 이후의 사유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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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I 이후, 논술은 너무 쉽게 만들어진다


AI 이후에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 중 하나는, 논술형 글쓰기가 놀라울 정도로 쉬워졌다는 점입니다. 전제를 던지고, 그 전제를 뒷받침하는 논리를 배열한 뒤, 결론까지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작업은 이제 몇 초 만에도 가능합니다. 심지어 A라는 명제로부터 다소 억지스러운 D라는 결론을 요구하더라도, AI는 그 사이의 과정을 매우 그럴듯하게 구성해 냅니다.


문제는 이 글이 그럴듯하다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전개는 매끄럽고, 문장은 논리적이며, 형식적으로는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글이 정말로 깊이 생각한 결과물인지는, 이제 이전보다 훨씬 판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쓰는 능력의 난이도는 급격히 낮아졌지만, 읽고 구분하는 능력의 난이도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하나의 분리를 만들어냅니다. ‘잘 쓴 글’과 ‘잘 생각한 글’이 더 이상 자연스럽게 겹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문장이 정제되어 있고 논리 전개가 안정적이면, 어느 정도 사고의 깊이도 함께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형식적으로 완성된 글이 사고의 깊이를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자주 이런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은 맞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어딘가 비어 있다는 느낌. 결론은 분명한데, 그 결론이 어떤 조건 위에 서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 상태. 논술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신뢰도는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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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래서 남는 것은, 논술 이후의 비정형 논리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논술이 아닌 다른 방식의 사유는 없는 걸까요. 정리된 결론을 내놓지 않는 사고는, 그저 미완성에 불과한 걸까요. 아마 여기서부터, 논술 이후의 비정형 논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논술 이후의 비정형 논리는, 닫을 수 없어서 닫지 못하는 사고가 아닙니다. 오히려 닫을 수 있지만, 지금 닫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에서 일부러 닫지 않는 사고에 가깝습니다. 결론을 유예하는 이유는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조건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고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결론 그 자체가 아니라, 결론이 성립하는 조건들입니다. 무엇이 전제이고, 어떤 맥락에서만 이 논리가 유효한지, 조건이 조금만 바뀌어도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지. 그래서 이 논리는 답을 빠르게 제시하기보다, 조건을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이 과정에서 모순은 제거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순은 아직 사고가 닫히지 않았다는 신호로 남아 있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나 어긋남은 오류라기보다, 더 생각해야 할 지점으로 유지됩니다. 비정형 논리는 이 불안정함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채 사고를 이어갑니다.


AI가 논술을 너무 잘해주는 시대에, 이런 비정형 논리는 오히려 인간의 사고를 구분 짓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잘 정리된 결론이 아니라, 쉽게 정리되지 않는 질문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가, 생각의 깊이를 보여주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매끈한 답이 아니라, 덜 닫힌 상태를 견디는 사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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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논리를 살려둔다는 것의 의미


논리를 살려둔다는 말은 종종 오해를 받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처럼 보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논제를 오래 붙잡는 사고는, 단순히 결정을 미루는 태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그 논제가 어떤 범위의 문제인지 아직 확정하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논제를 빨리 닫아버리면, 그 논제는 곧 특정한 문제로 축소됩니다. 하지만 논제를 열린 채로 유지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큰 틀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개인의 고민처럼 보였던 질문이, 어느 순간 사회의 구조나 제도의 문제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논제를 오래 살려둔다는 것은, 그 질문이 어떤 층위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때 논제는 더 이상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의 상징에 가까워집니다. 직접 모든 것을 말하지 않지만, 여러 맥락과 의미를 불러오는 중심점이 됩니다. 비유가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많은 의미를 담아내듯, 논제 역시 하나의 질문을 통해 더 많은 사고를 호출합니다. 그래서 이 논제는 쉽게 소비되기보다, 계속해서 변형될 가능성을 품은 채 유지됩니다.


