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일 Jan 14. 2024

애걔걔 여행에 빠져드는 이유

한겨울의 홋카이도 여행 3편

중국이 ‘우와~’ 여행이라면 일본은 ‘애걔걔’ 여행이라고 한다. 유명한 곳이라고 막상 가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행에 나선 우리 일행도 곳곳에서 적잖이 실망감이 든 게 사실. 다만 규모에 빠지지 말고 그 의미와 스토리를 찬찬히 음미하라는 게 여행 팁이다. 크기나 거창함으로 승부하지 않는 건 우리도 유사하지 않을까.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매력,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함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   



온천과 소도시 여행의 매력


일본은 특히 온천이나 소도시 여행이 인기를 끈다. 영화 <러브레터> (1995)의 배경인 오타루는 오르골과 디저트가 유명하다. 작고 예쁜 숍과 카페가 들어선 거리를 걸으면 마음이 따스하고 포근해진다. 사람들과 자동차는 모두 눈길을 엉금엉금 움직인다. 동화 속 풍경처럼 정감이 느껴지는 곳, 마음이 절로 말랑말랑해지면서 세상만사 아득히 잊는 순간이다.    


추운 지방에서 몸을 따끈하게 데우는 온천은 이번 홋카이도 여행에서도 퍽 인상적이었다. 패키지여행이라 일본의 전통적인 '료칸(旅館)'은 아니었지만 현대식 16층짜리 리조트형 료칸에서도 다다미방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전통 복장인 유카타도 착용해 본다.


일본의 온천은 목욕이 아니라 치료와 치유의 목적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호젓한 지방이나 산간, 계곡 등지에 자리한 온천은 사람의 심신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남탕과 여탕이 매일 서로 바뀌는 것도 특이해서 눈길을 끈다. 음양이 순환하는 원리라거나 구조가 다른 탕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말이 있다. 노천탕도 색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생활과 문화적 차이가 다르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만난다. 놀랄만한 자연 풍광이나 거대한 건축물 같은 볼거리는 우리를 순식간에 압도한다. 절로 감탄사를 내뿜게 된다. 하지만 두고두고 오래 남는 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아닐까. 어떤 장면은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 깊은 감정의 골을 건드리며 기억 속에 선명하게 자리한다. 여행의 정의란 이렇듯 나를 진정으로 만나는, 그런 순간을 느끼는 것이다.        


오타루 거리 풍경. 눈 덮인 세상에 황혼이 내리면 마음에 등불이 켜지듯 따스해진다.



조용한 일본 vs. 시끌벅적 한국    

 

일본은 해외 같지 않다. 풍경과 사람이 다르긴 하지만, 크게 낯선 곳이란 느낌이 덜하다. 다만 일본 사회나 거리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때로 지루한 느낌마저 든다. 이미 선진국이라 성장이 정체된 탓이 클 것이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갈수록 많아지는 데서 오늘날 일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고, 역동적이며 경쟁적이다. 뭔가 스펙을 쌓거나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면서 금세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특성이 짧은 기간에 한국의 성장과 산업화를 견인하고, 세계적인 K컬처 현상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도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별일 없는 평범한 인생'이 요즘 Z세대가 그리는 미래상이라고 한다. 과도한 경쟁과 스펙 쌓기, 저성장과 양극화 등 빠르고 불확실한 세상 때문일 것이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좌절과 실망감, 분노와 체념의 현주소가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애증의 관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우리에게 여전히 가깝고도 먼 애증의 관계다. 역사적으로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같은 현안들에서나 양국 간에는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대화와 교류의 창구가 막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일본에 미세먼지의 필터 역할을 하고 일본은 한국에 쓰나미의 방파제 역할을 하듯,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최근 양국 간 교류와 관광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 일본에 들어오는 외국인의 국적을 보면 단연 서로가 1위를 차지한다. 도쿄 속 한국이라는 '신오쿠보'에는 K컬처 인기에 힘입어 일본 젊은이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작년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는 20대의 65%가 한국인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0년 이후 최고 수치로, 전 세대 평균(46%)을 훨씬 상회한다.      



여행의 이유와 매력


외국을 다녀오면 문화의 차이를 절감한다. 나의 눈, 우리 식으로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느낀다. 다양한 문화의 현장을 둘러보며 놀라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여행의 좋은 점은 이렇듯 동시대를 살면서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교류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여행은 여행지가 디인지보다 같이 가는 사람이 중요하다. 마음 편한 사람들과 하는 여행은 언제든 진리에 가깝다. 여행이 주는 색다른 매력과 추억을 나눌 수 있어 두고두고 좋은 기억과 여운이 남는다. 우리가 오늘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행복한 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아닐까.  



둘레가 43km에 이르는 도야 호수의 전망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칼데라 호수인데, 급격한 기상 변화로 5분 사이에 시야가 확 틔였다.

    



* 표지 사진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서울 풍경(가운데 여의도가 보인다)




#오타루 #영화러브레터 #일본온천 #료칸 #일본소도시 #도야호수 #칼데라호수 #히키코모리

매거진의 이전글 먹방에 도전하고 편의점을 털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