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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an 07. 2024

먹방에 도전하고 편의점을 털어라

한겨울의 홋카이도 여행 2편

일본 여행의 최고 즐거움이라면 단연 음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몸 중에 가장 보수적인 곳이 ‘혀’라고 한다. 그만큼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본 음식은 이미 친숙한 만큼 현지라면 더욱 다양하고 색다른 본토 맛을 만나는 걸 추천한다. 시도하지 않는 청춘은 의미가 없고, 새로운 경험을 망설이는 여행은 재미가 없는 법. 맘껏 도전하고 질러보는 게 젊게 사는 비결이 아닐까.       



일본의 음식문화가 흥미로운 이유


일본 하면 떠오르는 '돈가스'는 바삭한 맛과 식감으로 누구나 환영한다. 서양의 요리 '포크커틀릿(pork cullet)'을 일본식으로 개조해 1895년 도쿄에서 현지화한 음식으로 알려진다. 원조 노포인 ‘연와정(煙瓦亭)’은 아직도 긴자에서 영업 중이라고 한다.


고기구이인 '야키니쿠(燒肉)'는 우리의 불고기가 전파된 것으로 1930년대 본고장(한국)의 음식으로 소개됐다고 한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무려 1,200여 년간 육식 기피 전통을 지켜왔다. 메이지 유신(1868) 이후 서양의 근대화과정을 벤치마킹하면서 육식문화를 도입하는 등 큰 변화를 시도한다.


육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소화를 돕기 위해 스키야키(일본식 전골)에 날달걀이나 고기 메뉴 옆에 항상 양배추를 곁들인다. 일본의 음식문화 개선 노력은 오늘날 일본의 '와규(和牛)'가 품종 개량을 거쳐 고급 식용 소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일본의 음식문화를 접할수록 외부의 것을 모방해 자신들의 것으로 발전시키는 특유의 전통을 실감하게 된다. 돈가스나 야키니쿠뿐만 아니라 라면, 카레 등 무수히 많다. 홋카이도에서는 특히 3색 라면이 유명하다. 간장(아사히카와), 된장(삿포로), 소금(하코다테) 베이스의 지역마다 특색 있는 라면을 시도해 볼 만하다.



간장 베이스의 일본 라멘과 일본식 전골 스키야키가 있는 밥상


         

편의점을 털어라     


일본은 편의점 왕국이다. 시골 오지까지 실핏줄처럼 퍼져 있고, 주차장, 화장실을 갖춘 공공 휴게소 역할을 한다고 한다. 웬만한 것들은 다 구할 수 있어 ‘편의점을 털어라’는 게 쇼핑 팁이다.


애주가들은 홋카이도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맥주 ‘삿포로 클래식’을 놓치면 후회한다. 일본 내 다른 지역에서도 이 맥주를 마시러 홋카이도에 올 정도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를 호텔방에 둘러앉아 시음했다. 입안에 감칠맛 나게 착 달라붙는 느낌이 단연 일품이다.


일본은 특정 지역이나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판매하는 ‘한정판 마케팅’에 능한 나라다.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칼데라 호수의 전망대에서도 ‘마유(馬油) 크림’ 한정판이라고 요란하게 홍보한다.

     


편의점은 소비문화의 최전선


편의점은 소비문화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람들의 입맛, 일상적 소비 패턴과 트렌드를 가장 앞서서 주도한다. 돌이켜보니 나의 첫 해외 출장지가 일본이었다. 벌써 30여 년 전, 직장생활 신참이던 1990년대 초반이다. 도쿄의 전철역 주변 편의점에서 ‘즉석밥’이란 걸 처음 구경했는데, 신기하고 놀라웠다. 세상 살기 정말 편해졌다는 걸 실감했다. 국내에서도 1996년 첫 즉석밥 제품이 출시돼 지금은 주방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일본은 또한 바이오 의약산업에 강한 나라다. 내진기술, 해저터널기술과 함께 세계에 자랑하는 3대 기술로 꼽힌다고 한다.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 29명 중 25명이 기초과학 분야 출신으로, 오타쿠처럼 한 분야를 파고드는 데 선수들이다. 국내에 알려진 의약품도 많은데, 감기약과 진통제, 소화제나 변비약, 파스를 시내 쇼핑 상가나 면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일본의 편의점과 쇼핑상가.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주류, 의약품류 등 무궁무진한 쇼핑거리가 즐비하다.



한국관광에서도 뜨거운 음식과 편의점


음식과 편의점은 최근 한국 관광에서도 핫이슈다. 한국을 찾는 첫 번째 이유도 2019년 ‘쇼핑’에서 2021년 ‘음식’으로 바뀌었다(문화관광연구원의 2022년 외래관광객 조사). 한국음식은 요즘 전 세계적으로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 K드라마와 영화, K팝의 영향으로 한국이 ‘미식투어’ 여행지로 급부상한 탓이다.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메뉴는 뭘까. 한국식 치킨, 라면, 김치, 비빔밥과 불고기 순으로 나타났다. 한식 수출 중 최고인 라면은 지난해 역대 최고 수출액을 기록했는데, 그중 66%는 불닭볶음면이라고 한다. 라면의 종주국은 일본인데, 한국의 기세가 거침없다.  


편의점은 또 어떤가. 한국여행 필수 코스의 하나로 ‘K편의점’이 자리 잡은 게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SNS에선 한국 편의점 먹방과 인증샷이 쏟아진다. 외국인 매출 상위제품을 살펴보면 바나나맛우유, 신라면, 생크림빵, 불닭볶음면, 참이슬 등이다.


한국 편의점은 편의점 강국 일본을 벤치마킹해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대폭 강화하고, 외화 환전 키오스크 운영 등 관광객 편의를 높이는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지난 12월에는 라면 종류만 230개를 갖춘 첫 라면 특화 편의점 ‘라면 라이브러리’가 홍대 인근에 등장했다. 전체 라면 매출 중 외국인 고객 비중이 62%로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문화란 서로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이렇듯 문화는 서로 주고받으며 발전한다. 라면이나 편의점은 일본이 원조지만, 한국은 새롭고 특색 있는 한국형 모델을 발 빠르게 내놓고 있다. 일본 또한 서양이나 한국 같은 주변국과의 교류 속에서 돈가스나 불고기, 일본카레 등을 만들어냈다. 모방하면서 발전하는 것,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자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가깝든 멀든 사람들을 자꾸 만나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삶은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그게 바로 여행을 꿈꾸는 이유가 아닐까.  







 * 표지 사진은 홋카이도 제2의 도시인 아사히카와의 라멘전문점 풍경. 눈이 한창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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