이런 사고방식에서는 결론이 바뀌는 일이 실패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조건이 바뀌면 결론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히려 처음 내린 결론을 끝까지 고수하는 태도야말로, 사고를 멈추게 만들 수 있습니다. 논리를 살려둔다는 것은, 결론보다 논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관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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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정돈된 논술은 언제나 책임 있어 보입니다. 결론이 명확하고, 근거가 정리되어 있으며, 독자가 따라오기 쉬운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검토되었고, 이제 이 판단을 공유해도 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임은 어디까지일까요. 정돈된 결론은 독자에게 동의를 요청합니다. 이 결론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 판단의 책임은 독자에게도 분산됩니다. 이 방식은 안정적이고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불확실성을 글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비정형 논리는 불안정해 보입니다. 결론을 유예하고, 질문을 닫지 않으며, 불편한 지점을 그대로 남겨둡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종류의 책임이 발생합니다. 이 글은 아직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쉽게 말하지 않겠다고, 대신 이 불확실성을 끝까지 자신이 감당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두 글의 태도는 분명히 다릅니다. 정돈된 논술은 동조를 요청합니다. 이미 준비된 판단에 함께 서 달라고 말합니다. 반면 비정형 논리는 동행을 제안합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함께 바라보자고, 완성된 답 대신 살아 있는 질문을 공유하자고 말합니다.


내가 계속해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책임이란 단지 결론을 제시하는 용기가 아니라, 결론을 쉽게 닫지 않겠다는 선택을 끝까지 떠안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시대에는, 이 두 번째 책임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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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르칠 수는 없지만, 알아둘 수는 있다


논술 이후의 사유는 왜 이렇게 다루기 어려운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교육 상품으로 만들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정답도 없으며, 숙련도를 점수로 환산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단계적 경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영역은 기술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깝고, 전달이라기보다 도달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사유 방식은 오랫동안 제도권 교육 바깥에 머물러 왔습니다. 일부 철학 세미나나 창작 워크숍, 혹은 개인적인 멘토 관계 속에서만 간헐적으로 전해졌을 뿐, 대중적인 교육 형식으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역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이 영역을 인식하지 못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는 없더라도, 정답 사고력의 기준 너머에 또 다른 사유의 층위가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공유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저기까지 가라”는 요구가 아니라, “저기라는 곳이 있다”는 안내에 가깝습니다.


이 인식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틀린 것으로 판단합니다. 결론이 없는 사고를 미완성으로 여기고, 정리되지 않은 질문을 사고의 부족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다른 레벨의 사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최소한 그것을 즉시 배제하지는 않게 됩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존재를 부정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사고의 지형은 꽤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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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맺으며: 우리는 어디까지 닫아야 하는가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면,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닫아야 하는 걸까요. 완벽하게 닫힌 논리라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긴 한 걸까요. 모든 논리는 전제를 가지고 있고, 그 전제는 언제나 선택의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완벽하게 닫힌 논리란, 자기 전제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지 않을까요.


이렇게 보면, 닫으려는 태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닫힘일지도 모릅니다. 결론을 내려야 안심할 수 있고, 정리되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사고 습관은, 논리를 완성시키기보다 오히려 멈추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고를 끝없이 열어둘 수는 없습니다. 삶은 선택을 요구하고, 선택은 언제나 닫힘을 동반합니다.


다만 지금의 시대는, 그 닫힘을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AI는 정리와 수렴을 너무 잘해주고, 그만큼 인간에게는 다른 역할이 남습니다. 더 빠른 결론이 아니라, 덜 닫힌 상태를 얼마나 오래 감당할 수 있는지. 완성된 답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질문을 어떻게 들고 가는지.


이 글은 어떤 해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라기보다, 하나의 사유 경로를 기록한 것에 가깝습니다. 논술 이후의 사유가 있다면, 아마 이런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닫지 않고, 완전히 열어두지도 않으면서, 지금 닫아도 되는 것과 아직 닫지 말아야 할 것을 조심스럽게 구분해 나가는 일. 어쩌면 그 태도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고의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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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주석

이 글은 어떤 결론이나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입장을 옳다고 증명하려는 글도 아닙니다. 다만, 생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지점에서 머뭇거렸으며, 무엇을 쉽게 닫지 않으려 했는지를 따라가며 기록한 사유의 경로에 가깝습니다. 이 글이 다루는 질문들 역시 완전히 정리되었다기보다는, 지금 이 시점에서 잠시 놓아두어도 될 만큼만 정리된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답을 건네기보다, 같은 질문 앞에 함께 서보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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